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은 표면적으로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질서를 충실히 따르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재현부라는 익숙한 복귀의 지점에서 예기치 않은 변형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이탈은 고전적인 ‘승리와 해결’의 서사를 거부하는 대신, 그 자리에 찰나의 희망과 ‘상처 입은 치유자’의 실존적 의미를 자신만의 정교한 음악적 언어로 새겨 넣습니다.
◆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 전통적 소나타의 조성 vs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조성
①전통적 소나타의 조성 운영
전통적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주제 소개) → 발전부(주제 변형/갈등) → 재현부(주제 재확인)의 구조를 가집니다.제시부에서 상반된 두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부에서 이를 변형·충돌시키며, 다시 재현부에서 하나의 틀 안에서 정리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이를 통해 ‘긴장–전개–수습(승리)’의 서사를 음악 논리로 구현하는 형식이 소나타 형식입니다.
⒜ 제시부(Exposition)
두 개의 주제, 곧 제1주제와 2주제가 등장하며 이 둘의 대비가 형성됩니다. 제1주제(Primary Theme)는 대개 주조성(으뜸조)에서 제시되어 곡의 기본 성격과 방향을 설정합니다.
제2주제(Secondary Theme)는 이에 대조되는 성격으로 제시되면서 조성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단조 소나타(예: A단조)라면 관계장조(C장조) 또는 평행장조(A장조) 등의 ‘장조권’으로 향하는 것이 전형적 관례입니다. 이때 서로 다른 성격과 조성의 병치는 곧바로 음악적 긴장과 기대를 만들어냅니다.
[ 참고: 관계조(Relative key / Related key)란 같은 조표(♯, ♭ 개수 동일)를 쓰는 장조 ↔ 단조 쌍을 말합니다. C장조의 음계는 C D E F G A B이고 A단조(자연단음계)의 음계는 A B C D E F G인데, 둘의 조표(조표 없음)가 똑같고 둘의 음정 순서만 다릅니다. 평행조는 같은 으뜸음(토닉)을 공유하는 장조와 단조의 한 쌍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C장조와 C단조, A장조와 A단조가 각각 평행조 관계입니다.]
⒝발전부 (Development)
제시부의 재료를 분절·변형·재배치하는 구간입니다. 주제의 일부 동기가 확대되거나 뒤섞이고, 조성이 불안정하게 이동하며 긴장이 고조됩니다(예:F장조, D단조 등 자유 전조). 형식상으로는 가장 자유롭고 역동적인 부분입니다.
⒞ 재현부(Recapitulation)
갈등이 해소됩니다. 즉 제시부에서 이탈했던 제2주제가 주조성 A단조로 회귀하여 주조성으로 통합됩니다. 그 결과 조성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두 주제가 같은 조 안에서 공존하게 되면서, 형식은 갈등을 수습하고 통합하는 결말을 형성합니다.
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실제 조성 운영
1악장은 이 전통적 소나타 골격을 따르면서도, '웃으면서 우는' 낭만주의적 정서를 통해 고전적 ‘해결’의 감각을 미묘하게 변형합니다.
⒜제시부
제1주제는 A단조(a minor)로 제시되며, 정서적으로는 슬픔과 서정성이 강조됩니다. 이후 경과부(Transition)를 거치며 조성은 C장조(C major)로 전조됩니다. 제2주제는 C장조(C major)로 등장해 밝고 경쾌한 “희망”의 인상을 부여합니다. 이 지점까지는 단조 소나타의 전형, 곧 '제2주제 = 관계장조'(C장조)라는 관행과 정합적입니다.
⒝발전부
발전부에서는 전통처럼 조성 이동이 자유롭지만, 그 정서적 밀도가 더 격렬하게 체감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컨대 F장조(F major) → D단조(d minor) → F장조(F major) → F단조(f minor) → A단조(a minor) 등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전조가 폭풍 같은 정서를 형성하고, 이후 재현부로 귀환합니다.
⒞재현부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재현부에서 발생합니다. 전통적 규범이라면 재현부의 제2주제는 A단조(a minor)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재현부의 제2주제는 A장조(A major)로 등장합니다.
즉, 제시부에서 C장조(C major)였던 제2주제가 재현부에서 A장조(A major)로 “승격”되어 희망이 솟는 듯한 느낌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A장조의 희망은 전체 곡의 중심이 여전히 A단조(a minor)에 놓여 있으므로, A단조의 주조성 세계 안에서 잠시 “이방인”처럼 떠 있는 인상을 남깁니다.
그리고 Coda(곡의 ‘꼬리,곡이나 악장의 끝에 덧붙여지는 종결부)에서 다시 A단조로 사그라지며, 장조의 빛은 슬픔의 세계 속으로 녹아드는 듯한 여운을 형성합니다.
◆조성 흐름 비교
⒜전통적 단조 소나타(고전주의 관행)
·제시부: A단조→ C장조(제2주제)
·발전부: 자유 전조(예: F장조, D단조 등)
·재현부:A단조(제1주제) + A단조(제2주제의 회귀)
·서사: “다른 조성”이 주조성에 통합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제시부:A단조(제1주제) → C장조(제2주제)
·발전부: 격렬한 전조(예: F장조 → D단조 → F장조 → F단조 → A단조)
·재현부: A단조(제1주제) + A장조(제2주제) → 코다에서 A단조로 사그라짐
·서사: 장조가 “해결”로 확정되기보다, 단조 현실에 흡수·침잠
⒞ 고전주의 규범 대비 슈베르트의 의도
결론적으로 고전주의의 엄격한 기준에서는 재현부에서 제2주제가 A단조로 회귀해 갈등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재현부에서 제2주제가 A장조로 등장함으로써, 형식적 통합의 규범을 느슨하게 만들고 정서적 양가성을 극대화합니다.
고전주의가 “긴장 → 해결 → 승리”의 내러티브를 지향한다면, 슈베르트는 “슬픔(A단조) 속의 희망(장조)이 잠시 비치지만, 끝내 단조의 현실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이는 베토벤식의 투쟁과 승리의 도식과 달리, 슈베르트 특유의 ‘웃으며 우는’ 낭만적 정서가 조성 운영의 구조 자체로 구현된 사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1악장: ‘상처 입은 치유자’의 조성 서사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을 ‘상처 입은 치유자’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단순히 희망이 사그라지고 슬픔만이 남는 체념의 기록이 아닙니다. 코다에서 다시금 확인되는 A단조(a minor)의 종지는 상처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가 타인의 고통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척도(Measure)’로 기능하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추는 ‘별(Star)’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음악적 구조를 통해 증언합니다.
①Exposition:나우웬의 ‘환대(Hospitality)
제시부에서 제2주제로 나타나는 C장조는, 단조 소나타에서 관계장조로 이동하는 고전주의적 관행을 따르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전조는 단순한 분위기 전환이 아닙니다. 나우웬의 언어로 말하면, 이는 고통을 당장 해결하려는 기술이 아니라 고통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공간입니다.
②Development :전조의 격랑
발전부에서 조성은 안정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불안정하게 이동합니다. 이 격렬한 전조와 분출은, 상처가 “곧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의 관점에서 발전부는 치유자가 겪는 내면의 전투, 곧 낫지 않는 통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과정의 상징입니다.
이는 케이론의 역설을 말하는 듯합니다. 케이론의 신화는 “낫지 않음”이 치유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유자의 깊이를 만든다는 역설을 말합니다.
발전부는 바로 그 역설의 음악적 구현입니다. 상처은 반복되고 흔들리며 돌아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반복과 흔들림 속에서 치유자의 감각이 연마됩니다.
고통의 순환과 재발은 실패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각할 수 있는 심연의 형성입니다. 치유는 기술이 아니라, ‘심연을 통과한 경험’이라는 사실을 슈베르트는 발전부에서 밀어붙입니다.
③Recapitulation
전통적 소나타 형식을 따르면, 제2주제는 A단조(a minor)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즉 제시부에서 다른 조성으로 나갔던 제2주제는 재현부에서 주조성 A단조(a minor)로 돌아와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 서사’의 구조적 핵심입니다. “다른 것”이 “하나”로 흡수되며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여기서 결정적인 전환을 추구합니다.
재현부의 제2주제가 A단조가 아닌 A장조로 등장하는 겁니다. 이 순간은 작품의 정서적 전환점이자, ‘상처 입은 치유자’의 면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치입니다.
A단조와 A장조는 으뜸음 A를 공유하는 평행조(Parallel Key) 관계입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의 장조는 고통을 몰랐던 순진한 밝음이 아닙니다. 고통을 통과한 뒤에야 얻는 ‘성숙한 희망’입니다. 상처를 지우는 약이 아니라, 상처를 껴안은 채 그 안에서 길어 올린 희망입니다.
하지만 이 A장조는 “이제 다 나았다”는 완쾌의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현실(A) 속에서도 여전히 노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듯합니다. 이 때문에 청취자는 “희망이 이긴 것” 같은 착시를 경험합니다.
◆코다(Coda) 상처의 재해석
코다에서 A장조의 빛은 점차 사그라들고 곡은 다시 A단조(a minor)로 정리됩니다. 이는 “결국 다시 어둠”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들려주는 것은 어둠의 승리가아니라 상처의 재정의입니다.
코다의 A단조는 패배가 아니라, 상처가 ‘치유자의 권능’으로 변환되는 정점입니다. A단조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장조의 빛을 통과한 ‘희망을 품은 상처’가 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상처의 척도화(Measure)
코다의 무거운 리듬과 압력은 희망을 꺾는 폭력이 아니라 감각을 교정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상처를 지우지 않았기에 치유자는 타인의 고통을 정확히 읽어낼 ‘눈금(Measure)’을 갖게 됩니다. 융이 말한 “상처가 치유의 힘을 재는 척도”는 여기서 단순한 심리학적 명제가 아니라, 코다에서 음악적 시간으로 구현됩니다.
⒝상처의 환대(Hospitality)—타인의 고통을 위한 ‘자리 남김’
마지막에 남는 단조의 자리는 ‘내가 완벽히 극복했다’고 선언하는 자리와 다릅니다. 오히려 아직 아픈 사람만이 내어줄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상처가 남아 있기에 타인의 상처가 들어올 수 있고, 치유자는 그 고통을 서둘러 해석하거나 처방으로 덮지 않은 채 함께 버팁니다. 코다의 단조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위한 자리 마련, 곧 환대입니다.
⒞ 상처의 별(Star) — 흉터에서 빛나는 '좌표'로
재현부의 눈부신 A장조는 코다에서 다시 A단조라는 본래의 상처로 회귀합니다. 하지만 이는 패배가 아니라 희망이 단단해지는 과정입니다. 희망은 고통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을 렌즈 삼아 타인의 삶을 비춥니다.
마지막 A단조 종지가 체념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타자의 고통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어둠 속의 이들을 위한 '별자리'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는 이 무거운 종지를 통해 속삭입니다. 당신의 흉터는 결코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밤을 밝힐 가장 선명한 별이 될 것이라고.
◆ 상처가 저주가 아닌 이유
어둠이 짙어질 때 비로소 별은 제 빛을 발합니다. 그 별은 길 잃은 이들에게 단순한 빛이 '좌표'가 되어줍니다. 자신의 상처를 안고 궁수자리가 되어 칠흑 같은 밤을 비추는 케이론처럼, 마지막 코다의 묵직한 A단조 종지는 아픈 흉터를 이정표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좌표는 고통을 이겨냈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고통의 질감을 기억하기에 타자의 아픔을 알아본다는 연대의 약속입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누군가의 어두운 밤을 비추는 가장 따뜻한 별이 됩니다. 상처가 더 이상 우리를 구속하는 저주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이재리, 2009년출생, 2025년 쇤펠트 콩쿠르 첼로 부문 1위. 역대 최연소우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