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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헤게모니 투쟁] 헤게모니 투쟁, 어디에 안착하여야 하나? ; 헤게모니의 세가지 종류

헤게모니 투쟁이 여의도 정치권을 태풍처럼 휩쓸고 있다. 정부여당 내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에 이어, 야당의 주류와 비주류가  팽팽히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고 있다. 

헤게모니는 사전적으로 ‘어떤 지배적 집단에 의해 행사되는 사회적· 문화적· 이념적 요인에 기반한 지배력’으로 설명되는데, 전문가들은 헤게모니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구분하고 있다. 

동의와 강압이라는 양극단의 스펙트럼 중,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 헤게모니는 순수한 헤게모니, 통합적 헤게모니, 그리고 패권적 헤게모니로 구분된다. 


◆순수한 의미의 헤게모니

순수한 의미의 헤게모니는 동의와 강압의 선상에서 동의 측면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즉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근거하여 리더십, 지배력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리더의 전문성에 승복하거나, 리더의 카리스마에 복종하는 경우 등을 순수한 의미의 헤게모니 획득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혹은 각 주체들이 서로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에 임한 결과  상호 동의에 입각한 공동주체성의 형성과 지배력이 옹립되는 경우이다. 

이렇게 동의를 받게 된 권력은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고, 이 권력은 권위로 승격된다.  만약 동의를 구축하지 못한 경우, 이 권력은 폭력으로 간주된다. 


◆통합적 헤게모니

순수한 의미의 헤게모니와 달리, 동의와 강압의 스펙트럼에서 이 둘을 적절히 병합하는 통합적 헤게모니가 주장되기도 한다. 

김학노 영남대 교수는  통합적 헤게모니의 관점에서, 정치는 ‘我와 非我의 헤게모니 투쟁’이라고 설명한다.  이 개념은 신채호선생의 ‘인류사회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논거와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의 결합이다. 


△아, 비아 
신채호 선생의 아와 비아는 나와 나를 제외한 모두를 의미한다. 예컨대 조선이 我라면 영국· 미국 등은 비아가 된다. 무산계급이 我라면 지주와 자본가는 비아에 해당한다. 물론 이 논리의 역도 참이다. 지주가 我라면 무산계급이 비아가 된다. 

김 교수는 이 개념을 확장시켜 아와 비아의 관계를 우리와 그들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수평적 개념으로 친구 사이에서, 그리고 수직적 개념으로 부모-자식의  보살핌의 관계에서도 아와 비아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헤게모니 
여기서 헤게모니는 자발적 동의와 강압에 의한 지배를 모두 포함하게 된다. 이는  반인반수의 ‘센타우르’적 성질을 지니고 있어,  자발적 동의에 의한 권위와 강압의 폭력의 양 측면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압과 동의의 양면성은 투쟁과 통합의 양면성을 담고 있다. 경쟁은 권력투쟁이지만, 이 투쟁은 통합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헤게모니 투쟁 
이러한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는 상대방 집단을 배제하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며, 이들을 품고 가는 덧셈의 정치가 된다. 

어떻게 통합의 정치가 가능할까? 이는 지배세력이 소아적 자세를 내려놓고 대아적 자세를 견지할 때, 즉 小我에서 大我로 전환될 때, 통합이 형성되게 된다.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부분적으로 희생하거나 양보하면서, 여타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때, 헤게모니 투쟁은 통합으로 전환되게 된다고 김교수는 설명한다. 

통합의 결과는 ‘우리’라는 집단 정체성의 정립이다. 상호의존, 공동운명, 동질성이라는 우리의식이 형성된다. 

결국  헤게모니 투쟁은 小我에서 大我로의 통합이며, 우리라는 공동운명에 이르게 된다. 김교수는 이를 ‘서로 주체적’으로 정의 내린다. 

‘서로 주체적’이란 상대방의 주체성을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주체성을 지닌다. 상대방과의 공존을 지향하고, 상대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소아에서 대아로의 통합과정에서 소아들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지배세력과 주변이 공존하게 된다면, 이는 통합적 헤게모니 투쟁의 현상이 된다. 


◆ 헤게모니 투쟁은  권력투쟁

반면 헤게모니 투쟁은  권력투쟁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동의와 강압의 선상에서  헤게모니 투쟁은 강압이라는 극단에 위치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는 김교수의 헤게모니 투쟁의 통합성에 반론을 제기한다.  헤게모니 투쟁은 현실적으로 통합이라기보다, 지배나 패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소아들이 헤게모니 투쟁으로 대아를 형성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관점이다. 대부분의 정치행위가 집단 간의 영향력 경쟁이므로, 개념의 확장으로 경쟁 집단을 통합하거나 우리를 형성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최교수는 지적한다. 주체성의 공존을 허락하는 ‘서로 주체적’ 통합은 타당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남게 되는 것은 벌거벗은 상태의 헤게모니 투쟁이다. 아와 비아의 헤게모니 투쟁은 집단 간의 패권싸움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는 만약 헤게모니 투쟁으로 한편이 상대방을 붕괴시키게 될 우려가 높게 된다면, 결국 정치적 장내에서의 투쟁에서 정치적 장 자체를 둘러싼 투쟁으로 바뀐다는 의미가 된다. 

한 편이 기존의 場을 벗어난 새로운 장에서, 기존의 장에 대항하여 정치적 場들 간의 투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 정치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헤게모니 투쟁이 되어야 

동의와 강압의 스펙트럼에서 순수한 의미의 헤게모니, 통합적 헤게모니, 권력투쟁의 헤게모니가  각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헤게모니 투쟁이 현실적인 모습을 보일 것인가?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주류와 비주류간의 헤게모니 투쟁은 위의 세 지점 중 어디에 안착할 것인가(안착하여야 하는가)? 
  
헤게모니 투쟁이 어떠한 지점에 위치 할 것인가는 정치영역이 담당해야 할 고유한 과제와 결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교수는 이 과제는 모든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living together)에 있다고 지적한다. 각기 다른 고유의 개성을 지닌 복수의 인간(plurality)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헤게모니가 실현되는 정치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권력투쟁이 과정과 도구의 모습일지라도, 투쟁의 결과는 서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건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게모니 투쟁이 어디에 안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어느 지점이 정치영역의 목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가와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