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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마케팅 근시] 도그마의 포로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세상’으로 :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알고 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알고 있다.” 라트비아 출신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분석하면서 고슴도치와 여우를 인용한다.

 

여기서 고슴도치는 단 하나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를 말한다. 이런 부류는 단일의 일관된 사상에 기초하여 현실의 과제를 판단하게 된다. 그러므로 원리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다.

 

여우는 다채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를 뜻한다. 그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단 하나의 원리에 끼워 맞추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현실의 변덕과 모순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고슴도치와 여우론은 미국의 사회적 논쟁거리로 뜨거운 감자가 되어 온 총기규제 논란을 설명할 수 있다. (대니 로드릭)

 

총기소지를 찬성하는 측은 고슴도치형이다. 그들은 사람을 살상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므로, 총기를 자유롭게 유통시키되 오용한 경우 엄중히 처벌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총기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은 여우형이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증하기 위해 사회전체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면, 총기 사용을 규제해야한다고 말한다.

 

고슴도치와 여우는 경제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먼저 수요곡선에 대한 인식이다. 가격이 하락하면 사람들이 사고자 하는 물건의 양은 항상 많아진다고 주장할 때, 그는 고슴도치형이다. 하지만 가격이 떨어진다고 항상 물건이 더 팔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여우형이다. 명품핸드백 가격이 하락하면 오히려 핸드백 수요량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겉에 명품 옷 상품을 붙이고 사치를 과시하는 현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국부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고슴도치와 여우는 같지 않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아담 스미스의 이기심이론에 머문다면, 그는 고슴도치형이다.

 

반면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공평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에게 그의 의견을 묻고 충고를 받아들인다는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까지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면, 그는 여우형이다.

 

시장실패에 대한 인식은 고슴도치와 여우형을 분리한다. 고슴도치는 시장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므로 시장이 실패하여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여우는 시장의 힘을 신뢰하지만, 시장이 실패하면 정부가 시장의 과소· 과다 생산량을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생산량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고슴도치형과 여우형 중, 어떠한 관점이 우리의 삶에서 타당할까? 마케팅근시(marketing myopia)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마케팅 근시에 의하면 판매자들은 제품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정작 고객이 얻고자 하는 편익을 소홀히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GM자동차가 파산직전까지 가게 된 주요한 이유가 이러한 마케팅 근시였다. GM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본사의 임직원들이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에 집중하고 고객이 정작 바라는 본원적 필요(needs)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한 것을 밀어낸다는 철학에서 고객욕구를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철학으로의 이동에 실패한 것이다. 본사임직원들은 고객의 입장에서 승용차를 현장에서 살펴보고 가격을 흥정하는 등의 실제 구매를 경험하지 않았다. (코틀러)

 

이처럼 마케팅 근시는 고객의 실제적 행복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드릴 공구제조업체는 고객이 원하는 것은 드릴제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드릴 사용으로 얻게 될 구멍이다.

 

그러므로 모습이 모순적으로 보일지라도 고객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다면, 일원적 원리로부터의 변주는 수용이 가능할 수 있다. 일견 일관된 시스템에서 일탈되어도 고객에게 가치와 만족을 제공한다면, 이러한 변형은 용납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의 이분법은 행복의 장벽이 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은 명료하여 판단과 결정에 유용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태적인 분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의문부호를 던질 필요가 있다.

 

이제 단일의 원리에 열광하기보다, 직선적이고 판에 박힌 논리에 몸을 가두기 보다, 도그마의 포로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혼돈에 적응해야 할 시점이다.

 

신자유주의에 케인즈이론이 가미된 트럼프노믹스가 이러한 실례가 아닌가?

 

<참고문헌>

대니 로드릭, 고빛샘외 옮김(2011), 자본주의 새판 짜기

Phillip Kotler, 안광호외 옮김 (2015), 마케팅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