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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QT ]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 [핑계의 신학과 회개의 신학]

- 조상 탓은 끝났다. 오로지 하나님 앞으로

(겔 18:1-4)1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saying, 2 “What do you mean by using this proverb concerning the land of Israel, saying, ‘The fathers eat sour grapes, But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3 As I live,” declares the Lord God, “you are surely not going to use this proverb in Israel anymore. 4 Behold, all souls are Mine; the soul of the father as well as the soul of the son is Mine. The soul who sins will die.” [NASB]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하였나니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겔 18:31-32)31 Cast away from you all your transgressions which you have committed and make yourselves a new heart and a new spirit! For why will you die, O house of Israel? 32 For I hav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anyone who dies,” declares the Lord God. “Therefore, repent and live.”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 핑계와 숙명론 인간은 위기에 처할수록 과거와 환경이라는 방패 뒤로 숨으려 합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섰던 바벨론 포로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조상의 죄 탓으로 돌리는 숙명론에 깊이 침잠해 있었습니다. 그 비극적 정서가 응축된 것이 바로 에스겔 18장 2절에 나오는 유명한 속담입니다. “What do you mean by using this proverb concerning the land of Israel, saying, ‘The fathers eat the sour grapes, But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NASB)“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 함은 어찌 됨이냐?” 이는 조상의 죄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는다는 책임 회피이자, 회개를 거부하는 영적 냉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18장을 통해 이 핑계의 방패를 정면으로 걷어내십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을 과거의 굴레에서 끄집어내어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핑계의 문이 닫힐 때 비로소 우리는 개인적 책임에 직면합니다. 이제 더 이상 조상 탓을 할 수 없게 된 백성들은 각자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숙명론을 해체하고 참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 역사적 배경: 망한 공동체의 자기 정당화 ① 숙명론의 배경 기원전 597년 이스라엘 백성의 2차 강제 이주, 그리고 586년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한 파괴.불과 11년 사이에 연속으로 덮친 이 두 사건 앞에서, 바벨론 땅의 포로 공동체는 신학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성전은 불탔고, 다윗 왕조는 끊겼으며, 약속의 땅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 현실 앞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붙잡은 것은 한 가지 논리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논리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므낫세의 죄악(왕하 21장)이 후대에 미친 심판을 기록하고 있으며, 출 20:5의 "조상의 죄를 삼사 대까지 갚는다"는 말씀도 그들의 기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로 공동체는 이 신학적 사실을 개인적 회개를 피하는 방패로 전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래의 속담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The fathers eat the sour grapes, But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겔 18:2) 이 속담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냉소였고, 회피였으며, 영적 나태의 신학적 정당화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조상들의 죄 때문이다’, ‘이미 심판은 정해진 것이다’, ‘지금 와서 회개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체념과 변명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동일한 속담이 예레미야 31:29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In those days they will not say again, 'The fathers have eaten sour grapes, and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렘 31:29, NASB). 바벨론 포로기를 관통하는 두 선지자가 동시에 동일한 속담을 인용하며 금지한다는 것은, 이 논리가 당시 포로 공동체 전반에 깊이 침투해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구조의 피해자다’ ‘내 삶은 이미 결정돼 있다’ ‘지금 돌이켜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숙명론은 개인의 기질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학이 되어 있었습니다. ②숙명론의 심리적 기제 이 경우의 숙명론의 심리적 기제는 단순합니다. 이런 숙명론의 뿌리에는 핑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책임의 원천을 핑계에 둘 때, 인간은 죄책감에서 해방됩니다. 그들은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도덕적·영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방은 거짓 해방입니다. 죄를 조상 탓으로 돌리는 순간, 회개의 이유도 사라지고 회복의 가능성도 닫힙니다. 포로 공동체의 냉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는 무력감은, 사실상 회개의 거부를 신학적으로 포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구조 전체를 정면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결국 집단적 운명론과 自嘲는 개인의 현재 상태를 도덕적 책임의 문제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원인을 가문, 역사, 운명 탓으로 돌림으로써 “내가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려 한 것입니다. 핑계가 숙명론을 낳고, 숙명론이 다시 회개를 막는 악순환이 나타난겁니다. ◆왜 하나님은 그 속담을 깨뜨리시는가 : 숙명론자 vs 단독자 에스겔 18장의 핵심 목적은 바로 이 체념 구조를 무너뜨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속담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속담이 단지 현실 인식을 넘어, 회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핑계 체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As I live," declares the Lord God, "you are surely not going to use this proverb in Israel anymore. Behold, all souls are Mine; the soul of the father as well as the soul of the son is Mine. The soul who sins will die." (겔 18:3-4, NASB) 이 선언은 단순한 금지를 넘어, 핑계를 숙명으로 둔갑시키는 구조 자체를 해체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문, 조상, 과거의 내력을 구원의 기준에서 완전히 제거하시고, 각 개인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우십니다. 여기서 '단독자'란 고립된 개인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아들로서도, 어떤 가문의 후손으로서도 아닌, 오직 '나 자신'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조상의 의가 나를 대신할 수 없고, 조상의 죄가 나를 절망으로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에스겔 18:4의 선언이 함의하는 바입니다. "Behold, all souls are Mine"(NASB). 모든 영혼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아버지의 영혼도, 아들의 영혼도, 각각 직접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 소유의 선언은 동시에 관계의 선언입니다. 각 영혼은 가문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단독자로 선다는 것은 조상의 굴레에서 해방된다는 선언입니다. 조상과 나를 감싸고 있는 환경이 나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처럼 이 '단독자'의 개념은 냉혹한 고발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존엄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가문의 일원으로, 역사의 산물로, 환경의 피해자로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금 이 순간 그분 앞에 직접 서 있는 한 인격체로 보십니다. 결국 숙명론이 인간을 역사의 수동적 결과물로 만든다면, 하나님의 이 선언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반응하는 능동적 존재로 복원합니다. 즉 핑계는 우리를 과거라는 숙명의 사슬에 묶어두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결박을 끊고 우리를 '코람데오(Coram Deo)'로 불러내십니다. 코람데오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으로, 조상이나 환경이라는 군중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단독자로 끄집어내어 오직 하나님과 나만이 마주하는 정직한 직면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의 상처를 방패 삼아 오늘을 유예하던 태도를 버리고,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 아래서 내 삶의 진정한 책임자로 다시 서는 실존적 결단을 의미합니다. ◆ “왜 죽고자 하느냐” : 하나님의 호소 하나님은 백성이 죽어가는 현실 앞에서 단순히 차가운 교리적 명령만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바벨론의 거친 땅에서 희망을 잃고 서서히 말라가는 포로들의 처참한 몰골을 바라보시며, 가슴 저미는 애절함으로 물으십니다. “For why will you die, house of Israel?” (겔 18:31)“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① 질문이 아닌, 사랑에 찬 탄식 이 한마디는 단순한 정보의 확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이자, 무너져 내리는 사랑의 탄식입니다. “너희가 왜 굳이 죽는 길을 선택하느냐? 이미 충분히 고통받지 않았느냐? 언제까지 조상을 탓하고 운명을 원망하며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가려 하느냐? 지금이라도, 바로 이 순간이라도 내게로 돌아와 제발 살아다오!” 가족과 성전, 그리고 삶의 기반을 모두 잃고 숙명론이라는 마지막 동굴로 숨어버린 포로들에게 하나님은 외치십니다. “내가 너희를 이토록 사랑하는데, 너희는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하느냐”는 통곡에 가까운 물음입니다. ② 하나님의 성품: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심판받아 죽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에스겔 18장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단 한 영혼이라도 돌이켜 살아나기를 원하는 '살려냄'에 있습니다. “For I hav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anyone who dies,” declares the Lord GOD. “Therefore, repent and live.”“내가 죽는 자의 죽음을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돌이켜 살라” (겔 18:32) 이 호소는 법정의 판결문이 아니라, 자식을 死地에서 끌어내려는 아버지의 절규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선 백성에게 “제발 죽지 말고 살아라”고 애원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심장이 이 구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⓷변명이 사라진 자리, 생명을 향한 선택 숙명론이라는 핑계의 방패를 걷어내고 개인의 책임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백성의 무너진 마음을 정면으로 두드리십니다. “For why will you die, house of Israel?”“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이 물음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거리가 사라집니다. 오직 선택만이 남습니다. 죽음인가, 생명인가. 계속해서 핑계 뒤에 숨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인가 ◆ 중생을 향하여 숙명론은 언제나 책임을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조상 탓, 역사 탓, 운명 탓. 그 논리가 작동하는 한 회개는 불필요해집니다. 내가 아니라 조상이 신 포도를 먹었고, 내가 아니라 역사가 나를 여기까지 밀어왔다면, 지금 내가 돌이켜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숙명론은 이처럼 회개의 근거를 조용히 제거합니다. 하나님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무너뜨리십니다. "The soul who sins will die"(겔 18:4, NASB). 심판의 단위는 가문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죄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조상의 의가 나를 살리지 못하고, 조상의 죄가 나를 죽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냉혹한 고발이지만, 동시에 회복의 가능성을 여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18장은 여기서 멈춥니다. 핑계를 걷어내고, 책임을 확정하고, 인간의 불능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인간의 불능이 확정된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옵니다. 그것이 중생입니다. 결국 숙명론은 우리를 과거의 포로로 묶어두지만, 코람데오의 부르심은 우리를 오늘의 책임자로 세웁니다. 핑계의 신학이 죽고 회개의 신학이 살아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무능을 딛고 하나님의 전적인 중생의 은혜를 마주하게 됩니다.


[ 말씀 QT ] 기사 요약과 Quiz :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 [핑계의 신학과 회개의 신학]

[ 기사 요약 ] 제목: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 — 핑계의 신학과 회개의 신학 주제: 에스겔 18장을 통해 드러나는 숙명론의 해체와 개인 책임, 그리고 중생으로의 신학적 전환 1. 개요이 글은 바벨론 포로기 이스라엘 공동체가 빠졌던 숙명론적 사고를 분석하고, 에스겔 18장을 통해 하나님이 이를 어떻게 해체하시는지를 설명한다. 핵심은 “조상 탓”이라는 집단적 책임 회피 구조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워 개인적 회개와 책임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며, 결국 중생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신학적 구조를 제시한다. 2. 문제 제기이스라엘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조상에게 돌렸다. 이 사고는 단순한 현실 설명이 아니라 책임 회피와 회개 거부의 논리로 기능했다. 그 결과 인간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대신, 회개와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게 된다. 3. 핵심 논지3-1. 숙명론의 해체하나님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는다”는 선언을 통해 심판의 기준을 개인으로 전환하신다. 이는 조상, 가문, 역사라는 집단적 틀을 제거하고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직접 서도록 만드는 선언이다. 3-2. 단독자의 개념인간은 더 이상 가문의 일부나 환경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직접 서는 존재로 규정된다. 이때 ‘단독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직접적 관계를 맺는 인격적 존재를 의미한다. 3-3. 코람데오코람데오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으로, 인간이 더 이상 핑계 뒤에 숨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책임 회복과 실존적 전환을 뜻한다. 3-4. 하나님의 호소“왜 죽고자 하느냐”는 말씀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돌이키기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이다. 하나님은 심판 자체보다 생명을 원하시며, 지금이라도 돌아오기를 요청하신다. 3-5. 인간의 한계와 전환숙명론이 제거되고 책임이 확정되면 인간은 더 이상 핑계에 숨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4. 신학적 구조이 글은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른다. 숙명론 → 책임 회피 → 하나님의 선언 → 개인 책임 확립 → 코람데오 → 회개 요구 → 인간의 한계 인식 → 중생 5. 핵심 주장숙명론은 회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이며, 하나님은 이를 해체하여 인간을 책임적 존재로 회복시키신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새 마음을 만들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루어진다. 6. 결론숙명론은 인간을 과거에 묶어두지만, 코람데오는 인간을 하나님 앞 현재의 책임자로 세운다. 그리고 그 책임의 자리에서 드러난 인간의 한계는 결국 하나님의 중생의 은혜로 나아가게 만든다. 7. 한 줄 요약조상 탓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인간은 책임을 직면하고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게 된다.  [ 기사 이해 Quiz ] 주제: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 — 핑계의 신학과 회개의 신학 1. 기사에서 바벨론 포로 공동체가 빠졌던 핵심 문제는 무엇입니까?정답: 조상의 죄 탓으로 현재의 고통을 설명하는 숙명론입니다. 해설: 기사에 따르면 포로 공동체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으로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조상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현실 설명이 아니라 책임 회피와 회개 거부의 신학으로 기능했습니다. 2. 에스겔 18장 2절의 속담은 어떤 심리와 신학을 드러냅니까?정답: 책임 회피, 영적 냉소, 회개 거부를 드러냅니다. 해설: 이 속담은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조상들 때문”이라는 논리를 통해 현재 자신의 죄와 책임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기사에서는 이를 냉소와 회피, 그리고 영적 나태의 신학적 정당화라고 설명합니다. 3. 하나님께서 그 속담을 금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정답: 그 속담이 회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핑계 체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설: 하나님은 단지 잘못된 속담 하나를 없애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조상 탓, 운명 탓을 통해 인간이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를 거부하는 구조 자체를 해체하시기 위해 그 속담을 깨뜨리십니다. 4. “The soul who sins will die”라는 선언의 핵심 의미는 무엇입니까?정답: 심판의 기준이 가문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뜻입니다. 해설: 기사에서 이 구절은 하나님이 각 사람을 하나님 앞에 직접 세우시는 선언으로 해석됩니다. 조상의 죄가 나를 자동으로 죽이지도 않고, 조상의 의가 나를 자동으로 살리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5. 기사에서 말하는 ‘단독자’란 무엇입니까?정답: 조상, 가문, 환경 뒤에 숨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으로 직접 서는 존재입니다. 해설: 단독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 놓인 존재를 뜻합니다. 즉 “누구의 후손” 이전에 “하나님 앞에 선 나”를 의미합니다. 6. 코람데오(Coram Deo)란 무슨 뜻입니까?정답: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해설: 기사에서는 코람데오를, 군중과 조상과 환경 뒤에 숨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로 설명합니다. 이는 실존적 책임 회복의 자리입니다. 7. 기사에 따르면 숙명론이 인간에게 주는 ‘해방’은 왜 거짓 해방입니까?정답: 죄책감에서는 벗어나게 하지만 회개의 이유와 회복의 가능성까지 닫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해설: 조상 탓을 하면 당장은 마음이 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신이 돌이켜야 할 이유도 사라지고, 변화와 회복의 문도 함께 닫히게 됩니다. 이것이 기사에서 말하는 ‘거짓 해방’입니다. 8. “왜 죽고자 하느냐”는 말씀은 기사에서 어떻게 해석됩니까?정답: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돌이켜 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로 해석됩니다. 해설: 기사에서는 이 표현을 법정 판결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절규처럼 읽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사랑으로 호소하십니다. 9. 기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정답: 죽는 자의 죽음. 해설: 에스겔 18장 32절은 하나님의 본심이 심판 자체가 아니라 돌이켜 살아나는 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사도 이를 “살려냄”의 성품으로 해석합니다. 10. 기사에서 “핑계의 신학”이란 무엇입니까?정답: 조상, 역사, 환경, 운명을 이유로 들어 자기 책임과 회개를 회피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해설: 핑계의 신학은 인간을 과거의 포로로 묶어 두는 신학입니다. “내 탓이 아니다”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회개는 약해지고, 인간은 점점 하나님 앞의 책임에서 멀어집니다. 11. 기사에서 숙명론과 코람데오는 어떤 대조를 이룹니까?정답: 숙명론은 인간을 과거와 환경에 묶어 두고, 코람데오는 인간을 하나님 앞 현재의 책임자로 세웁니다. 해설: 이 글의 중심 대조입니다. 숙명론은 인간을 수동적 결과물로 만들지만, 코람데오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응답해야 하는 존재로 복원합니다. 12. 기사 말미에서 에스겔 18장이 독자를 어디로 이끈다고 설명합니까?정답: 중생, 곧 하나님의 은혜로 이끕니다. 해설: 기사는 에스겔 18장이 숙명론을 깨뜨리고 책임을 확정하며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 뒤,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은혜와 중생을 바라보게 만든다고 정리합니다. 13. 기사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다는 것은 어떤 존엄을 의미합니까?정답: 인간이 가문의 부산물이나 환경의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대면하시는 인격체라는 존엄입니다. 해설: 기사에서 단독자 개념은 단순히 책임만을 강조하는 차가운 선언이 아닙니다.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직접 응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존엄을 회복시키는 선언입니다. 14. 다음 중 기사 내용과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① 조상의 죄는 언제나 자녀의 운명을 결정한다. ② 숙명론은 인간을 더 겸손하게 만든다. ③ 핑계가 숙명론을 낳고, 숙명론이 다시 회개를 막는다. ④ 코람데오는 공동체를 부정하는 개인주의다. 정답: ③ 해설: 기사 전체의 핵심 논리를 가장 잘 요약한 문장입니다. ①은 에스겔 18장의 핵심과 반대이고, ②는 기사와 정반대이며, ④도 틀렸습니다. 코람데오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앞의 직접적 책임을 말합니다. 15. 이 기사에서 말하는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의 전환을 두세 문장으로 설명해 보십시오.예시 정답: 숙명론은 인간이 자신의 고통과 죄의 책임을 조상과 환경 탓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 18장을 통해 이 핑계 구조를 깨뜨리고 각 사람을 하나님 앞에 직접 세우십니다. 그 결과 인간은 회개와 책임의 자리로 나오게 되며, 자신의 한계를 직면한 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 해설: 이 문항은 글 전체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문제입니다. 숙명론 해체, 단독자, 코람데오, 책임, 은혜의 흐름이 드러나면 좋습니다.

[ 말씀 QT ] 이란에 추락한 미군 조종사의 고백, "God is good"의 의미 [ 성화의 열매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the on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proves to be One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NASB) --히브리서 11:6 ◆ “God is good” 한 마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온 고백 이란 방공망에 격추된 F-15E 전투기에서 비상 탈출한 미군 무기체계 장교는 적진 한복판에서 부상당한 채 36시간 동안 바위 틈에 숨어 있었습니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가 보낸 첫 무전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God is good. 하나님은 선하시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고백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강한 믿음이다”, “멘탈이 대단하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이 장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합니다. 이 고백을 인간의 심리적 강인함이나 종교적 의지의 산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의 결과로 드러난 신앙의 반응, 곧 자기부인의 형태로 나타난 살아 있는 기도로 이해합니다. 다시말해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나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사건에 대한 해석과 결론을 스스로 붙들고 있으려는 본능을 내려놓고, 그 최종 판단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 앞에서까지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성화는 어떻게 이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만드는가. ◆ 성화, 네가지 변화 성화(Sanctification)는 그리스도인이 평생에 걸쳐 경험하는 거룩함의 성장 과정입니다. 즉 성화는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이 변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① 존재 변화: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정체성의 전환 성화의 가장 깊은 층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삶의 중심이었고, 판단과 의미 부여의 기준도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화 안에서 신자는 점점 더 분명히 다음과 같이 깨닫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다.” 이것이 자기부인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입니다. 자기부인은 자기 존재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기는 존재론적 전환입니다. ② 성품 변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방향으로의 변화 성화는 감정과 성향, 즉 성품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바뀌는 변화입니다. 성화가 진행될수록 신자의 성품은 점점 다른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전에는 죄가 자연스럽고, 자기 만족과 자기 보호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진행될수록 신자는 점점 더 하나님을 기뻐하고, 죄를 불편해하며, 자기중심적 욕망을 경계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려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복잡한 행위의 목록을 충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핵심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the on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proves to be One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NASB) 이 구절에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단순 막연한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선하심·보상하심(언약 신실함)을 신뢰하는 태도로 규정합니다. 즉 이 믿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⓷의지 변화: 선택의 기준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주권을 이동하는 것 성화는 의지의 변화를 동반합니다.이 변화의 핵심은 단순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주권 자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스스로 쥐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의미를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권한도 자신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나는 끝났다” “이 상황은 절망이다” “이제 방법이 없다”와 같은 결론을 스스로 확정하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판단의 주권을 자신이 행사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화가 진행될수록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신자는 점점 더 “이 사건의 최종 판단권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의지의 변화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전에, 누가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주권의 이동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내리는 결론”보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결론”을 따르려는 의지로 나타납니다. 즉 자기부인은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재정렬입니다. ④ 행동 변화: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순종의 열매 성화는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존재와 성품, 의지의 변화는 내면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반응과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즉 성화란 단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실제 위기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검증되는 삶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두려움에 휩쓸려 절망으로 반응하고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통제하려 하며 △불평과 불안으로 대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이루어질수록 신자의 행동은 점점 달라집니다.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통제하려 하기보다 맡기며, 불평 대신 신뢰로 반응하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싶은 방식”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즉 생각과 의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반응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행동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종합하면, 이 네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화는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이 변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성화의 네가지 변화 : 조종사의 사례 앞선 성화의 네가지 변화는 조종사의 사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① 존재의 변화: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인정입니다 적진 한복판, 언제 발각되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붙잡으려 합니다.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극대화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조종사가 내놓은 첫 언어는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선하시다”였습니다. 이 고백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존재적 인정입니다. 즉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생사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쥐려 하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자신을 위치시킨 것입니다. ② 성품 변화: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려는 방향으로의 변화입니다 조종사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상황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확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했고 △자신의 결론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했으며 △자신의 통제 욕구보다 하나님께 맡김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되게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분명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따르는 마음, 곧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믿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부인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 전환입니다. ③ 의지 변화: 주권의 이동 적진 한복판,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종사는 충분히 자신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 “이 상황은 절망적이다”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첫 번째 언어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 말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의 최종 해석자가 되기를 거부한 의지의 선택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판단을 확정하지 않았고 상황에 대한 최종 결론을 스스로 내리지 않았으며그 판단의 권한을 하나님께 넘겨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권의 이동입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이 상황을 규정하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가 최종적인 것이다” 라는 위치에 섰습니다. 결국 의지의 변화로 나타나는 자기부인은, 삶과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권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이양하는 것이며,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바로 그 주권 이동이 실제로 드러난 의지의 선택입니다. ④ 행동 변화: 신뢰를 드러내는 행동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단순히 마음속으로만 신뢰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뢰는 즉각적인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보낸 첫 무전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 순간 그가 선택한 행동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는 공포에 압도된 반응을 선택하지 않았고 절망적인 결론을 외부로 확정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응답했습니다. 즉 그는 그 순간 두려움에 반응하는 행동 대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드러내는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성화가 행동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결국 행동 변화로 나타나는 자기부인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본능적 반응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며, 조종사의 고백은 바로 그 신뢰의 열매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성화의 근원: 이 모든 변화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존재·성품·의지·행동의 변화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덕적 성장이나 훈련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화의 본질은 인간의 결단이나 의지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This effectual call is of God’s free and special grace alone… who is altogether passive therein, until… quickened and renewed by the Holy Spirit.” (WCF 10.2)“이 유효한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성령에 의해 살아나고 새롭게 될 때까지는 그렇다.” 이 고백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신앙의 시작도, 성화의 진행도 인간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칼빈주의 신학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성령의 선행적 역사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선하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는 일은 타락한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상황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붙드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인간의 자연적 반응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는 반응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화의 근원이 드러납니다. 성화의 근원은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성령께서 먼저 죽어 있던 영혼을 살리시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인식하게 하시고, 그 신뢰를 실제 선택과 반응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즉, 신자의 믿음과 신뢰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면에서 먼저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 결과로 신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방향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화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할은 그 원인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에 의해 가능해진 응답입니다. ◆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는 찬양의 언어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언어나 개인의 정신력에서 나온 반응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성령께서 먼저 그의 영혼을 살리시며 △ 믿음을 일으키시며 △그 믿음을 성화의 과정 속에서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게 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격적 응답입니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차원에서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했고 △성품의 차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의지의 차원에서 판단과 결론의 권한을 하나님께 이양했고 △행동의 차원에서 그 신뢰를 실제 고백으로 드러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God is good.” 이라는 말로 응축되어 드러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백은 인간의 능력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는 성령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신 성화가 한 순간에 집약되어 드러난 사건입니다. 성화란 인간이 스스로를 붙들고 더 강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인간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해석과 결론을 붙들지 않고,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때, 신자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있습니다. “God is good.” 이 고백은 상황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확신이며, 자기 중심적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종 주권자로 인정하는 신앙의 결론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인간의 의지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가 전인격적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이는 영혼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변화된 것에서 나온 것으로,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의 언어입니다. ■ 곡명 "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내 구원주 살아계심을 내가 아니(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 song by Kiri Te Kanawa 욥기 19장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의 핵심은 '느낌(feel)'이 아니라 '앎(know)'에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교리를 배웠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기에, 지금 이 적진 한복판에서도 나는 그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인격적인 신뢰를 포함합니다. 조종사의 고백처럼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이라는 확정된 진리에만 근거하여 내뱉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이처럼 내 구원자(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의 성격 ] 물적 분할 문제의 보완 필요 ◆ 물적분할 ① 물적분할의 성격 = 현물출자 물적분할은 기존기업의 자산 부채를 신설기업에게 포괄 이전하고 신설기업은 주식을 발행하여 주식100%를 기존기업에게 이전하는 분할을 말합니다. 물적분할의 성격은 현물출자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A사는 전자 사업부와 건설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사는 물적분할하여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신설기업인 B사에 이전하고, B는 A에게 신주100%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적분할로 인해, A기업의 사업구성은 분할이전의 ‘전자사업부 + 건설 사업부’에서 분할 이후의 ‘전자사업부 + B의 주식’으로 변경됩니다. 이를 분할회계처리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배주주 A사: (차) 종속기업 주식 ×× (대) 건설사업부 순자산 ××, 처분익×× 종속회사 B사: (차) 건설 순자산(공정가액) ×× (대) 자본×× 위의 회계처리처럼, A사는 신설기업B에게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이전하고 그 대가로 B주식을 인수하였습니다. B는 A로부터 건설자산을 이전받고 A에게 B주식을 발행하였습니다. 이처럼 물적분할은 현물출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② 물적분할 성격 = 매각거래 물적분할의 경우, 분할회사는 분할을 매각거래로, 신설회사는 분할회사로부터

[ 감세와 고율관세정책 간의 모순 ] ‘트럼프 2기에 고율 관세가 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감세와 고관세의 조합으로 요약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2018년에 발효된 일몰법인 TCJA(감세와 일자리 법 :Tax Cuts and Jobs Act)를 연장 또는 영구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TCJA에 더하여, 추가 세금 인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세로 인해 촉발되는 재정적자는 고율관세로 메울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고율관세는 미국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줄것으로 예상됩니다. ◆ 거침 없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감세를 정책 노선으로 삼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장애물 없이 원하는 모든 법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속해있는 공화당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입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선, 동일한 법안이 상원 및 하원에서 각각 통과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원에서 발의된 법안은 관련 위원회(소위원회의 심사와 청문회, 상임위에서 수정과 표결)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 후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상원으로 전달됩니다. 상원의 관련 위원회를 거친 후 본

[ 기업 다각화의 장단점 ] 산업다각화와 국제다각화의 장단점은? 기업다각화는 산업다각화와 국제적 다각화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다각화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다각화 산업다각화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①긍정효과다각화로 인해 현금흐름 상관성이 낮을 경우, 다각화는 현금흐름의 안정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러한 현금흐름안정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켜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조달능력을 증대시킵니다. 한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경우, 그 기업의 수익은 시장전체의 경기변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기업의 수익률 변동이 시장전체의 수익률 변동과 동조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이처럼 그 기업의 수익률의 변동성과 시장전체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의 변동성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면, 이는 그 기업의 체계적 위험인 베타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베타가 높다면, 그 기업의 자기자본비용은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자본비용과 타인자본비용의 가중평균인 가중평균자본비용도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높은 자본비용은 기업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기업 가치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금액을 위험(재무위험과 영업위험)과 자본조달활동을 반영한 가중평균자본비용으로 할인한 금액인데, 분자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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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QT ] 기사 요약과 Quiz :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 [핑계의 신학과 회개의 신학] [ 기사 요약 ] 제목: 숙명론에서 코람데오로 — 핑계의 신학과 회개의 신학 주제: 에스겔 18장을 통해 드러나는 숙명론의 해체와 개인 책임, 그리고 중생으로의 신학적 전환 1. 개요이 글은 바벨론 포로기 이스라엘 공동체가 빠졌던 숙명론적 사고를 분석하고, 에스겔 18장을 통해 하나님이 이를 어떻게 해체하시는지를 설명한다. 핵심은 “조상 탓”이라는 집단적 책임 회피 구조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워 개인적 회개와 책임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며, 결국 중생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신학적 구조를 제시한다. 2. 문제 제기이스라엘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조상에게 돌렸다. 이 사고는 단순한 현실 설명이 아니라 책임 회피와 회개 거부의 논리로 기능했다. 그 결과 인간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대신, 회개와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게 된다. 3. 핵심 논지3-1. 숙명론의 해체하나님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는다”는 선언을 통해 심판의 기준을 개인으로 전환하신다. 이는 조상, 가문, 역사라는 집단적 틀을 제거하고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직접


[ Music & Mind ]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장의 결단: 들리지 않는 심연에서 건져 올린 '무조건적 자기수용'의 선율 ◆바이올린 소나타 5번 2악장: 재구축된 세계의 평온함 봄 소나타(Spring Sonata)’라는 별칭이 붙은 바이올린 소나타 5번, 2악장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얼마나 순수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릴 수 있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 시기에 탄생한 2악장(Adagio molto espressivo)은 그가 고통 속에서 재구축한 내면의 정서를 가장 명징하게 들려줍니다. 이 악장은 고통과의 처절한 사투가 아니라, 믿기 힘들 정도로 서정적 (molto espressivo)이며 깊은 명상적 평온을 자아냅니다. 특히 코다(Coda)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부드러운 선율은 외부와의 단절을 슬퍼하는 통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냉혹한 현실(상태)을 읊조리는 피아노와, 그럼에도 그 존재를 수용하는 바이올린이 나누는 고차원적인 대화입니다. 이 선율은 알베르트 엘리스의 이론인 ”무조건적 자기수용(USA)“을 떠오르게 합니다. “나의 상태가 고통스러울지라도, 나는 나의 존재를 수용한다”라는 단단한 이중 태도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서정적 태도는 베토벤이 육체적 결핍을 비난하는 대신, 그 빈자리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채우며 자신만의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