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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

[ 푸코의 통치성 ] 숙명으로서의 통치: 12.3 비상계엄에 대한 감성적·보복적 해석을 넘어

-'규율된 자유'의 작동
-'행위 가능성의 장'에 내재된 회귀의 시나리오

#1.로마 사회에서 가장인 '파테르 파밀리아스(pater familias)'는 가족 구성원의 생사여탈권을 가질 정도로 절대적 권력으로 집안을 다스렸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인 '키리오스(kyrios)'는 가정, 곧 오이코스 (Oikos)의 지배자였으며, 경제공동체인 가정내 구성원에 대한 통제권은 막강했다. 두 사회 모두에서 가장(가부장)은 강력한 권력으로 가족 구성원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정체성을 통제하였다. 

#2.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긴 프랑스 절대 왕정의 주권자, 루이 14세는  신체적 처벌과 스펙터클(공개 처형)등으로 공격적 주권을 과시하였다. 그는 법을 통해 명령하고, 이를 어길 시 생명과 부를 빼앗는 등 '부정적(negative)'인 방식으로 통치하였다. 

위는 통치 방식에 대한 예시입니다. 통치란 국가·조직의 권력자가 사회 전체나 구성원을 목표에 따라 관리하고 이끄는 행위입니다. 앞의 사례는 권력자가 강력한 권력으로 구성원을 강제·복종시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미셸 푸코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억압이 권력행사의 유일한 형식은 아닙니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주권적 권력 → 규율 권력 → 통치성(Governmentality)'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여기서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은 타인(혹은 자신)의 행동방식을  이끌어내는 '행위의 인도(the conduct of conduct)' 기술을 말합니다. 

이는 권력이 통치를 위해 선택지와 조건, 동기들을 미리 설계하여 '행위 가능성의 장(Field of Possible Action)'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특정 방향을 선택하도록 그들의 '행위(conduct) 자체를 유도하고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권력자의 의사결정의  권력자의 의지의 관점보다 권력자의 행위를 유도하는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권력의 


◆ 권력 진화의 3단계 

권력은 전통적 의미로 통치의 핵심 수단입니다. 

그런데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단순한 도구 그 이상입니다. 이는 통치가 성립하고 작동하는 근본적 원리입니다. 다시 말해 통치성 자체가 곧 권력의 핵심적인 방식이자 본질로 작동하며, 이런 점에서 권력과 통치성은 사실상 분리되지 않습니다.​

통치의 본질인 권력은 '주권적 권력 → 규율 권력 → 통치성'의 3단계로 진화되었습니다.  

주권 권력은 법을 통해 "이것을 하지 마라"(예:형벌)고 말하고, 규율 권력은 규범을 통해 "이 기준에 맞춰라"(예:학교의 규율)고 말합니다. 이 마지막 단계인 통치성은  권력이 설계한 '판(행위 가능성의 장)' 안에서 주체가 '스스로' 그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입니다.
 
현대사회는 이 세 가지 권력이 동시에 층층으로 겹쳐 작동합니다.
 
① 주권 권력 (Sovereign Power): "죽이거나 살려두는 권력“

이는 가장 고전적이고 가시적인 권력 형태입니다. 왕이나 주권자가 법을 세우고, "이 법을 어기면 죽이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작동합니다.

이 권력의 본질은 '빼앗는(subtraction)' 것입니다. 

세금을 징수하고, 법을 어기면 생명을 빼앗습니다. 이 권력은 그들의 생사여탈권(죽일 수도, 살려둘 수도 있는 권한)을 쥐면서 만족합니다.

② 규율 권력 (Disciplinary Power): "훈련시키는 권력“

17~18세기에 들어 권력은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주권 권력'을 넘어, 그들을 '유용한 존재'(효율적인 노동자, 규율 잡힌 군인)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 권력은 더 이상 공개적인 처형과 같은 스펙터클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군대, 병원, 공장, 감옥과 같은 '닫힌 공간(enclosed spaces)' 안으로 스며듭니다. 이 공간에서 권력은 개별 신체를 미시적으로 통제하고 '훈련(training)'시킵니다.

이 훈련의 핵심 기준은 '정상성(Normality)'입니다. 권력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을 설정합니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학생은 정해진 시간표를 따르고, 표준화된 지식을 암기하며, 교사의 권위에 순응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정상적인" 노동자는 정해진 작업 속도와 표준화된 동작을 준수해야 합니다.

•군대에서: "정상적인" 군인은 즉각적인 복종과 통일된 움직임을 체화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정상적인"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순응하며, "비정상"(질병)에서 "정상"(건강)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관리됩니다.

•사회에서: "정상적인" 사람은 일정 수준의 용모와 지적 능력, 혹은 사회적 규범(예: 결혼)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됩니다.

이처럼 '정상성'의 기준이 설정되면, 개인은 외부의 물리적 강제가 없더라도, 스스로 '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비정상'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내면화된 규범'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게 됩니다.

③통치성 (Governmentality): "유도하는 권력“

통치성은 '유도하는 권력'으로, 가장 정교하고 현대적인 권력의 형태입니다.

이 권력은 '규율 권력'처럼 개별 신체를 훈련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인구(Population)' 전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때 작동하는 핵심 논리는 '정상/비정상'의 규범이 아닌,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정치경제학적 효율성'입니다.

권력은 "어떻게 국민 전체의 건강(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할까?" 또는 "어떻게 출산율(인구)을 효과적으로 조절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를 위해 통치성은 "운동해!"라고 명령(주권 권력)하거나 "운동장에서 뛰어!"라고 훈련(규율 권력)시키지 않습니다. 대신 '판', 즉 '환경 전체'를 설계합니다. 

예컨대 담뱃값을 인상하고(경제 정책), "건강은 스스로 챙기는 것"이라는 캠페인(담론)을 벌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강제 없이 '자유롭게' 스스로의 선택으로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판 안에서의 자유', 즉 '규율된 자유(Regulated Freedom)'입니다.

결론적으로 통치성이란, '하지 마라'는 명령이나 폭력적 강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바로 그 '자유'를 통치의 조건이자 핵심 도구로 활용하는 기술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 '자유'는 이미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규칙으로 설계된 '판(행위 가능성의 장)' 안에서만 존재하고 작동하도록 유도된 것입니다.


◆ 통치성 : 행위 가능성의 장과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

현대 권력의 본질이 통치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은 '행위 가능성의 장'이라는 구조적 환경과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이라는 작동 메커니즘을 통해 완성됩니다.

① ‘행위 가능성의 장’: 설계된 선택의 프레임

푸코가 말하는 ‘행위 가능성의 장(Field of Possible Action)’이란 주체(개인, 집단)가 실제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공간, 즉 권력과 제도, 규범, 담론 등이 미리 구성해 놓은 “선택과 행동의 프레임·경계·조건”을 의미합니다.

이 '행위 가능성의 장'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가집니다. 

겉으로는 행위 주체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듯 보일지라도, 그 모든 자유와 선택은 이미 권력·제도·담론이 구성한 경계 내에서 구조적으로 배치되고 관리됩니다. 법, 제도, 행정, 정책 등이 이 ‘장’을 설정하며, 개인은 그 구조 내에서만 행동하거나 저항할 수 있습니다.

쉬운 비유로, 축구선수는 경기장 안에서 마음껏 뛸 수 있지만, 그 '경기장'과 '규칙'(오프사이드, 파울 등)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선수는 이 '경기장+규칙'이라는 '행위 가능성의 장' 안에서만 전략을 세우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② ‘규율된 자유’: 판 안에서의 조건부 자유

'행위 가능성의 장'에서 주체가 누리는 자유는 '규율된 자유(regulated freedom)'입니다. 즉, 이 자유는 이미 권력(법, 규범)이 설계한 공간 안에서만 허용되고 가능한 조건부 자유를 의미합니다.

'규율된 자유'는 '일반적인 자유'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분명히 구분됩니다.

•권력과의 관계:
규율된 자유는 '권력 안에서의 자율성'입니다. 권력이 설계한 판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작동합니다. 일반적 자유는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이 자기계발을 한다고 할 때, 규율된 자유 속에서의 자기 계발은 성과관리의 압박 속에서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즉, 시스템에 순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면 일반적 자유에서의 자기계발은 경쟁의 압박 없이 즐거움과 자기 성찰을 위한 자기계발입니다.

•선택의 범위:
규율된 자유는 겉으로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지만,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인지 사실상 정해져 있거나 선택이 강력하게 유도됩니다. 이에 반해 일반적 자유는 권력이 규정한 특정 '판'이 없기에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저항의 위치:
규율된 자유는 저항이 어렵습니다. 판을 벗어나는 행위는 '실패' 또는 '비정상'으로 낙인찍힙니다. 그러나 일반적 자유는 저항이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③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The Conduct of Conduct)’의 이중 구조

푸코의 통치성의 핵심은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the conduct of conduct)”입니다.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즉 권력이 이 행위가능성의 장 안에서 주체가 스스로 효율적이고 정상적인  경로를 선택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⑴ 타인을 이끄는 행위(The Conduct of Others): 제도적 유도

타인을 인도한다라는 말은 제도가 주체의 행위를  유도한다는 뜻입니다.  

제도는 타인을 직접 명령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를 규율하도록 환경과 규범을 설계합니다. 이는 권력이 환경과 규범을 설계하여 타인의 행동 경로를 유도하는 기술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도적 유도(institutional guidance)입니다.

⑵ 스스로를 이끄는 행위(Self-conduct): 법에 의한 자기 규율, 내면화된 자기 규율

이는 개인이 외부의 규범(법, 규칙)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규율하는 행위, 즉 '자기 통제'입니다. 

예컨대 운전자가 신호등과 차선을 '스스로' 지키며 운전하는 것은 억압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끄는 '자기 통제'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자기 통제'의 메커니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3단계로 작동합니다.

•1단계: 권력이 판(트랙)을 깐다 
국가, 기업, 미디어등이 "이것이 정상이고 성공이다"라는 정상성, 곧 사회적 규범을 미리 설계합니다.

2단계: 네가 선택할 수 있다.
권력은 개인에게 "너는 자유로운 주체이니 네가 선택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상 '바람직한' 선택지는 이미 트랙 안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트랙 밖의 선택은 '비정상'으로 간주됩니다.

3단계: 자발적 통치 (자기 통제) 
개인은 "내가 원해서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권력이 설계한 판에 스스로를 맞춥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표준이 되는 지위에 오르기 위해 스펙을 쌓고 자기계발을 합니다.  사회적 표준의 몸에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합니다. 이는 개인이 저항 없이, 오히려 열정적으로 권력이 원하는 '나'를 스스로 재생산하는 '자기 통제'의 완성입니다.


◆ 행위가능성과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 12.3 비상계엄에 적용

① 행위 가능성의 장(Field of Possible Actions)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에서 ‘행위 가능성의 장’이란 권력이 직접 명령하지 않고,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과 방향을 미리 설계해 두는 구조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비상계엄에서 이 ‘행위 가능성의 장’은 헌법 제77조로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제1항은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하여,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제6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로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즉시 해제해야 한다”고 하여, 그 행위의 귀결을 규정하는 경로를 미리 설계합니다.

따라서 헌법 제77조는 대통령의 행위를 억압하는 규정이 아니라,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행동의 방향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자유로운 결단처럼 보이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이미 헌법이 구성한 행위의 궤도(trajectory)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② 규율된 자유(Regulated Freedom)

이렇게 헌법이 설정한 ‘행위 가능성의 장’ 안에서 대통령의 자유는 ‘규율된 자유’로 작동합니다.

푸코의 관점에서 규율된 자유란, 자유가 권력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기능하도록 조직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헌법은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할 자유”를 부여하면서도, 동시에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즉시 해제해야 한다”는 ‘내재된 규율’을 심어둡니다.

그 결과 대통령은 행위의 자유를 행사하는 동시에, 그 자유의 한계 속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때 대통령의 자유는 외부 강제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헌법이 설계한 합리성의 궤도 안에서 움직이는 자기 규율적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는 자유롭게 결단하지만, 그 결단의 가능성과 귀결은 이미 헌법 구조에 의해 규율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자율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헌법의 통치 합리성이 예정한 구조적 결과를 수행하는 규율된 자유입니다.


③‘행위를 인도하는 기술’: 비상계엄의 이중 구조

푸코가 말한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the conduct of conduct)’은 권력이 타인의 행동을 강제하지 않고, 행동의 가능성의 장(field of possible actions) 자체를 설계해 그 안에서 주체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비상계엄 하의 '행위를 인도하는 기술(The Conduct of Conduct)'은 권력이 '행위 가능성의 장'(헌법 제77조) 안에서 대통령의 행동을 '이끌어주는(conduct)'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의미합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⑴ 타인을 이끄는 행위 (The Conduct of Others): 제도적 유도

우선 권력은 경로를 설계합니다. 

헌법(권력)은 대통령의 행위를 물리적으로 억압하지 않습니다. 대신 ‘계엄 선포–국회의 해제 요구-대통령의 해제선언’이라는 일련의 행위 가능성들을 미리 법적 장(field) 안에 배열해 둡니다. 즉, 권력은 “하지 마라”는 명령이 아니라,“이 안에서만 하라”는 가능성의 구도를 설계해 둡니다.
 
그 결과 대통령의 행위는 제도적 ‘경로’ 위에서만 합리성을 가집니다. “계엄 선포”라는 행위의 장 안에는 이미 “국회 해제 요구”라는 내재된 저항의 경로가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도적 유도(institutional guidance)입니다. 즉, 권력은 선택을 강제하지 않고, 선택의 합리성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행위를 유도합니다. 

⑵스스로를 이끄는 행위 (Self-conduct): 구조화된 자기 통제

이제 대통령은 외부의 강제 없이, 제도가 설계한 ‘유일하게 합리적인 경로’를 스스로 따르게 됩니다. 그의 결단은 자율적 결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도가 내장한 구조적 합리성의 귀결입니다.

비상계엄의 구조는 처음부터 “선포 → 시행 → 해제”라는 자기완결적 순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해제 선언은 개인의 효율적 판단이라기보다, 제도적 구조가 예정한 ‘숙명적 결과’입니다.

이때 대통령은 외압에 의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제공한 통치 합리성의 궤도를 스스로 내면화하여 따르는 주체로 기능합니다.

그의 ‘해제’ 행위는 ‘규율된 자유’ 속의 자기 통제(self-conduct), 즉 “자유 속에서 권력의 구조를 수행하는 행위”로 이해됩니다.


◆12.3 비상계엄의 푸코적 이해 : 12.3 비상계엄에 대한 감성적 보복적 해석을 넘어

비상계엄의 핵심 역설은, '비상'이라는 예외상태가 법의 '외부'가 아니라 법의 '내부'에 이미 정상적 절차의 일부로 내장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푸코가 말한 “권력이 예외를 창출하는 동시에, 그 예외를 스스로 흡수하는 통치의 합리성”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즉, 비상계엄이 법치를 파괴하는 탈법이 아니라, 법이 스스로 비상상황을 승인하고 동시에 통제하는 '자기합리화의 기술'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권력(법)은 계엄 해제의 조건까지 처음부터 제도 안에 포함함으로써, ‘비상’이라는 예외 상황조차 통치 가능한 질서의 내부로 완벽히 봉합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2.3 비상계엄은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시작(선포)부터 끝(해제)까지 모두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관리되는 정교한 통치 메커니즘입니다.

따라서 계엄의 해제는 일부 수동적인 군인, 해제표결에 참석한 의원등 이들의 의지에 기대어 확보된 민주주의의 승리로 단순히 평가될 수 없습니다. 이미 법에 내재된 ‘복귀 시나리오’의 메커니즘이 예정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계엄 해제는, 통치성의 관점에서는 예외적인 통치적 개입이 끝나고, 다시 일상적 규범이 작동하게 하는 내재적 메커니즘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엄해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미리 계획된 질서로 사회를 되돌린 숙명적 결과물입니다. 즉 예외상태와 이어진 일상으로의 복귀는 별개의 ‘이분법’이 아니라, 통치 기술의 일부로 이미 구조화 된 자동작동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비상계엄은 內亂과 근본적으로 구분됩니다. 

내란은 헌법 질서 '밖에서' 헌정 자체를 '파괴'하려는 불법적 폭력입니다. 이에 반해 12.3 비상계엄은 헌법 '안에서' 예외상태 및 회복시나리오를 통치기술의 일부로 동시에 내장하고 있습니다. 

이 메커니즘 안에서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이 구성한 '행위 가능성의 장'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대통령은 자유롭게 비상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자유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처음부터 '해제'라는 귀결(숙명)을 포함하도록 제도적으로 설계된 '규율된 자유(regulated freedom)'일 뿐입니다.

이처럼 12.3 비상계엄은 헌정 파괴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헌정 수호로 되돌아오도록 설계된 구조적 destiny를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력자의 의사결정은, 한 개인의 주관적인 '의지(will)'의 관점이 아니라 그의 행위를 유도하는 객관적인 '메커니즘(mechanism)'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러한 푸코적 통치성의 시각은 비상계엄을 단순히 ‘한 권력자의 탈법(illegality)’으로 환원하지 않고, 헌법이 설계한 행위 가능성의 장 안에서 작동한 구조적 통치 합리성으로 조명하게 합니다.

결국 12·3 비상계엄을 ‘한 권력자의 탈법적 의도’라는 단선적·도식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헌법적 메커니즘의 작동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에 대한 근대적 시각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관점은 '선포–수행–해제'로 이어진 12.3 비상계엄의 전 과정이, 헌법이라는 '행위 가능성의 장'에 의해 처음부터 '헌정 수호'라는 구조적 숙명으로 귀결되도록 설계된 '합헌적 위기관리 메커니즘'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푸코적 관점은 12.3 비상계엄에 대한 감성적 보복적 해석을 넘어 이로 인한 공동체의 갈등과 반목을 해결 수 있는 강력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법과 권력의 관계를 더욱 깊이 성찰하고, 우리 헌정 질서가 가진 내재적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공동체적 이해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12.3 비상계엄은 푸코의 ‘자유 속의 통치’가 현실 정치에서 정교하게 구현된 현실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