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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땅콩 리턴, 그 이후... : 사회적 이슈와 개인의 행복은 무관

‘땅콩리턴’사건 발생 후, 약 한 달이 지났다.

이 사건에 나타난 제왕적인 ‘갑의 횡포’에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관련기사들에는  네티즌의 분노의 댓글들이 달렸고, 외신들은 이 사건을  한국 국민들의  ‘땅콩 분노(nut rage)’라고 이름 붙였다.   

여전히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일탈행위라기 보다 일부 특권 甲층의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와  안하무인의 행동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에 대한 망신’ ‘돈이 있으면 다야’ ‘갑질의 대표적 예’등의  반응을 보였다. 

말보다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대한항공 안탄다.’ 는 댓글들이 그것이다. 글에는 대한항공 탑승을  보이콧하겠다는 비장함이 엿보였다.  

그런데  보이콧이 실제 행해져 대한 항공의 매출이 줄어들고, 반사이익으로 타 항공사들의  매출이 증가하였을까? 

여행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발생 후 1~2주간은 여행객들이 미리 예약된 대한항공편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항공 이용 빈도는 사건 발생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도  땅콩리턴 사건 이후, 대한한공 외의 타 항공사의 매출 변동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승객들이 대한항공에서  이탈하여 타 항공사로 갈아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승객들이 여전히 대한항공을 택하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우선  대한항공이 타항공사들보다 승객들의 욕구를 더 잘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대한항공이  같은 노선이라도 하루 운행 편수가 상대적으로 많아, 시간에 쫒기는 승객들이 자연스레  대한항공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승객들이 원하는 시간과 날짜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경쟁력을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해외 비즈니스로 해외출장이 잦은 승객들은 항공 마일리지 누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승객들은 지금까지 누적한 마일리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자신의 기호를 변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기존의 항공기를 이용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현상은  담뱃값 인상과 소비자들의 담배선택에도 적용된다. 

올해 국산 담배가격이  2000원 인상되었으나 일부 외산담배는 인상이 연기되자,  외산담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소비자는 “자신의 기호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아 그대로 이전과 동일하게 국산 담배를 피운다.”고 말한다. 

이처럼  땅콩리턴에 대한 분노의  표출과  실제 의사결정은  다를 수 있다는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발견된다. 


◆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이슈

이러한  모순관계를  개인의 만족도는 사회적 이슈와 무관하다는 조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인철 서울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는 누가 행복한가>라는 보고서에서, 정치적 신념과 개인의 행복은 무관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 행복이란?

우선 행복이란 무엇일까? 최교수는 행복은 개인의 만족감과 삶의 의미의 합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만족감은 삶에서 경험하는 정서적 경험을 의미한다.  

또한  의미의 경험, 목적이 이끄는 삶의 추구, 개인적 성장등과 같은 자아 실현적 접근도 행복의 요소가 된다.  따라서 즐겁기만 하고 의미 없는 인생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OECD의 행복 측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에도  만족감과 의미경험을 동시에 측정하고 있다. 


△ 행복은 삶의 문제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재벌 규제는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 간에 격렬한 논쟁을 보이고 있는 이 정치 경제 이슈는 개인의 행복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면 이를 지지하는 층은 행복감이 증가할까? 재벌규제가 완화된다면, 이를 지지하는 보수층은 개인의 행복감이 높아질까? 

답은 ‘아니다’이다. 첨예한 사회 이슈와 개인의 행복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태도와 개인의 행복과의  상관관계  조사에서 이 둘의 관계는 무관하거나 큰 관계가 없음을 밝혔다. 정치적 신념과 행복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우선 안보관과 행복 면에서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해야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한다.’와 개인의 삶의 만족감은 상관관계는 0에 가까웠다. 이 이슈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도 거의 무관하였다.  

북한에 대해 진보적 생각을 갖든 보수적 생각을 갖든, 자신의 만족도와  목적에 따른 삶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안보관을 갖는지와 개인의 행복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성장이냐 복지냐의 논쟁과 행복도 상호 무관하였다. ‘경제 성장보다는 복지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고소득자들이 현재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해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금을 줄여야 한다’등의 의견도 개인의 정서적 만족도와 의미있는 삶인 행복과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를 가져오는 조건들이 존재하는데,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가족과의 관계이며,  건강상태, 자녀의 성적, 주거상태, 직장안정성, 여가 생활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사회경제와  사회정치는 개인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마지막 조건이었다.  

최교수는 “행복은 정치적 이슈와는 무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행복은 진보의 문제, 보수의 문제라기 보다 삶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 공감과 연대 

현재 상영중인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타인의 문제에 대한 동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의사결정은 달라질 수 있는 예이다. (관련기사: 영화<내일을 위한 시간> 리뷰)

실직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 여성노동자가 있다. 그녀의 직장 동료들은 그녀의 복직과 1000유로 보너스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동료들의 과반 이상이  보너스를 포기하고 그녀를 선택하면 그녀는 복직된다. 

일부 동료들은 그녀를 도울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 노동자는 ‘네가 해고되는 건 싫지만 큰 돈 놓치기도 싫어’라며 그녀의 구명을 거절한다. ‘이혼하고 남자친구와 새 출발을 해야’하는, 혹은  ‘대학생 애한테 매달 500유로’를 쓰는 동료들도 그녀의 딱한 사정에 동조하나, 보너스를 택한다.  동조와 자신의 의사결정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깊이 있게 성찰한다.  


◆ 행복 우선주의의 함정

위의 일련의 사례들은 이처럼 아무리 정치·경제 이슈들이 사회와 타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지라도, 이 문제들이  자신의 삶과 직결되지 않는 한 개인의 만족도와 의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을을 무시하는 갑의 횡포에 대한  비난과  자신의 개인적 만족과는 연결 고리가 끊어져있다는 것, 즉 정치 사회적 이슈와  개인의 주관적 행복은 무관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타인의 문제와 자신의 행복은 상호 모순될 수 있다는 점등을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최교수는 이를 행복 우선주의의 함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안보· 복지· 성장 등의 이슈가 행복과는 독립적으로 중요한 주제들인데, 개인의 주관적 행복을 지나치게 추구한다면 공동체의 중요한 다른 가치가 무관심해 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르덴 형제도 타인에 대한  공감과 개인의 이익과의  모순과 갈등을 이야기한다.  보너스를 선택할 것인가 혹은 그녀의 복직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갈등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실제로 보너스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을 이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