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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슘페터의 혁신] 불황과 절망은 그저 찌는 더위를 시원하게 축여주는 단비

역마차를 연결해 둔다고 기차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나의 우주 안, 나아가야 할 미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이라는 암연에 늪. 나는 잠시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여 그 늪에 편안히 몸을 뉘어본다. 비로소 나의 몸과 마음에 찾아든 자유. 나는 그 늪 속에서 용기와 희망 그리고 사랑의 꽃 봉오리에 따스한 청춘을 불어 넣는다.” (Rosa, 전주 자만 벽화마을에서)

머리카락이 묶음으로 갈라져 흩날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살포시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숙인 채  평온과 고요함에 젖어 있습니다.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도, 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을 마음 판에 새기며  머리카락에 핀 꽃 봉오리를 꿈꾸고 있나 봅니다.   

미국이 불황의 늪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1930년대,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조지프 슘페터는 수강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들은 불황에 시달리고 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네. 자본주의에 불황은 적당한 단비인 법이지.” (이토 미쓰하루)

슘페터는 불황을 경제 체계의 정상적인 적응과정으로 본 것입니다. 이는 유효수요 부족으로 장기에 모두 죽을 것이라는 케인즈의 암울한 예언과는 사뭇 다른 인식입니다. 

위의 벽화를 그린 청년 화가 Rosa 또래의 청년들도 지금은 비록 절망의 늪과 마주하고 있지만 따스한 꽃피는 내일을 그리고 있을 겁니다. 

   
◆ 순환과 발전 

세상의 에너지의 흐름은 에너지의 궤도 이탈 여부에 따라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循環이며 또 하나는 發展입니다. (이상구)

순환은 혈액이 몸을 도는 것처럼, 같은 궤도를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움직입니다. 이는 연속적인 성장은 가능하지만, 기존의 궤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순환은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소비되는 단순재생산의 구조입니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기회비용만 회수하게 되어 초과 이윤은 0이 됩니다.  독점으로 발생한 초과이윤이 경쟁자들의 진입으로 인해 상실되어,  생산이 새로운 균형점에서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반면 발전은 궤도의 변경입니다. 이는 순환과 달리 단속(斷續)적이며 비약적인 변화로 질을 변경시킵니다. 즉 이는 과거의 균형 생산점에서 불균형을 거쳐 새로운 균형점으로의 이동을 말합니다. 

이렇게 기업은 발전을 통해 초과이윤을 획득하게 됩니다. 

 
◆발전은 신 결합의 결과물

그렇다면 발전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슘페터는 발전은  신 결합, 혹은 혁신에 의해 달성된다고 말합니다. 신 결합의 수행이 발전을 추동시키는 동인이 된다는 겁니다. 

신 결합이란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드는 활동입니다. 생산은 노동력 및 기계의 투입과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혁신적인 기술로 인해  새로운 생산관계(혹은 생산함수)가 형성됩니다.  널리 알려진 기술은 혁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새로운 균형 생산점으로의 이동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는 혁신의 수행으로 △새로운 재화 △새로운 생산방식 △새로운 판로의 개척 △원료의 새로운 공급원의 획득 △ 새로운 조직의 실현등을 열거합니다. 


◆‘역마차를 연결해 둔다고 기차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궁금한 점은  혁신의 수행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입니다. 

슘페터는 신 결합은 구 결합이 도태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역마차를 연결해 둔다고 기차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철도와 기차를 만든 이는 역마차의 주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의존하였던 것들이 이제는 장애가 되므로, 발전의 핵심인 궤도와 관행으로부터의 이탈을 위해선 흐름에 역행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관행의 영역밖에 나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먼저 과거의 지출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매몰원가를 의사결정에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무시하고,  미래 의사 결정의 변수로 고려합니다. 미련이 새로운 방향을 향한 발목을 잡습니다. 

또한 미래 위험에 대한 선호입니다. 미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조류에 역행하지 못하고 익숙한 궤도에 연연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위험선호보다 위험회피를 택하는 거지요. 

이로 인해 first mover보다 fast follower 정책을 택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신약을 만들기보다, 남이 만들어 놓은 약의 특허가 만료가 된 후 카피 약을 만들고자 합니다.  쌓아 둔 돈은 많으니 단순히 자본의 투입으로 땅 짚고 헤엄치자는 거지요. 이를 기업의 주력 新樹種사업이며 바이오 사업이라 선전합니다. 


◆창조적 파괴와 앙트퍼누어(entrepreneur)

이제 낡은 것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부단히 창조해가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창조적 파괴를 수행하는 자를 기업가 즉 앙트퍼누어(entrepreneur)라고 슘페터는 말합니다. 그는 만약 기업가의 혁신정신이 퇴보 할 수록 경제는 하락과 불황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앙트퍼누어가 없다면, 우편마차를 제아무리 연속적으로 늘린다 한들 결코 철도를 얻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단지 순환을 재생산 할 뿐입니다. 


◆자본주의의 불황은 再전개를 위한 강장제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면,  마르크스도 그리고 케인즈도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망하거나 장기에는 모두 죽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저하와 특별잉여가 창출되지 않게 되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서 특별잉여는 슘페터의 언어로는 혁신의 결과물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도태가 이루어지기 전에 새로운 혁신가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가는  사회관계로부터의 압력과 심리적 동기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김수행)

먼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동태적인 측면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개별 자본가의 경쟁이 혁신을 강요하고, 이러한 압력이 앙트퍼누어를 배출한다고 보았습니다.  

사회관계로부터 혁신에 대한 압력과 달리, 영웅의 등장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떠올릴 수 있겠죠. 

영웅은 심리적 동기로 인해 나타난다고 슘페터는 말합니다. 영웅은 ‘자기왕조를 건설하려는 꿈과 의지, 승리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 자기실현을 이루고자하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창조의 기쁨’등, 이러한 혁신의 동기를 품을 것이라는 겁니다.  

어떠한 경로이든 간에, 혁신은 수요의 포화상태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혁신만이 장기에 모두 죽는다는 케인즈의 절망적 예언을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슘페터는 <경제발전의 이론> 끝부분에 “정상적인 불황기가 꽤 오래 지속되더라도 경제는 견디기 힘들 만큼 어둡지만은 않다.”라고 말합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기업가가 등장하여, 지칠 줄 모르는 진취적 모험에 대한 욕망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불황은 자본가 계급의 활동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 전개시키는 강장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수행)


◆ 미래 꽃봉오리가  필 수 있다는 스피리트

앙트퍼누어 정신도 우리의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강장제입니다. 관행으로부터의 이탈에 대한 욕망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부단한 도전 스피리트는 기존의 정체된 관행과 궤도를 탈피하게 하여 발전의 꽃봉오리를 피게 할 수 있습니다.  녹색의  마음 판에 ‘머리카락에 핀 꽃봉오리’처럼 말입니다. 

결국 불황과 절망은 그저 찌는 더위를 시원하게 축여주는 단비에 불과하다는 슘페터의 언급은 과장의 말은 아니게 됩니다. 


<참고문헌> 
김수행(1984), 「슘페터의 자본주의 멸망론」 
이상구(1982), 「슘페터: 자본주의론 연구」 
탁충습(2005), “혁신, 기업가 정신과 경제성장”, 전문경영인연구 제8집 제2호 
이토 미쓰하루외, 민선원옮김 (2004), 「슘페터; 고고한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