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조건과 환경이 인간의 행위를 완전히 결정할 수 있을까요? 나치 강제수용소의 수감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그 지옥 같은 현실 한가운데서,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잔혹한 약탈자가 되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마지막 빵을 건네며 타인을 위로하는 성자의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의 반응은 정반대로 갈라졌습니다. 어떤 이는 상황에 함몰되지만, 어떤 이는 인간다운 품위를 끝내 지켜낸 것입니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관찰한 내용의 핵심은 ‘내적 자유’의 방향입니다. 태도를 선택하는 능력인 내적 자유가 결핍을 채우려 외부를 공격하거나 내면을 황폐화하는 약탈적 자유로 흐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고통 속에서 궁극적 의미에 응답하며 존엄을 지키는 자유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내적 자유를 궁극적 의미를 향해 행사할 때, 상황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프랭클은 확인한 것입니다.
◆ 프랭클의 '내적 자유' 개념 정리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는 외적 자유와 내적 자유를 구분하며, 진정한 인간다움은 후자에 뿌리를 둔다고 강조합니다.
외적 자유는 상황과 조건을 바꾸거나 통제하는 자유입니다. 이는 수용소, 독재, 질병, 사고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외부 환경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적 자유는 조건을 초월하는 '태도 선택의 자유'를 말합니다. 프랭클은 어떤 상황에서도 박탈되지 않는 '최소한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입니다.
앞선 수용소 사례에서 보이듯이 수용소라는 동일한 극한 조건에서 프랭클은 극명한 차이를 목격합니다. 어떤 사람은 굶주림과 폭력 속에서 잔혹해져 약자를 짓밟고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마지막 빵을 나누고, 동료를 위로하며,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끝까지 지키려 노력합니다.
이 관찰에서 프랭클은 중요한 결론을 도출합니다. 외부 조건이 인간을 자동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지옥 속에서도 한 사람은 ‘상황의 장난감’이 되기를 선택하고, 다른 사람은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 선택의 여지가 바로 내적 자유입니다.
◆ 내적 자유와 결정
① 내적 자유에 대한 프랭클의 설명
프랭클은 <Man's Search For Ultimate Meaning>에서 내적 자유를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로 이해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The last of the human freedoms: to choose one's attitude in any given set of circumstances, to choose one's own way. And there were always choices to make. Every day, every hour, offered the opportunity to make a decision, a decision which determined whether you would or would not submit to those powers which threatened to rob you of your very self, your inner freedom; which determined whether or not you become the plaything to circumstance, renouncing freedom and dignity...”
“인간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마지막 자유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 간에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 그리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입니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는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날마다, 매 시간마다, 하나의 결정을 내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결정이란, 여러분의 ‘자기 자신’, 곧 내적 자유를 빼앗으려 위협하는 힘들에 굴복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정은 또한, 여러분이 상황의 장난감이 되어 자유와 존엄을 포기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② 내적 자유와 결정(결단)
그의 주장은 내적 자유와 결정의 두 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내적 자유
우선 내적 자유(inner freedom)란 어떤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곧 자신의 태도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프랭클이 말한 “인간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라는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자유는 상황에 따라 존엄을 지킬 수도, 반대로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는 자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강제수용소처럼 외적 조건을 전혀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외적 자유는 사실상 박탈되어 있지만, 그 조건에 대해 어떤 태도로 응답할지 여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프랭클의 주장입니다.
이런 점에서 타인을 짓밟는 선택이든, 마지막 빵을 나누는 선택이든 둘 다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할 수 있는 내적 자유”의 행사라는 점에서는 구조가 같습니다. 다만, 한쪽은 그 자유를 자기보존과 굴복을 향해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자기초월과 인간다운 품위를 향해 사용한 결과입니다.
⒝ 결정
이때 결정적인 것은 그 자유를 사용해 내리는 ‘결정(a decision)’입니다.
프랭클은 이 결정을 두 갈래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자신과 내적 자유를 빼앗으려 위협하는 힘들에 굴복할 것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결정이며, 다른 하나는 “환경의 장난감이 되어 자유와 존엄을 포기할 것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결정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내적 자유를 가지고도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이후의 자신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의미를 발견할 것인지, 아니면 상황의 장난감이 될 것인지를 가르는 근원은 내적 자유에 근거한 결단입니다.
같은 막사, 같은 굶주림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어떤 수감자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 선택을 하고, 다른 수감자는 자신의 마지막 빵을 나누며 동료를 위로하는 선택을 하는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랭클은 이 차이를 “외적 조건의 차이”가 아니라, 내적 자유를 어떻게 행사했는가의 문제, 곧 결정의 문제로 이해합니다.
결국 매 순간의 태도 선택이 존엄 유지 여부의 기준이 됩니다. 날마다, 매 시간 주어지는 작은 선택들이 자신의 내적 자유를 지켜내는 결정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상황의 장난감이 되어 스스로 자유와 존엄을 포기하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모욕과 폭력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피해자” 자리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이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답게 행동할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선택할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결단에 달려 있으며, 프랭클은 바로 이 결단들의 연속을 내적 자유의 실질적 내용으로 이해합니다.
② 내적 자유의 함의
정리하면, 프랭클의 내적 자유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닙니다.
⒜ 나는 조건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나는 수용소, 가난, 실패, 모욕 그 자체가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태도를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독립된 주체입니다.
⒝ 매 순간의 태도 선택이 품위를 결정합니다. 날마다, 매 시간 이루어지는 작은 선택들이 쌓여 내가 외적 조건에 완전히 무너진 존재인지, 아니면 여전히 스스로를 인간으로 대우하는 존재인지가 드러납니다.
⒞ 내적 자유는 결단의 자유입니다. 이는 기분을 마음대로 바꾸는 '기분 자유'가 아닙니다. 기분이 최악이어도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어떤 가치와 기준을 따를지를 결정하는 '결단의 자유'입니다.
결국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마지막 인간의 자유──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만큼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프랭클은 이 내적 자유야말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근원이 됩니다.
◆ 의미와 자기초월
내적 자유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타인을 짓밟을 수도 있고, 타인과 마지막 빵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떤 태도로의 선택은 내적 자유에 의한 결단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빵을 나눌 수 있는 인간다운 선택으로 이끄는 힘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요?
프랭클은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의 능력의 축과 의미를 향한 의지(will to meaning)의 축으로 설명합니다.
① 의미를 향한 의지
의미를 향한 의지란 인간은 단순히 쾌락·권력만을 좇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가”를 묻고 그 방향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말합니다.
같은 굶주림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만 남으면 된다”에 머무를 수도 있고, “이 상황 속에서도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를 묻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은 후자를 의미지향적 선택으로 봅니다. ‘악독한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의미가 있다’는 인식은, 때로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인간다운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미지향성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프랭클은 인간 안에 양심(conscience)이 있다고 봅니다.
양심이란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안테나”로서, 단순 도덕 규범이 아니라, “지금 이 구체적 상황에서 내가 책임져야 할 고유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감지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같은 자유를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쪽으로, 어떤 사람은 “이 지옥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겠다”는 쪽으로 양심·의미 감각을 따르는 선택을 합니다.
결국 프랭클은 인간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은 ‘내적 자유 + 양심’에서 나옵니다.
②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의 능력
프랭클은 인간의 핵심 능력을 자기초월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초월이란 자기 자신, 자기 이익, 자기 안전만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차원을 넘어, 가치, 사명, 궁극적 의미 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수용소에서도 어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자기보존에 갇혔고, 어떤 사람은 “이 지옥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증언하겠다”는 쪽으로 자신을 초월했습니다.
프랭클에게서 “마지막 빵을 나누는 선택”은 자기 보호 본능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밖 (궁극적 의미, 사랑, 가치)를 향해 나가는 자기초월의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프랭클에게 “인간다운 선택”은, 자기보존보다 궁극적 의미·가치 쪽으로 자신을 넘어가려는 자기초월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 내적 자유는 무엇을 기준으로 행사되는가? “궁극적 의미”
그렇다면 우리의 내적 자유가 의미를 추구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행사되는 것일까요? 프랭클은 그 최종적 근거를 ‘궁극적 의미(Supra-meaning)’, 즉 하나님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구체적 상황에서는 양심이 포착하는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따라 행동하는데, 그 배후에는 “삶 전체가 무언가 더 큰 질서/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궁극적 의미에 대한 신뢰가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적 자유는 무엇을 기준으로 행사되는가에 대한 답은 “무엇을 향해 자기초월을 하느냐”의 문제이며, 이는 곧 궁극적 의미로 귀결됩니다.
정리하면, 프랭클의 관점에서 말하면, 내적 자유 행사의 기준은 가까운 층위에서는 양심이 가리키는 구체적 의미와 가치이며, 더 깊은 층위에서는 그 모든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 의미, 곧 하나님에 대한 열림입니다.
◆ Yes to Supra-meaning
내적 자유를 지닌 존재인 우리는 수용소와 같은 극한의 결핍 속에서, '상황의 장난감'이 되어 타인을 짓밟을 수도, '자기초월의 주체'가 되어 인간의 품격을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이때 약탈의 본능을 이기고 존엄을 선택하게 하는 원동력은, 양심이 가리키는 시대적 사명과 궁극적 의미(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순종의 태도입니다.
즉 내적 자유가 자아의 폐쇄적 욕구만을 향할 때 그것은 타인을 수단화하는 약탈로 전락하기 쉽지만, 양심을 통해 나를 초월한 ‘궁극적 의미’를 지향할 때 비로소 환경과 본능을 압도하는 실존적 힘을 얻습니다.
수용소의 지옥 속에서도 존엄을 지켜낸 이들은 단순히 의지가 강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궁극적 의미’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 편입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궁극적 의미를 향해 “예”라고 응답(Yes to Supra-meaning)하는 순종이야말로, 인간의 고귀한 자유를 진정한 인간다움으로 완성하는 최후의 원동력이 됩니다.
결국, 자기 이익이나 안전, 보존만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차원을 넘어, 나를 넘어선 가치, 사명, 공동체, 혹은 궁극적 의미를 향해 자기초월의 능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자기보호 본능에 갇히지 않고 더 큰 가치를 위해 '마지막 빵'을 내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한 연대의 공동체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