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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예멘 통일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사점]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중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 정립필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초래된 남북한 긴장이 한국과 중국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자위권 차원의 사드배치는 중국의 안보에 악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통일과 분단관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의 사드배치계획에 대한 철회 압박은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로 비롯된 한국과 주변국간의 관계의 실타래는 더욱 엉켜 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과거 분단국가였으나 현재 통일국가가 된 예멘의 통일과정은 한반도의 분단관리와 통일에 대한 교훈을 준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예멘의 분단 역사는 한국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멘은 외세로부터 독립하였고, 남북 예멘이 각각 좌파와 우파로 갈라졌다. 

또한 남북예멘은 주변 강대국의 영향 하에 놓여 있었다. 북예멘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보수 이슬람 우파국가가 수립되었고, 남예멘에는 친소련의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 남북예멘은 평화적인 협상으로 통일을 이룬다. 

이러한 남북 예멘의 통일과정은 한반도의 통일과 분단관리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남북 예멘의 분단과 통일의 역사 

북예멘 지역은 일찍이 오스만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에 이맘 야흐야가 이끄는 자이디파가 이 지역을 터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이슬람군주국을 탄생시킨다. 이후 1962년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되고 예멘아랍공화국이 수립된다. 북예멘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원을 받게 된다. 

남부예멘은 영국 지배하에 편입되었다.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아덴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자, 영국이 남예멘을 식민통치한 것이다. 이후 남부예멘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무장투쟁단체인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고 해방투쟁을 벌여  1967년 남예멘지역에 예멘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된다. 남예멘은 사회주의노선을 지향하는 마르크스 레닌 좌파정권을 세우고, 소련의 정치· 군사· 경제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이렇게 남북예멘은 각각 독립을 달성하고, 분단국가를 유지한다. 


◆ 남북예멘의 통일의 요인

남북예멘은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통일을 이루었을까?   

먼저 대외적으로 남예멘의 최대 후견국가인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남예멘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였다. 

고르바초프는 남예멘정부에 개혁정책추진을 권유하면서 남예멘에 대한 경제 군사원조를 줄였다. 소련의 원조중단은 남예멘의 경제난국을 의미하였다. 이에 남예멘은 서방과 북예멘등과의 경협으로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이는 북예멘의 보수세력과 북예멘의 지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예멘에 대한 불신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대내적 요인으로 남예멘에 실용주의 정부가 들어섰다는 점이다. 

1980년 4월 남예멘에서 내부권력 투쟁을 거쳐 친소강경파인 이스마일을 대신하여 실용주의자인 알리 나셀 무하마드가 집권하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화해정책을 취하고 북예멘과 통일 협상을 재개한다. 이어 1981년 북예벤과 ‘남북예멘 협력 조정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결국 대내외적인 요인 하에, 남북 예멘은 쌍방의 협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게 된다. 


◆ 예멘통일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

예멘통일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는 남예멘의 개혁개방이 예멘 통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할 수 있는 다각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대외적으로 북한에 개혁을 촉구할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 이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대외교역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석유사용량의 80%이상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젖줄인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이 한반도 통일 혹은 안정된 분단관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내적으로 북한의 실용정부의 존재의 중요성이다. 남한과 협상이 가능한 유연한 정부가 들어서서, 경제 사회 분야에서 남한과 상호교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중국이 통일을 적극 지지하지는 않아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서지는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한국은 단기적으로 안정된 분단관리와 장기적으로 통일한국 달성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남예멘의 통일 과정에서 발견되듯이 이를 위해 남북한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현상타파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는 중국이다. 

사드배치는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장치임에도, 중국은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한국의 안보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그럼에도 단기적으로 또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한반도 안정에 대한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주변국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드를 배치해도 중국에게 안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중국에게 레이더 모드를 종말모드로 유지한다는 약속을 한다는 등이다.  혹은 중국이 강력한 북한 제재에 동참한다면, 사드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제안도 통일 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一步후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홍현익 (2015), ‘대박 통일을 위한 대북정책 및 국제협력 방안’, 세종연구소
이경(2011), ‘분단국의 통일사례 비교’, 대한 정치학회보 18집 3호 
김용욱(2005),'예멘과 독일의 통일사례 비교와 시사점',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8집 1호
장인성(2002), ‘한반도 통일 기반 조성방안에 관한 연구:독일과 예멘의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석사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