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의 결단: 스스로 만든 안전장치를 해제 에스더 4장의 핵심은 하나님의 ABI(Ability, Benevolence, Integrity: 능력·선의·신실하심)를 근거로 자신의 안전장치를 내려놓고 위험을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믿음입니다. (관련기사 : "참된 믿음" https://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455) 우리는 나만의 자기확신으로 성벽을 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A)과 선의(B), 그리고 신실하심(I)을 온전히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만든 안전장치와 자기 확신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불확실과 불투명의 위험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ABI 성품은 가장 견고한 ‘믿음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흔드는 사탄의 모든 불화살을 막아내고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와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 유사한 태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는 에스더의 결단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초기 걸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
"나는 너를 믿어(I trust you).“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과연 상대방의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이는 신뢰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직결됩니다. 여기서 신뢰의 근거는 일반적인 통념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중고차 거래가 그 예입니다. 우리가 오랜 친구에게 차를 살 때 느끼는 '일반적 신뢰'는 친구라는 관계에 기반하여 "설마 친구인 나에게 결함이 있는 차(레몬차)를 팔아 역선택의 위험에 빠뜨리겠어?"라는 기대입니다. 반면, 사회심리학적 관점 (Mayer et al. 모델)의 신뢰는 다릅니다. 이러한 신뢰는 단순히 친구의 선의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제공하는 차량 점검 데이터와 정비 이력을 통해 객관적인 상태를 확인하고, 그 정보의 투명성과 전문성에 기반하여 상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반적 신뢰는 상대방의 도덕성(선의)만 있어도 형성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적 신뢰는 상대방의 도덕성(선의)에 더해 실력(능력)과 정직성이 모두 충족될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클라이머와 빌레이어의 사례 ① 상황 이러한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극한의 상황입니다. 로프 하나에 생명을 맡겨야 하는 클라이머와 빌레이
법과 제도가 단단한 기술이라 믿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언어와 상징입니다. 정치학자 머레이 에델만은 정치를 ‘불안의 상징적 관리’라 했습니다. 때로는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때로는 권력을 위해 불안을 만들어내는 위험한 예술은 곧 정치입니다. 정치는 종종 우리의 불안에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합니다. 바로 ‘두려움(Fear)’의 설정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불신’이라는 사회의 막연한 불안을 가져와, 사법부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정치는 이를 개혁해야 한다며, 사람들의 모든 분노를 그곳으로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그 어둠 위에 한 줄기 빛을 비춥니다. ‘욕망(Want)’의 제시입니다. ‘국민을 위한 사법’, ‘완벽히 공정한 재판’이라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아름답고 순수한 이상을 제시합니다. 이 매력적인 구호 앞에서,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따르고 싶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그 빛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을 지정합니다. ‘가능성(Possible)’의 독점입니다. 자신들이 설계한 법안만이 이상을 실현할 유일한 칼이라고 말하며, 다른 모든 길을 막아섭니다. 이 세 단계를 거치며,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어둠 속으로 빠져듭
“어릴 때 몸이 약했던 청년은 약한 몸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시절 친구와 학교 과제물을 만들 때, 친구는 너무 잘하는데 자신은 과제물을 완성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 스스로가 바보같고 무능하다는 느낌을 심하게 가졌다. 대학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일이 있자, 그는 ‘나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인가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품게 되었다. ” (김홍애) 이러한 사례처럼, 우리는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등으로 인해 수 많은 상처들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거부당함, 자기 연민, 우울, 죄의식, 공포, 슬픔, 열등감, 무가치함등 상한 마음의 올무에 걸리게 되어 그 상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상처받은 마음의 틈새에 사탄이 살며시 스며들어와 그 상처를 더욱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질 경우, 신자일지라도 고장난 턴테이블의 바늘처럼, 무한반복으로 공회전하며 그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즉 수치스러운 상처를 방치하며 더 이상 낫기를 원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때 마귀는 어느새 우리의 내면을 조종하는 운전자가 되어 버립니다.
◆ 내적치유란? 내적치유는 상한 마음의 정상적 회복 또는 어두운 그림자를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몰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① 상한 마음의 정상적 회복 내적치유(inner healing)의 ‘내적(inner)’은 내부적인 것, 곧 마음의 작용에 관한 것이며, ‘치유(healing)’는 한 인간의 영적, 혼적, 신체적, 질병 또는 정상적이지 않는 불편한 것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내적 치유란 과거의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억이나 사건으로 인한 상한 마음(마음의 상처)으로부터 해방되어, 건강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상한마음에는 거절당함, 자기연민, 절망, 죄의식, 두려움, 슬픔, 미움, 분노, 열등감, 낮은 자존감, 수치, 정죄의식, 자신이 무익한 존재라는 감정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건강한 마음의 회복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적치유는,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뿌리 깊은 상한 감정들을 제거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상적인 모습은 단순히 병들기 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원래 창
구약에는 하나님이 쓰신 지도자들로 모세, 다윗, 느헤미야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지도력이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받게 하였을까요? ◆ 지도자와 지도력 공동체의 성장에는 지도자의 지도력, 곧 리더십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지도자의 현명한 지도력에 의해 공동체가 설정된 목표를 향해 제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도자란 ‘어떤 집단의 통일을 유지하며 그 구성원이 행동함에 있어 그 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구실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요약하면 ‘지도력을 소유한 사람’으로 정의내려집니다. 또한 지도자의 종합적 예술인 지도력이란 ‘조직구성원들이 집단목표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노력하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기술 또는 구성원들의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영향력을 미치는 기술’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지도자와 지도력은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방향 목표와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지도자와 지도력 구약에는 지도자가 ‘머리’(head)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 14절의 “집의 어른”(heads of their families), 역대하 5장 2절의 “모든 지파의 두목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