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상식적으로 정치는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를 운용하여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학자 머레이 에델만(Murray Edelman)은 정치를 ‘불안의 상징적 관리(Symbolic Management of Anxiety)’로 정의합니다. 그에게 정치는 정책의 실효성뿐 아니라, 상징(언어, 이미지, 행위)을 통해 국민의 집단적 불안, 희망, 두려움을 형성하고 다루는 과정입니다. 2025년 10월 현재, 대한민국 정국의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부 개혁은 에델만의 이론으로 분석할 때, 단순한 제도 개혁을 넘어 대중의 감정을 동원하는 상징 조작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머레이 에델만의 이론 - 불안의 조직화와 상징 조작 에델만의 이론은 정치가 대중의 감정을 활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분석합니다. 그의 이론에서 ‘불안 관리’는 반드시 긍정적인 ‘치유’로 귀결되지 않으며, 때로는 의도적인 조작과 동원의 수단이 됩니다. ① 정치의 본질: 상징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 에델만에게 정치는 객관적인 현실을 다루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는 상징을 통해 대중의 현실 인식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Homo sympathicus).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제시한 인간상은, 이익을 계산하는 합리적 존재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와 달리,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정을 동일시하며,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통합적 주체였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층위의 공감—머리의 이해(인지), 가슴의 연민(정서), 양심의 성찰(도덕)—이 조화롭게 작동하는 리더십이 구현될 때, 우리 공동체는 ‘공정한 관찰자의 침묵’을 깨고, 머리로는 합리성을, 가슴으로는 연민을, 양심으로는 공정을 구현하는 ‘호모 심파티쿠스’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스미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 인지적 공감과 공감 결여 ① 인지적 공감 (Cognitive Empathy)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머리로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인지적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황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정서적으로 동화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상사가 직원의 과로 상태를 파악하고 그
◆ ‘국민주권주의’는 정치적 프레임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국민주권주의’는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 원칙을 근거로, ‘국민의 뜻’을 정치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언뜻 참여 민주주의 원리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수파가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다는 민주주의의 착각을 강화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했고, 자당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정부·여당의 주장을 ‘국민의 뜻’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국민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국민주권주의’는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를 ‘국민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만들며, 민주주의를 특정 진영의 이익을 위한 배타적 독점 구조로 끌고 갑니다. 이것이 국민주권주의가 정치적 프레임으로 기능하는 이유입니다. ◆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앞선다?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 될 수 있어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선출 권력이 사법부·헌법재판소·감사원 등 임명권력보다 앞선다’는 주장 속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결국 여당을 지지하는 다수 세력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 때문에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에 의존합니다. 즉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꺼내어 사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판단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인지 오류를 낳기도 합니다. 특히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frame)이 먼저 형성되면, 가용성 휴리스틱은 그 집단의 정체성에 ‘낙인’을 찍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낙인이 찍힌 집단에게 최우선 과제는 ‘어떻게 이 부정적 낙인을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머릿속에 가장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기반으로 결론을 내리는 ‘인지적 지름길’을 의미합니다. 이는 종종 심리적 오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①가용(可用) 가용(可用)'의 사전적 의미는 ‘쓸 수 있음 ’또는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자원이나 능력을 필요할 때 가져다 쓸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가용 자금’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을, ‘가용 인력’은 ‘지금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사람
2025년 상법 개정안은 소수주주의 권리 강화를 명분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프록시 파이트 격화, 단기 이익 추구, 기업 기밀 유출,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등으로 이어져 저성장 국면의 한국 경제 회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주요 선진국조차 채택을 꺼리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 경쟁력과 경제 안정성을 해칠 뿐 아니라, 한국의 시장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① 집중투표제 집중투표제 (Cumulative Voting)는 이사 선출 시, 주주들은 '1주당 1표'가 아닌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는다면 1주를 가진 주주는 총 3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 3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을 이사로 선임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즉, 대주주의 의사와 다른,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집중투표제는 대주주의 독점적 이사회 구성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2025년 상법개정안은 자산 2
한나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은 단순한 사회적 집단을 넘어,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을 기반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공동세계를 유지하고 형성하는 역동적이고 정치적인 실체를 의미합니다.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을 핵심 요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복수성 (Plurality/Distinction) ①복수성이란? 공동체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각 복수성(고유성)을 존중하여 소통하면서 형성됩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복수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소통하며 형성됩니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하는 "복수성(Plurality)에서 '복수'(複數)는 단순히 '인간들'(human beings)의 의미를 넘어 인간조건의 복수성을 가리킵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들은 다름과 동등성이라는 두가지 인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복수’의 인간들은 대체 불가능한 개별적 존재라는 점에서 다름을 드러냅니다. 즉 인간들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고유하고 독특한 존재(unique individuals)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복수'의 인간들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동등(equal)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함께 행위할
◆ 공동체의 대척점, 전체주의 아렌트에게 공동체란, 인간의 다름(고유성)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으로 개인들이 상호작용하여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관계망입니다. 그런데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의 핵심요소인 복수성과 상호작용이 박탈된 체제 또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신념으로 인간의 고유성을 억압하고 허구적 단일성을 강요하여 공동세계를 왜곡하는 체제가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체제가 바로 전체주의 체제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을 이용하여 피상적인 소속감을 제공하지만, 복수성(plurality)과 상호작용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허구적입니다. 다시 말해 전체주의는 외로운 자들에게 공동체라는 거짓을 주입하여 이들을 허구의 공동체로 묶은 다음, 이들을 다름(고유성)이 박탈된 단일의 이데올로기에 복속시키는 체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렌트는 「전체주의 기원」에서 전체주의 선전(totalitarian propaganda)은 고립된 개인들에게 ‘상상력을 통해 뿌리 뽑힌 대중이 집처럼 느낄 수 있는 거짓의 일관된 세계’ (a lying world of consistency which is more adequ
취약계층에게 정부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렌트의 견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공동체는 개인들의 다름(고유성)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관계망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구축, 유지, 활력을 위해선 모든 개인이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개인이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렌트의 관점입니다. 빈곤한 사람은 생존을 위한 '필요'의 영역에 묶여 정치적 삶에 참여하고 자신의 복수성을 드러낼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다양한 개인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성의 회복,구축,유지,활력을 위해선 저소득층에게 정부 이전지출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부이전지출은 오히려 취약계층이 공적영역으로 진입하는데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전체주의 체제의 거짓과 허구는 퓌러(Führer 지도자)에 대한 복종과 충성으로 이어집니다. 아렌트는 이점을 「전체주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진실과 현실에 대한 비교 없이, 오로지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지도자는 진실과 현실에 대한 거짓과 허구의 궁극적 승리를 상징한다” 이처럼 전체주의 선전은 노골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통해 진실과 현실의 기준을 무너뜨리고, 구성원들이 지도자의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의 도덕적 자율성과 판단력을 포기하고, 지도자에게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바치게 됩니다. 이어 아렌트는 전체주의 운동의 모든 계층에서 “지도자의 변화무쌍한 거짓말에 대해 각 구성원이 기대하는 것은 기묘하게 뒤섞인 잘 속음과 냉소”라고 지적하며, 대중들은 이런 반복적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스스로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치와 공범의식을 느끼고 지도자에게 더욱 강하게 묶인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아렌트의 분석은 한국 정치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그리고 공공성의 훼손 아렌트(H. Arendt)는 인간의 활동영역을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으로 구분합니다. 사적 영역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의 손으로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지며, 경제적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공적영역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서로 다른 인간들이 공동의 문제에 대해 함께 소통하며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고대사회에서 엄격히 구분되었던 사적이익이 공적영역으로 침투하면서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공적공간이 위축되는 ‘공공성의 훼손’이 시작된 겁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개인들은 더 이상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그들의 활동은 오직 사적인 경제적 이익의 확대라는 하나의 가치에 의해 지배됩니다. 개인들은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전락하는 겁니다. ◆ 공적 영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공적 영역'을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며 함께 행동하는 공간으로 정의합니다. 공공영역의 모델로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곳은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말하고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