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재 확산으로 인해 4차 추경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번 추경은 피해가 집중되는 소상공인, 고용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급으로 구성된 2차 재난 지원금의 패키지입니다. 이번 재난 지원금은 피해 맞춤형 지원과 보편적 지원이 혼합된 hybrid형 지원인데, 각각의 지원은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원리는 유사연대라 할 수 있는 ‘옮음’에 근거한 정의의 원리에 도출되며, 후자는 개인의 善인 ‘좋음’의 원리에 성립됩니다. ◆‘옮음’에 근거한 정의의 원리 피해 맞춤형 지원의 배경 원리는 유사연대인 옮음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①정의의 원리 :자원이 희소하다는 조건하에서 재화와 서비스가 배분되어야 할 때, 다양한 배분기준과 이념들이 제시됩니다. 이 때 충돌하는 주장들 사이의 균형을 잡아 줄 원리가 요구됩니다. 롤즈는 이 원리를 정의의 원리라 칭합니다. 특히 경제적 자원들의 공정한 배분 기준은 제이원리인, 차등의 원리 (최소수혜자의 이익을 극대화 할 때 불평등은 정당화된다는 원리)에 근거합니다. 정의의 원리는 롤즈의 이상적인 인간관에 의해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롤즈에 의하면, 배분기준을 둘러싼 갈등이 표출
성적 괴롭힘은 수치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가 남성의 고정된 성적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이러한 행동을 이끄는 고정화된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입니다. 때문에 성적 괴롭힘 문제에 대한 접근은 행위자들의 고정화된 성별 가치관에 대한 이해와 변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추행, 성희롱을 바라보는 관찰자마다 상황을 달리 판단할 수 있어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은 피해자의 감정과 달리, 각자의 안경을 통해 거쳐 나온 각기 다른 상황인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치심과 혐오감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성추행은 ‘주관적 목적이나 경향을 불문하고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김대군)를 뜻합니다. 법률에서의 성추행은 형법상 강제추행을 말하는 것으로, ‘의사에 반한 또는 강제(폭행 또는 협박)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정도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추행과 연관되는 개념은 성희롱입니다. 성희롱 자체는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고 행위자에게 민사상 손해
“여우는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 미국의 철학자 드워킨(Ronald Dworkin)이 언급한 이 말은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입니다. 많은 것을 알지만 이것들을 하나로 꿰지 못하는 여우와 달리, 고슴도치는 가치들을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여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가치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하나로 이해하는 고슴도치적 태도에 대한 사례가 자유와 평등이 하나의 통일체로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자유주의적 평등론과 교육개혁 능력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자유주의는 타고난 재능과 여건을 마음껏 발휘하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여기에 생산적인 노력이 더해져서 지위와 부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도록 법적· 제도적· 관행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파레토 균형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이끌어,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합니다. 또한 개인의 상승욕구를 채워주게 되어, 계급의 유동성을 촉진시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는 가정의 문화자본등 여건이라는 우연변수가 성과를 좌우하는 불공정성을 초래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합니다. 즉 형식적 기회균등이 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 직원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희소한자원의 공정한 배분원리에 대한 논쟁으로 읽혀집니다.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정한 자원배분의 원칙은 능력주의, 즉 능력에 따른 보상입니다. 타고 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유롭게 경쟁하여, 이러한 능력에 비례하여 지위나 부등을 배분받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그의 저서 ‘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지나친 능력주의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따라서 능력주의는 일면적 편향적 해석으로 이해 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형식적 기회균등에 근거한 능력주의 ①능력주의와 형평성: 능력주의는 능력과 보상의 비례적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자원의 배분원리입니다. 마이클 영에 의하면,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노력의 총화인 능력(능력=IQ+노력)이 인간의 지위나 부를 결정합니다. 능력이라는 투입이 지위를 산출하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능력주의가 지지하는 자원배분의 공
최근 재난지원금 지급과 맞물려,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미래 기술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대한 우려, 총수요 부족, 프레케리아트(precariat, 안정된 일자리 취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계층)를 위한 사회보장책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적어도 단계적으로 무조건적, 보편적, 정기적, 현금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의 주요 정체성을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본소득의 주요 정체성은 탈 노동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며, 저녁 시간에는 비판’을 하는 삶, 이러한 삶이 내뿜는 기운은 곧 자유입니다. 소득을 위해, 매력적이지 않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으로부터 탈출하여 스스로 자유로운 시간을 통제하는 자유 말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왕국’은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각자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삶이 영위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왕국은 안정된 물질적 기반에 의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이고 충분하며 정기적인 현금을 제공함에 따라 건설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본소득의 정체성은 돈을 벌
미국이 코로나 방역의 실패와 흑인들의 격렬한 시위로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갈등과 반목의 사회로 쪼개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19 사망과 미국 공공의료보험의 부재 지난 31일 기준으로 미국의 코로나 19 사망자는 10만6000여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다수의 사망자를 낳은 것은 전국민 공공의료보험을 갖추고 있지 않아, 흑인과 유색인종등 취약계층에 속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흡곤란이나 발열증상이 있다면 즉각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은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여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 미국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부재와 소극적 자유주의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불비는 미국사회의 주류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주류 사회는 행복을 로크식 자유주의, 즉 방해를 제거하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극적 자유주의는 미국의 제도가 공공적 지향성을 심각하게 퇴화시키는 배경이 됩니다. (이재승) 실제로 연방헌법은 행복추구권을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립선언에 포함되어 있던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배제되어, 인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면역을 ‘실험’하고 있는 스웨덴당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집단면역의 성공기준은 50~70%의 항체생성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선 3500명이상이 희생하여 항체를 가진 인구가 약25%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연대와 공동체주의에 근거하여 사민주의정신을 추종하는 스웨덴 당국이 오히려 공리주의자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웨덴당국을 집단면역 실험으로 몰고 갔을까요? 이는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정책과 무관하지 하지 않습니다. ◆ 스웨덴의 가치들의 결합 : 집단가치+ 개인가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조건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보편적 의료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입니다. 누구나 공동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누구도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합니다. 때문에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고부담의 수술을 거의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료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료공급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스웨덴의 의료체계는 세금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함께 이겨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료 시민을 돕는 행위는 어떤 원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정의의 원리일까요 ,연대의 원리일까요? ◆상호부조는 정의감의 발로 상호부조가 정의의 발로라는 주장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불운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엔 부의 몫이 같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천부적 능력의 불평등 탓에, 게다가 주어진 재능의 개발과 성숙이 가정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에, 제약된 사회의 자원은 사람들 사이에 배분을 달리합니다. 또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 사건에 의해 자연적 배분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눈먼 운’(brute luck)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개인은 불운을 통제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결과는 보상을 통해 바로잡아져야 합니다. 우호적이지 않은 여건이 열악한 처지를 만들었다면,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의 의무는 자연의 수혜를 받지 못한 이들의 처지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당연히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유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회의 성원은 불평등한
가치를 창조하는 데는 예상치 못한 변동(이에 대한 대처 역량)이 크게 기여합니다. 민주당의 4.15총선의 압도적 승리도 전통적인 세대효과에 있기보다 이러한 surprise, 위험(이에 대한 대처 역량)에 빚져있습니다. ◆ 자산가치 공식 환경적 특수성으로 표현되는 위험, surprise가 가치를 창조하는 실질적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간단한 자산 가치 공식으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실현된 가치(announcement)=기댓값(expected part) + 위험(surprise)” [이 식은 다음처럼 자산가치의 변동률(수익률)로 달리 표현될 수 있습니다. “실현된 수익률 = 기대수익률 + 예상치 못한 변동률”] 예를 들어 A기업 주식가격이 오늘 180원으로 결정되었고, 기댓값과 surprise는 각각 130원 50원입니다. 그런데 실현된 가격 180원은 과거 불확실성하에 예상되었던 기댓값 130원과 차이를 보입니다.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event)들이 발생하여 50원의 변동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변동(unexpected variation)은 surprise, 또는 innovation라 불립니다. 이는 장기평균 추세선으로
이번 4.15총선 특징의 하나로 정치 주류의 교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정의 주요 의사결정의 표준이 과거 보수우파의 그것에서 진보좌파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언론들은 이에 대한 근거를 더불어 민주당이 최근 전국단위 선거에서 4번 연속 승리(2016년 20대 총선,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하였다는데서 찾습니다. 특히 주류교체의 요소로 세대효과를 강조합니다. 인구 구성의 변화가 주류교체의 단단한 지반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 과연 이론으로 수용 가능할까요? ◆ 무엇이 추세변화를 가져오나? 정치주류의 교체는 이념의 추세가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추세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는 지적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이념의 경향성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향성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이에 대한 세 가지 가능성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허석재) 우선 구성원이 바뀔 때 추세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대효과 또는 출생시기를 공유하는 코호트효과입니다. 과거 청년들은 장년이 되듯이 사회 구성원은 순환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세대교체로 인해 이념의 추세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거친 파도로 인해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여객선 버지니아호에서, 피아노의 바퀴 고정 장치를 푼 나인틴헌드레드(1990)는 연회장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왈츠를 연주합니다. 격랑도 마법 같은 그의 연주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떠한 충격에도 평형상태를 유지하며 마음의 중심을 잡습니다. 1900년 1월 1일, 버지니아호 연회장의 피아노 위 상자 안에서 갓난아기로 발견된 나인틴헌드레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즉흥 음악으로 표현해 낼 만큼 천재적 피아노 실력을 발휘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육지를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상에서 단박에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한 여인을 찾아 육지로 떠나는 발걸음도 되돌립니다. 육지에서, 생활인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건만, 그의 천재적 음악 감성이라면 거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건만, 이 모든 달콤한 기회조차 내려놓습니다. 결국 그는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은 채, 여객선 악단의 피아니스트로, 생활인이 아닌 美의 창조자로 바다위에서 살아갑니다. 그가 써내려 가는 삶의 책 등을 한 손으로 받치며, 비록 죽음이 그를 위협할지라도, 평생 균형을 유지해 갑니다. 그렇게 유혹하는 욕망의 지나침에도, 깨지기 쉬운 용
베버(Max Weber)는 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신념과 행위의 일관성만을 강조하는 신념 근본주의에 빠져, 행위와 결과의 일치를 주장하는 책임윤리를 배격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념윤리 현실 초월적이고 근본적인 이념과 행위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존경받을 만한 행위입니다. 루터의 신념에 찬 행위는, 베버의 언급처럼,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터는 교황청이 판매하는 면죄부가 구원에 대한 성경적 원리(칭의,稱義)에서 벗어난 것이며, 독일시민에 대한 착취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521년, 면죄부를 판매하는 로마교황 레오 10세는 당시 독일의 통치자 찰스5세에게 루터의 복종 또는 사형을 부탁합니다. 찰스 5세는 루터에게 자신의 신념을 굽힐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자신의 신념이 성서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그 요구에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단호히 밝혔습니다. 이후 그는 친구 프레더릭의 보호를 받으며 라틴어로 쓰인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라틴어를 모르는 평민들에게 전파하였다. 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