전체주의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제, 물리적 테러와 폭력적인 대중캠페인을 통해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심어줍니다. ◆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와 총체적 테러 전체주의자는 현실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닌 이들의 의도가 담겨진 생각을 이데올로기로 전파합니다. 그렇다보니 이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능력은 높지 않습니다. 실제적 경험에 뒷받침된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자가 그린 목표에 맞추어 가상의 청사진이 정립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의 이데올로기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주의 권력자는 유토피아적 그림을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며, 이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이 이데올로기라면 이들에게 직면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다는 논리적 유혹이 선전되는 겁니다. 이러한 유혹적 이데올로기가 구성원의 뇌리에 스며들기 위해, 권력자는 집단의 성원들에게 총체적 테러를 가합니다. 지속적인 대중 동원이나, 방송· 신문· 영화등 매스컴을 통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는 테러를 감행하는 겁니다. (민주
◆ 전체주의 개념의 구분 전체주의에 대한 분석은 정치 제도적 장치에, 또는 인간성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자의 접근은 사회과학적 개념의 전체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전체주의적 제도와 장치들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를 바라봅니다. 후자의 접근은 독일출신의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분석과 관련된 것으로, 전체주의 지배의 결과로서 인간성 상실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를 이해합니다. ◆사회과학적 개념의 전체주의 ① 마르크스 접근과 사회과학적 접근 전체주의는 대체로 두 가지 접근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주의는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으로, 이들은 독일전체주의의 본질을 ‘자본주의의 최종단계’ 혹은 ‘군국주의적 제국주의’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파시즘은 전체주의로 포함되나 소련의 공산주의는 파시즘과 근본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서구좌파 지식인들도 스탈린 시대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좌파진영의 주장과 달리, 전체주의는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회과학적 전체주의 관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칼 프리드
하나님의 의는 성경전체에 흐르는 중요한 개념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를 두려움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의의 개념의 다양성 학자들은 하나님의 의 개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하나님의 소유격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있어 하나님의 소유격에는 목적격 소유격, 주격 소유격, 그리고 단순한 소유격등이 있습니다. 목적격적 소유격의 경우, ‘하나님의 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으로서의 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의를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 됩니다. 주격적 소유격의 경우, 하나님의 의는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이 하신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 또는 이를 행하심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소유격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이 지닌 본성적 의,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26절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
◆ 자본주의 번영의 메커니즘 : 이기심이 동감을 거쳐 공적 이익을 증대시켜 아담스미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번성의 힘은 이성에 뒷받침된 개인의 감수성에 있습니다. 우리가 제빵업자의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자비심보다 그의 이익추구 덕택입니다. 자기보존본능·허영심등 개인의 자기애(self-love)가 공적인 부를 증진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기심은 공적인 부를 늘리는데 기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기심이 폭발적인 탐욕으로 전환된다면, 이기심은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바꾸는 파괴력을 품고 있습니다. 파괴적 이기심을 제어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미스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까지 갉아먹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파괴적 이기심을 제어하기 위해, 동감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여기서의 동감(sympathy)은 이타주의를 의미하지 않고, 행위자의 행위가 공평한 관찰자(사회전체의 공감적인 시각과 정서)의 시각으로 볼 때 용인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예컨대 개인의 생활수준증대의 욕구, 허영심등의 이기심이 공평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볼 때 용인될 수 있다면, 이러한 이기심은 승인될 수 있습니다. 그런
◆ 자본주의 번영의 메커니즘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국부론) “우리가 우리의 저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류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저서 <국부론>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이 구절은 개인의 자기사랑(self-love)의 추구가 생활필수품의 적절한 배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의 자기애(self-love)는 생활개선의 욕망, 자기보
◆보이지 않는 손과 감성체계 행위자들은 의사결정시에, 보통 이성을 사용하여 미래의 편익과 손실을 예견합니다. 하지만 그 판단의 결과는 미래의 예측하지 못하는 변동성으로 인해 기대에서 곧잘 벗어납니다. 미래에 이러한 기대와 실제 값 사이의 편차는 위험이 되어, 행위자들은 위험에 대한 대가를 별도로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예컨대 기대값에 버퍼를 충분히 두는 것도 위험에 대한 대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성에 의존하여 원하는 결과를 기획할 수 없다는 점은 사람들이 감성체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아담스미스는 사람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감성체계에 의해 작동되며, 인지체계의 한 부분인 이성은 감성체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경험세계(표층세계)의 현상이 존재하게 하는 배후의 힘은 감성체계이며, 이는 자연의 섭리, 곧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됩니다. ◆ 스미스의 저서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언급, 세 가지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언급한 것은 세 가지 경우입니다. 우선 <천문학의 역사>에서 ‘주피터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주피터의 신을 믿는 로마인들은 천둥· 번개등 자연의
‘어떤 무언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그것이 순간의 즐거움이었으나, 이를 즐김에 따라, 점점 그것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것에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나는 이것의 노예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발을 묶어 놓는 족쇄를 끊어 버릴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 ‘죄’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로마서 1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Furthermore, just as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so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so that they do what ought not to be done.” 이 구절의 하반절에 의하면 죄란 타락한 마음(상실한 마음, depraved mind)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카르텔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들은 공동행위, 담합 (collusion), 네트워크등입니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할 때 카르텔은 경제측면에서의 카르텔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측면에서의 카르텔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카르텔의 의미 정치적 카르텔은 핵심요소에서 경제적 카르텔과 유사합니다. 이는 담합입니다. ‘담합’이라는 키워드는 ‘강한 네트워크’, ‘끈끈한 동맹’, ‘야합’등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키워드에 기초하면, 정치적 카르텔은 구성원들이 동맹을 형성하여 잠재적 이익을 공유하는 담합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카르텔에 대한 이 설명은 경제적 카르텔의 정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구별되는 점은 정치 카르텔이 ‘강한’ ‘끈끈한’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정치 네트워크에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는 정치적 카르텔이 구성원 내 공통분모에 기초하여 형성된다는 점과 관련됩니다. 여기서 공통분모는 같은 학교, 같은 고향, 같은 시민 단체, 같은 기관, 같은 이념 조직 출신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성원간의 공통분모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형식적 관계를 뛰
◆ 카르텔(경제카르텔)의 개념과 카르텔이 담합으로 규정되는 이유 경제학적 개념의 카르텔은 공동행위의 일종으로, 과점기업들이 담합(collusion)을 통해 마치 독점기업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카르텔의 공동행위는 법(공정거래법)에서 담합으로 규정하여 제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서 collusion은 사전적으로 ‘불법적이고 부정직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비밀 협력’을 의미합니다. 카르텔이 불법적 공동행위인 담합으로 간주되는 것은 카르텔의 실질이 독점의 실질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독점시장의 경우, 완전경쟁시장에 놓여 있는 기업들에 비해, 생산량이 감소하고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럴 경우, 소비자들의 후생은 감소하고 생산자들의 순후생(생산자 잉여증가와 감소의 합)이 증가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의 후생감소와 생산자들의 순후생증가분의 합인, 사회적 잉여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잉여 감소분을 ‘하버거의 삼각형’이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카르텔의 이윤극대화 생산량과 하버거의 삼각형’) 이와 같은 독점시장의 실질과 마찬가지로, 카르텔의 형성은 생산량 감소, 가격 상승, 소비자 후생감소, 생산자들의 후생증가, 사회
◆카르텔의 이윤극대화 생산량 결정 이윤극대화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선, 주지하듯이, 한계수입(MR)과 한계비용(MC)이 일치해야 합니다. 한계수입곡선은 수요곡선에서 도출됩니다. 그런데 카르텔기업의 수요곡선은 독점기업과 마찬가지로 산업전체의 수요곡선입니다. 이러한 시장전체의 수요곡선에 상응하여 한계수입곡선(MR)이 결정됩니다. 카르텔의 한계비용곡선은 각 기업들의 한계비용곡선을 수평으로 더한 것이 됩니다. 카르텔의 MR곡선과 MC곡선이 결정되었다면, 두 곡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생산량과 가격이 결정됩니다. 종합적으로 카르텔의 이윤극대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MR= MC1 = MC2 결국 카르텔을 형성한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카르텔 전체의 이윤이 극대화되는 수준에서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하고 이를 담합하는 기업들 간에 배분하게 됩니다. 또한 이 경우 P>MC이므로 과소생산이 이루어지고 효율성 상실이 발생합니다. ◆ 하버거의 삼각형 (Harberer’s triangle) P=MC가 성립되는 경쟁시장에서 생산량과 가격은, 각각 Qc와 Pc입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잉여는 (A+G+B+C)의 면적이며, 생산자 잉여는 (D+F+E)면적입니다. 그런데 독점형태의
◆예외상태와 주권자 예외상태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의 상황, 곧 비상사태를 의미합니다. 독일의 법학자인 칼 슈미트는 그의 주요저작들의 하나인 「정치신학」에서 예외상태를 ‘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슈미트에 의하면, 이러한 위기 상황의 결정과 타개는 주권자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슈미트는 그의 저서 「정치신학」의 서두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 규정합니다. 이 문장에서 ‘주권자’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자를 말합니다. 또한 ‘예외상태를 결정한다’의 의미는 주권자가 이 상황의 예외상태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 예외상태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 ① : 공공의 안전과 질서 그렇다면, 주권자가 예외상태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일까요? (권경휘) 슈미트는 예외상태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의 예로서, 다음과 같이 바이마르 헌법 제48조를 제시합니다. ‘여전히 유효한 1919년의 독일 헌법에서는 제48조에 따라 대통령이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지만, 의회가 스스로의 통제 하에 언제나 그것의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가 언급하는 바이마르 헌법 제48조란 제48조 제2항을 말합니다. 제48조 ② 라이
◆멜랑콜리의 시대 멜랑콜리의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우울· 침울· 비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게다가 비애가 기쁨으로 바뀌는 구원의 빛도 찾기 힘듭니다. 멜랑콜리의 시대엔, 멜랑콜리에서 탈출하겠노라 맹세해도 그 다짐은 쉽게 허물어집니다. 비애를 벗어나게 하는 자유와 기회의 밧줄은 내려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상실과 기회의 부족이 발생하게 된 것은 집단 속의 절대평등의 추구과 그 주장의 이면에 숨겨진 개별집단들의 사적욕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허위의식이 구체제의 질서를 형성하고 이러한 질서의 반복에 의해 단단해진 껍데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유와 조화를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헌법전문)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은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만 남아있게 합니다. ◆ 기적과 예외상태 그렇다고 우리가 멜랑콜리의 노예로만 살아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동체에 자유와 조화를 불어넣는 기적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부단히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진정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의 힘은 없단 말인가요? 독일의 법학자인 칼 슈미트(1888~1985)는 그의 저서 「정치신학」에서 말합니다. “예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