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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국은행 독립성 ] 중앙은행의 수단의 독립성, 장기시계로 일관성 있게 고유 업무를 추진할 수 있어

정부가 실업률을 줄이고 물가를 낮추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선 물가상승을 용인해야 하는데, 정부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기자주:아래의 예는 과거 인플레이션 상황을 전제로 한 설명)

방법은 ‘뒤통수 치기’이다. 일단 민간에게 정부정책의 신뢰를 갖도록 한다. 이후 민간이 정부정책을 믿고 의사결정을 할 경우, 정부는 민간의 예상과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민간의 예상을 뒤엎는 ‘뒤통수 치기’를 할 경우, 단기적으로 정부 정책은 멋지게 성공한다. 하지만 문제는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동태적 비일관성’으로 알려져 있다. 

정책당국은 물가를 낮추기 위해 통화량을 줄인다고 공표 한 후, 근로자들은 이를 믿고 임금계약에서 임금동결에 동의한다. 이렇게 당국의 의도대로 물가가 안정화되자, 당국은 민간에 대한 약속과 달리 통화량을 몰래 늘린다. 

이를 테면 정부가 집집마다 돈다발을 놓고 가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대문 앞에 돈다발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이 돈으로 시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사들였다. 물건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자기 물건이 이렇게 잘 팔리는 것은 자신의 제품 질이 더 좋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매출이 늘자 회사는 일할 사람을 더 뽑고 생산을 늘렸다. 

그러자 국가 전체적으로 실업자가 줄고 국민의 소득이 늘었다. 그리고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들은 자기 집에만 돈다발이 놓여 진 것이 아니라 모든 집에 돈이 뿌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너도 나도 물건을 사들이는 광경에, 사람들이 그 원인을 간파한 것이다. 

국민들의 뒤늦은 깨달음이 있은 후, 정부의 단기적인 정책효과는 사라지고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가 몰래 돈을 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물가가 치솟고  국민들의 구매력은 쪼그라들었다.

정부는 물가가 치솟자, 물가를 낮추기 위해 돈줄을 조인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부의 통화긴축 약속을 더 이상 믿지 않고 거꾸로 물가상승을 기대하였다. 물가는 지속적으로 치솟게 되고 사람들은 거리에 나앉기 시작하였다.  

정부 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은 정책당국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정책수행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예로 언급되어진다. 민간의 당국에 대한 신뢰가 사라질 경우, 정책 당국은 바라는 정책을 수립할 수도 없고, 비록 정책을 내세워도 그 효과는 사실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도가 심할 경우, 정책당국은 식물당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의 상실 – 단기 시계에 기댄 중앙은행의 수단의 독립성의 훼손  

정책당국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위의 예처럼 당국이 편의적으로 단기 시계(視界)에 의존하는 정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단기엔 정책의 효과는 나타날지라도, 장기엔 이 정책의 효과는 사라지고 오히려 국민의 부담은 가중된다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고 단기시계에 기대는 실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목표의 독립성과 수단의 독립성으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수단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목표의 독립성은 중앙은행이 자신의 정책목표를 직접 결정하는 것이다. 수단의 독립성은 중앙은행이 통화금융정책의 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이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중앙은행의 발권력등 수단에 대한 통제권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손상된다면, 이는 독립성이 약화되었다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독립적 위치에서 고유 정책을 결정할 수 없고 단기시계에서 편의적으로 정책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단기적인 이익이 장기적인 손실을 상쇄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민간은 정책방향을 예측할 수 없게 되어 당국의 정책을 불신하게 된다.  


◆일본의 장기 침체와 중앙은행의 독립성 손상

중앙은행의 독립성의 손상이 경제에 미친 폐해의 실례가 일본의 장기침체이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개입하게 되면, 단기시계에 집착하여 장기시계를 무시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의 발단은 1986~1990년의 버블경제이다. 버블의 형성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부터 비롯되었다. 일본의 대미무역흑자로 미일간 무역마찰이 심해지자,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G5의 합의로 엔화가치가 절상되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3년 동안 환율 하락으로 엔화가치가 46.3%나 절상 되었다. 엔고에 따른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일본정부는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한다. 엔고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저금리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까지 공정보합(정책금리)을 2.5%로 동결하여 과잉유동성을 낳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초금융 완화정책의 장기화는 과잉유동성을 야기하여 자산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켰다. 토지와 주식투기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경제의 평균 주가는 1985년 12월 12,977엔에서 1989년 12월에 3배 오른 38,915엔에 이르렀다. 6대 도시 지가수준은 상업지가 4년간 3.2배, 택지는 2.2배 뛰었다. 

하지만 1991년 경 버블이 터지면서 경제가 급속히 위축되었다. 1989년 12월 38,915엔의 주가는 1990년 가을에는 전년도 12월에 비해 48% 하락하여 20,221엔으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버블경제에 의해 수요를 앞당겨 쓴 반동이 버블 붕괴와 함께 수요 감소를 가속화시켰다. 

수요감소는 기업의 재고조정으로 이어졌고, 매출감소 →생산 감소→ 설비투자감소로 연결되었다. 결국 1992년 2/4분기에는 GNP실질 성장률은 마이너스에 진입하게 되었다. 일본 디플레이션의 장기화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이처럼 일본 장기 경기침체의 주범인 일본버블경제 형성의 주요 원인의 하나로  금융완화정책이 꼽히고 있다.  (오모미치 히데타카)

그런데 일본은행의 금융완화는 일본은행의 자체적인 통화의사결정이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 말의 자산버블은 재무성 장관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로 인해 긴축 정책 실시 적기를 놓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일본 중앙은행의 수단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누시 고베 대학교 교수는 중앙은행 내부의 이코노미스트들에게 해당 금융 정책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부여할 것을 강조하였다. (Japan Inside)  디플레이션 극복은 통화당국의 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앙은행과 정부 간의 균형과 견제

이번 조선 해운 업계의 구조조정과정에서,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 방안을 둘러싼 행정부와 한국은행의 견해 대립도 동태적 비일관성을 떠올리게 한다. 

행정부가 중앙은행에 발권력을 동원해서 돈을 찍어달라는 요구는 어찌 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훼손일 수 있다. 행정부가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식에 투자하거나 담보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 대출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면, 이는 행정부가 중앙은행의 수단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재정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공적 기관 전체의 부담이 된다. 중앙은행의 수단의 독립성에 대한 훼손으로 인한 이득인 정책의 편의성은 궁극적으로 일관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반면 중앙은행의 정책 의사결정이 행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질 경우,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행되게 되고, 이는 국민들이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된다. 

즉 통화당국은 장기시계로 원칙과 준칙에 기초하여 고유의 업무를 추진한다는 믿음과, 행정부는 통화당국 고유의 영역에 압력을 가하는 대신 재정의 투명성을 추구한다는 확신을 국민이 가질 때, 민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어 양 기관의 정책 효율성과 목표달성은 높아지게 된다. 

중앙은행은 행정부의 대리인이 아니라, 정책 당국 범위 내의 독립적인 주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수단의 독립은 중앙은행과 정부 간의 협의가 균형과 견제의 원칙에 의거하여 이루어지게 되어, 이를 통해 효율적인 정책수단이 결정되게 된다. (정운찬)


<참고문헌> 
오오미치 히데타카(2013), 「일본버블경제붕괴와 부실채권 해결을 위한 법정책적 대응방안」, 동아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정운찬 (1991), 「금융개혁론」
Japan Inside (2013),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관련되 일본 내부의 견해”, 한국금융연구원 주간 금융 브리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