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right or wrong Try to find a place We can all belong? 이것이 옳은 일일까 그른 일일까 ? 우리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Be as one Try to get on by If we unify? We should really try 하나가 될까 서로 의지하고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면....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서로 의지하며 하나가 될까?) 우리는, 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해야해 All this time Spinning round and round Made the same mistakes That we've always found 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겉돌기만 하면서 우리는 같은 실수만 저질러 왔어 Surely now We could move along Make a better world No it can't be wrong 확실하게 지금은 우리 모두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해. 그건 그릇된 일이 아니야 Let's come together Right now oh yeah In sweet harmony 모두 하나가 되자 바로 지금, 오 그래. 달콤
경직(원칙) 對 신축(절충) 어떠한 행동을 결정 할 때, 원칙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릴 것인지 절충에 의해 판단을 내릴 것인지를 두고, 우리는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자는 원칙적인 단일 변수의 변화에 집중하는 반면, 후자는 그 원칙에 신축성을 가미하여 다양한 변수의 상호작용을 고려합니다. ◆정부와 통화당국간의 통화정책에 대한 협의는 장려되어야 이낙연 국무총리의 13일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금리관련 발언도 이에 대한 고민을 엿보게 합니다. 이 총리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의원이 ‘금리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질의에, ‘(금리인상과 관련하여)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 데 동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총리의 이 발언을 두고 정부가 한국은행에게 금리인상을 압박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았습니다. 원칙적으로 중앙은행은 책무 수행과정에서 정치적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통화정책을 수립・ 결정・ 집행할 수 있는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통화정책에 행정부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독립성이 경직성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확증 편향적인 사람은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모든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확증하는 증거만을 찾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믿음과 모순이 되는 정보는 외면하거나 비판적으로 무시해 버리는 경향을 보입니다. 믿고 싶은 대로 보기 위해 정보의 선택편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 타당한 논리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요즘 확증편향적 태도는 정치권에서 경쟁상대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심리 전략으로 곧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2분기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교해 단지 5,000명이 증가하고 소득격차가 악화된 것은 최저임금인상 탓이라는 보수진영의 주장도 의도된 확증편향적 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저임금의 영향 분석을 위해 완전경쟁시장뿐만 아니리 불완전경쟁시장에서의 효과도 함께 파악되어야 하는데도, 완전경쟁노동시장의 부정효과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시도도 확증편향적 전략으로 설명됩니다. ◆최저임금제도와 고용간의 음(-)의 관계 최저임금제도는 정부가 임금시장에 개입하는 가격규제의 일종입니다. 경기불황등으로 노동의 과잉공급이 발생하면, 노동시장에서 설정되는 균형가격이
A chair is still a chair, even when there's no one sittin' there But a chair is not a house and a house is not a home When there's no one there to hold you tight And no one there you can kiss goodnight 의자는 여전히 그대로 의자죠, 그곳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아도. 하지만 의자가 집(house)이 될 수 없듯이, 집(house)도 안식처(home)가 아니에요, 그 곳에 당신을 꽉 안아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당신이 잠들기 전에 굿나잇 키스를 해줄 사람이 없다면... A room is a still a room, even when there's nothin' there but gloom But a room is not a house and a house is not a home When the two of us are far apart And one of us has a broken heart 방은 여전히 방이에요, 비록 어둠만이 깔려있을지라도(어둠 외에 어떤 것도 없을 지라도). 하지만 방이 집이 아닌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굿판을 멈추고 출산주도성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출산주도성장론이란 국가가 출산장려금 2000만원을 지급하고 아이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1억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이에 따르면 매월 33만원이 출산 가정에게 제공됩니다. 한국당의 출산주도성장의 제안은 총생산과 1인당 생산을 혼동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출산증가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것이 경제성장에 실질적으로 효과를 미칠 것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총생산량 vs 일인당 생산량 지금까지의 총생산함수는 Y = F(K, L)로, 총자본 K ・ 총노동 L의 투입으로 총생산량 Y가 산출됩니다. 이를 변형한 생산함수는 Y = F(K, L×E)로, E는 노동의 효율성(efficiency of labor)을 의미합니다. 이 식에 의하면, 총생산량은 자본과 효율적인 노동자의 수( L×E)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생산함수를 이용하여 노동자 1인당 생산량과 총생산량을 결정하는 각각의 변수들을 파악해보면, 이들은 같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은
논쟁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견해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가져와야 합니다. 예컨대 ‘정치인 A씨의 머리카락 숫자가 몇 개인가’라는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사람마다 그 숫자를 달리 주장해도 그의 머리카락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쟁에서 실용주의적 태도가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근래 정치권에서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에도 실용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보수진영은 소득주도 성장(임금주도성장)이 총수요를 줄이고 양극화를 부추기는 ‘망국적’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총수요를 늘리고 소득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으로 수용합니다. 하지만 임금주도 성장 논쟁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다툼일 수 있습니다. 양진영이 임금주도성장에 대해 현격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각 진영이 생각하는 총수요논리회로를 각각 적용해도 이에 따른 정책 실행의 개별 결과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서입니다. ◆ 보수 진영, 소득주도성장에 왜 민감하게 반응하나?: ‘법인세 논쟁 시즌Ⅱ’ 자유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망국적, 괴물, 한 놈만 팬다’라는 험악한 용어를 동원하며, 소득주도성장정책에 이례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
[Verse 1] Spend my time worrying of broken promises Focused on the smell of all the burnt out cigarettes My thoughts play on repeat Only comfort that I keep 'Cause in a moment I will be Something you will forget 깨진 약속들로 괴로워하다 시간을 많이 써버렸네 다 타버린 담배 냄새를 계속 맡고 있었어 머릿속에 위로라는 말만이 계속해서 떠올라 (or 생각들이 계속 반복돼, 그 생각들이 나의 유일한 위안) 왜나면 이제 곧 난 네가 잊어 버릴 무언가가 될 테니까 [Chorus] Hopeless, hopelessly romantic You, you got me stranded Ooh, I'm blown, blown, blown 절망적이야, 난 로맨틱과는 어울리지 않아 넌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지 오, 난 망가졌어 [Verse 2] Now tell me was I ever something that you could regret I know I wasn't the one for you But at leas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에는 20여년 전부터 고추장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공장이 들어섰다. 지역 주민들이나 지방 자치단체는 공장이 들어섬으로 인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많은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공장들이 들어서고 기업의 매출이 늘어났어도 고용은 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한 기업은 매출이 100배가 늘어나는 지난 25년 동안 늘어난 직원 수가 고작 10여명일 정도로 매출 증가와 고용 증가는 상관관계를 잃어버렸다. 25년 동안 매출이 100배 늘어나면서 직원의 숫자는 10여명이 늘어나면, 그건 고용이 증가하기는커녕 감소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상하, <명견만리> ‘일자리가 사라진다’ 편 일부 내용 요약) 앞의 사례는 고용없는 성장 (jobless growth)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업의 매출과 이윤 증가가 일자리 증가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경제에서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경제현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19일 “현재 우리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이르고 있으나 경제성장의 혜택이 중산층, 서민, 자영업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모순적 구조가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개인의 과제로만 남겨 둘 수 없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의 존재가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선안남) 상처 입고 아파하는 이를 꼭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친 자존감은 아물어 간다는 겁니다. 이처럼 친구・ 이웃・ 공동체・국가로부터의 사회적 지지는 낮은 가치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롤즈는 권리와 자유, 기회, 소득, 부, 그리고 자존감을 사회적 기본 가치 (primary goods)로 언급하면서,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기본적 가치로 자존감을 지목합니다. (홍성우) 롤즈는 자존감의 자원으로 무엇보다 상호존중을 강조합니다. 자존감은 타인들의 존중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타인을 수단이 아닌 도덕적 인격으로서 존중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롤즈는 자존감의 토대로 세 가지 방식을 말합니다. 첫째, 그것은 극빈자의 기대치를 증진시켜야 한다. 둘째, 공정한 기회균등을 허용하여야 한다. 셋째, 평등한 정치적 자유들의 공정한 가치를 제고하여야 한다. 우선 평등한 정치적 자유는 헌법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을 이에 적용해 볼 때,
#1. “일어서야 해” A씨는 이렇게 다짐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난 원래 행복해질 권리가 없지. 행복 같은 걸 누릴 자격이 없어. 난 너무 형편없으니까.” 라며 A씨는 신음합니다. 무언가가 중력처럼 그의 몸을 다시 바닥으로 끌어당깁니다. 과거 겪은 트라우마가 A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는 겁니다. #2. “바보야. 이것도 못해. 넌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맨날 안 되는 거야.” B씨는 자신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작은 과제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B씨는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 낮은 자존감 vs 높은 자존감 앞의 사례들처럼, 자존감의 손상은 ‘(자연적)수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의미 있는 탁월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침투하여 두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현실의 모습과 스스로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간의 격차를 넘지 못할 장벽으로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 차이에 집착하고 이를 비난할 뿐입니다. 때문에 자기가치감이 낮은 사람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I am unwritten, can't read my mind, I'm undefined I'm just beginning, the pen's in my hand, ending unplanned 난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 내 마음을 읽어 낼 수 없지, 난 아직 정의내려지지 않았어 난 이제 막 시작이야, 펜은 내 손 안에 있어, 어떻게 끝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 Staring at the blank page before you Open up the dirty window Let the sun illuminate the words that you could not find 네 앞에 펼쳐진 빈 페이지를 봐 더러운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이 이제껏 네가 찾지 못했던 단어들을 비추도록 해봐 Reaching for something in the distance So close you can almost taste it 저 멀리 있는 어떤 것에 닿을 거야 그래서 가까이 그걸 맛볼 수 있을 거야 Release your inhibitions 네가 참아 왔던 걸 꺼내 놓아 봐 Feel the rain on your skin No one else can feel i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사라짐에 국한되지 않고, 쌍방으로 혹은 일방으로 맺어진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관계는, <어린왕자>에 의하면, 길들여짐입니다. 그의 생각 그리고 실천을 배울 때, 우리는 그와 관계를 맺고 그의 인식체계에 길들여집니다. 이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세상의 단 하나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의 魂을 소리쳐 부르게 될 때, 그의 비극은 그에게 길들여진 우리의 아픔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노회찬입니다. 그는 신영복 선생이 그에게 선물한 서예 글 ‘함께 맞는 비’를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글의 의미처럼, 노회찬은 절절한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끼고자 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同苦同樂한다는 관계의 典刑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회찬은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삶을 진보전략가의 使命으로 받아들이는 감상주의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대담에서 “이 길(민주화 운동)을 택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