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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가업상속공제 개정 법안 부결의 의미는 ? ; 눈도 적당히 내려야

9회말 투아웃에서 역전 만루홈런이었다. 내내 끌려가던 야당이 막판에 뒤집기를 한 것이다.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부수법안인 상속증여세법의 가업상속공제 개정 정부안과 여야 합의 수정안이 모두 부결된 것이다. 아마도 야당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자포자기로 법안의 일부만 수정하여 여당과 법안 합의를 하였기 때문이다. 

여야 수정 동의안은 재석 262명 가운데 찬성 114명, 반대 108명, 기권 40명으로 부결되었다. 특히  여당의원들도 34명이 이 법안에  반대 및 기권표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업상속공제 개정 정부안이 나오자 기업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법하다.  정부는 대놓고 이 개정 법안을 독일식이라고 밝혔다. 

우선 기업요건을 현행 매출액 3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완화하였다. 적용 범위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까지 확대하여 최대 300억까지  상속세를 공제해주도록 한 것이다. 

또한 피상속인 요건도 완화하였다.  피상속인이 현행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에서 5년(수정안은 7년)이상 경영한 기업으로 완화하였다. 

피상속인의 지분율 요건도 완화하였다. 현재 피상속인과 그의 특수 관계인과 함께 해당 기업의 지분을 비상장기업은 50%이상, 상장기업은 30%이상을 계속하여 보유하여야 한다.  정부 개정안은 이 조항에 덧붙여,  피상속인이 지배주주로서 1인 지분 비율 25%(수정안은 30%)이상이어도 상속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무엇보다 정부는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상속인의 이행의무도 완화시켰다. 기업유지의무가 10년에서 7년으로 완화되었다. 현행 10년 동안 가업용 자산의 20%이상을 처분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나, 개정안에는 법인은 자유롭게 자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하였고,  개인은 7년 내 50%미만에서 처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고용관련의무에서 현행 상속 후 10년간 정규직 근로자 수 평균이 상속 전 근로자 수의 1배 이상 이어야하고  중견기업은 1.2배이다. 정부개정안은 중견기업의 경우 고용기준을 7년간  1배로 낮추었다. 

현행 매년 정규직 근로자 기준도 정부안에는 빠졌다. 매년 정규직 근로자 평균인원이 기준고용인원의 80%이상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기준고용인원이란  상속이 개시된 사업연도의 직전 2개 사업연도의 정규직 근로자수의 평균을 말한다.  



정부개정안의 문제는 개정안이 가업상속공제를 도입할 때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초 가업상속공제의 취지는 독일 같은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히든 챔피언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에 의하면  히든 챔피언은 숨은 强小기업으로,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이는 기업의 규모는 작지만 틈새 시장을 파고들어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안을 말한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1~3위 안의 독일 히든 챔피언은 악 1500개이며 이중 1,350개가 중소기업(Mittelstand)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이 경제의 핵심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도록, 중소기업에게  세제상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이 변화무쌍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2008년 세제개편에는 공제율을 20%에서 40%로, 공제한도를 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확대하였다.  피상속인의 대상기업 경영기간을 15년에서 10년으로 완화하였다.  

2010년 세제개편에는 매출액 규모를 1500억원까지의 중견기업으로 확대하였다. 최대주주지분율 요건도 상장기업의 경우 40%에서 30%로 완화하였다. 

2011년에는 공제율과 한도를 각각 70%와 300억원으로 확대하였다. 2012년 세제개편에는 중견기업의 범위를 1,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넓혔다.2013년 세제개편에는 다시 대상기업 범위를 확대하여, 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완화하였다. 

여기서 정부는 중소기업 가업승계가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다는 명분을 강조하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중소기업 가업승계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음을 감안해 독일 제도를 벤치 마킹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여기에 2014년  올해 세제 개편에는 다시 매출 3,000억원 기업으로 상속공제 범위를 넓혔고,  정부는 막힘없이  특단의 개정을 감행하였다. 

사후 관리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사후관리를 10년에서 7년으로, 그리고 고용유지요건과 관련  매년 고용 평가기준을 삭제하고, 중견기업의 고용유지조건을  상속 전 근로자수의 1.2배에서 1배로 완화하였다. 

더 많은 중견기업에게 상속세를 깎아 주면서, 오히려 거꾸로 근로자수 유지 기준을 낮춘 것이다. 혜택이 커지면 이에 상응한 부담증가가 원칙임에도, 혜택은 커지면서 의무는 줄이는 희한한 법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이제 고용유지를 위해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한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되었다.  ‘가업’에 강조점을 두던 법안의 무게중심이  기업의 부담완화라는 ‘상속공제’로 이동한 것이다.  짙은 액기스가  점점 맹물로 변해갔다. 

세법전문가들은  가업상속공제와 관련, 대상기업의 확대를 위해서는 정책완화의 효과를 평가한 후 실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여자대학교의 이성봉 교수는 가업상속재산 공제비율, 공제한도액, 대상기업 범위들을 추가 확대하는 제도 개편은 가업상속 공제제도의 활용사례 및 고용효과등을 일정기간을 두고 평가한 이후에 제도 보완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이 교수는 규모의 범위를 확대할 경우 10년 동안 정규직 고용인원수 및 인건비 수준에서 연평균 5~10%정도의 지속적인 상승을 이행의무로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규모를 완화하여 상속세를 완화해줄 경우, 이에 상응한 기업의 의무를 강화해야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부결은 본질에서 이탈하면 그 결과가 어떠한 지를 잘 보여 준 사례이다.  이른바 달리던 기차가 과속으로 궤도에서 벗어나 탈선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정부의 과욕이 화를 자초하였다. 배당에 분리과세를 하여  대주주들에게 혜택을 부여한 법안에 덧붙여, 기업들에게 상속세까지 완화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명분도 미사여구도 내세우지도 않는다. 

눈도 첫눈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러나 계속 겨울 내내 눈이 내리면 그저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법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정부의 정책에도 적용된다. 

창밖 여의도역 사거리에 지금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소복이 쌓이고 있다. 눈도 적당히 내리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