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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니체, 낙타 사자 아이로의 변신] 전운 감도는 여의도 - 새로운 시작은 ‘순진무구’와 ‘망각’으로부터

낙타가 사람을 잡고 있다.  

어릴 적 상상한 낙타의 이미지는 이게 아니었다. 

낙타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어슬렁어슬렁 사막을 건너는 모습은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동화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내곤 하였다. 

그런데 이 낙타가 상상을 배반하고 사람 잡는 바이러스의 주범이 되어 일을 저지른 것이다. 


◆ 니체도 낙타가 싫어....

철학자 니체도 낙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정신에 있어 가장 낮은 단계를 낙타로 비유하면서, 낙타를  복종의 화신으로 설명하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3단계 변신을 이야기 한다. 즉 ‘낙타 → 사자 → 어린이’로 변화해 가면서, 정신의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낙타는 권위와 의무에 대한 복종을, 사자는 권위에 도전하는 억센 의지를, 그리고 어린이는 순진무구하고 망각이 능한 창조적인 정신을 일컫는다. 이 과정에서 니체는 절대 善인 초인에 이른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마침내 사자가 어린이가 되는 것일까?  


◆ 낙타: You should

낙타의 정신은 온순한 복종이다. 낙타는 등위에 실린 무거운 짐을 싣기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 

낙타는 노예 도덕의 전향이다. ‘너는 해야 한다.’(You should)는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주인의 지시에 순종한다. 오만 대신 굴종을, 자유 대신에 구속을, 지혜대신 어리석음을, 승리대신 패배를 선택한다.(정낙림 2012)


◆사자 : I will

무거운 짐을 싣고 사막을 지나가는 낙타는 이제 사자로 변신해야 한다. 낙타의 정신은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주인에게 대항하여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인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용에, 사자는 이에 맞서 ‘나는 하고자 한다.’(I will)라고 외친다. 용은 “모든 사물의 가치는 내게서 찬란하게 빛난다”라고 모든 가치는 자신이 창조하였다고 거들먹거린다. 

이처럼 용은 자신이 지켜온 사상과 가치를 여전히 유지하려 하지만, 사자는 전통적 관습이나 규범도 바뀌어야 한다고 용에 대적한다. 

하지만 사자는 여전히 창조보다 비판과 부정이 압도적이다. 즉 니체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사자는 낙타의 정신인 명령에서 해방되었으나, 비판과 부정으로 새로운 가치도 창조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 어린이 : I am

사자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비판과 혁명, 부정만 있는 사자는 저항할 대상이 사라지면 허무주의에 이른다. 하지만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어린아이는 해낼 수 있다고 니체는 강조한다. 

니체는 “어린아이는 순진 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아이의 단계는 ‘새로운 시작’이며,  유용한 가치나 규칙을 창조한다. 

그렇다면 사자도 못하는 창조를 아이가 어떻게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니체는 새로운 시작의 동인은 ‘순진무구’와 ‘망각’이라는 어린이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순진무구란 물의 성질로 비유된다.(이현주 2010)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서 모양이 변화하는데, 이 변화는 물의 수동성이나 무능력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액체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의 정신은 새로운 그릇에 담기는 물과 같이 매우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변화한다. 

이는 고정화된 관념과 형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한 사고와 전략을 구사하여, 궁극적으로  실질과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또한 니체에게 있어, 창조의 전제조건은 ‘망각’이다. 아이처럼 망각하기를 잘해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그는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각하란 말인가? 니체는 과거로부터의 망각, 특히 과거의 실패의 기억으로부터의 망각을 강조한다. 창조는 새로운 여백위에 그려지는 것으로, 과거의 짙은 흔적 위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가 미래를 향한 길목에 버티어 서서, 진군을 저지하고 있다. 


◆ 상호 협조를 위한 노력, 다시 가동할 필요성 대두

정국의 기상이 폭풍전야를 연상하게 한다. 국회법 개정안이 청와대로 송부된 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방아쇠가 되어 청와대 여야가 일전을 벌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약하다고 판단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인데다, 비록 구속력을 인정한다 하여도 야당이 자력으로 시행령을 수정할 의석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여야가 불필요한 소모전만 지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안개 자욱한 여의도에,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길목을 막고 있는 적은 무엇인가? 니체의 지적대로, 새로운 시작을 방해하는 ‘기억’은 무엇인가?   

용과 사자의 전투처럼, 현재 정치권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용에 사자가 ‘나는 하고자 한다.’며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의 기억인 서로를 향한 타도와 혁명만이 양측의 전략과 목표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과거의 부정과 저항의 기억은 망각되지 않아, 아무런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결국 허무주의에 빠질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의 상호 협조를 위한 노력을 다시 가동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비록 이긴 쪽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여, 서로의 협조와 타협만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거부하기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