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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연애의 기억>리뷰 : 평범을 거부하는 장르의 변주



로맨틱 코미디에 미스터리 장르가 가미된, 평범을 거부하는 영화 <내 연애의 기억>이 관객의 심장을 향해 다가온다. 


◆ 장르의 변주 

과거의 로맨틱 코미디물은 낭만과 신비가 가득 찬 동화적 공간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달콤하며, 간혹 갈등으로 인한 쌉싸름한 사랑을 묘사한다.   

남자 주인공은  귀공자 스타일의 지적인 용모에 훈훈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중저음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기타를 치며 달콤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무엇보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힘은 재력이다. 

큰 눈망울과 아리따운 얼굴의 여자 주인공도  가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사랑스런 존재이다. 무엇보다 기품있는 아우라가 그녀를 감싼다.  

두 사람의 사랑은 유쾌하고 짜릿하다.  그러다 남녀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갈등을 겪다가 이별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의 힘으로 다시 두 사람의 갈등은 극복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로맨스는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신분상승의 욕망을 부추긴다.  관객들은 주인공과 함께 상승의 에스컬레이터에 동승하여 현재 이루지 못한 욕망을 환상 속에서 실현시킨다. 

<내 연애의 기억>도 이러한 사랑의 미화라는 로맨스의 공식을 답습하며  출발한다. 쿨하고 화통한 성격의 은진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오빠’스타일의 현석의 사랑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하여 결혼을 고려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다  현석의 핸드폰 문자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이 점화되면서 안정된 관계가 변화에 직면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급격히 장르의 변신을 도모한다 

은진은 ‘민중의 지팡이’ 경찰 후배와 함께 현석의 정체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나간다.  현석의 정체와 정체성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풀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스릴러 형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의 밀고 당김의 낭만의 순정 만화풍에서 그는 누구이며 왜 그러했는지 그리고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인가라는 미스터리물로의  장르 변주는  독창적 구성의 실험으로 의미를 지닌다.   


◆ ordinary에서 extra-ordinary로

구성의 변화는 내용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My Ordinary Story>는 ‘평범’에서 탈출하여 ‘비범’을 시도한다. 

은진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화려한 연애 경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다양한 부류의 남자들과의 6번의 연애에도 그녀는 상대들의 배신으로 사랑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귀속되어 자신을 의탁하고자 하는 욕망이 깔려 있었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는  거래되는 보험 상품의 역할로 전락하며, 그녀는 재생산의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런데,   은석의 정체성의 의문은 은진으로 하여금  상품의 지위를 비자발적으로 포기하도록 이끈다.  그녀의 현석에 대한 who, why라는 의문들의 해결과정은 은진 스스로가 자신을 ‘번식의 도구’로서 기꺼이 위치하겠다는 정체성에 타격을 입힌다. 

이는 종속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개별 인격체로의 도약의 계기가 된다. 은진은 상대의 표피에 대한 관심을 접고 그의 상처와 진심을 헤아리는 주체로서의 인격체의 승격을 체험하게 된다. 즉 <내 연애의 기억>은 ordinary에서 extra-ordinary로의 위치를 점유하고자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 껍질대신 알곡

이 영화의  장르의 변주에 대한 실험에 덧붙여, 본능적인 욕망으로부터 탈출하여 아픔을 품는  성숙으로의 과정의 추적은 제 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는 계기가 된다. 

네 명의 연기자는 각자의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훈훈함과 동시에 오싹한 서늘함을 뿜어낸 송새벽은 아마도  이 영화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 같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에 슬기롭게 유연한 연기를 펼친 은진역의 강예원은 관객들의 심장의 진폭을 크게 하는 기여를 한다. 

또한 민중의 지팡이역할의 박그리나의  코믹 터치는  관객들의 뇌리에  작지 않은 자극을 남긴다.  <한공주>에서 일진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현준은 이 영화의 윤활유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성공적인 연기변신을 이룬다.

애니메이션을 통한 압축된 심리 묘사도 이 영화의 촘촘한 연출 노력을 엿보게 한다.  

낭만적 사랑으로 치부되고 합리화되었으나 그 실상은 거래적이며 종속적인 관계가 지배하는 현상에서,  어느 누구와의  정체성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진실된 사랑의 관계성으로의 전환에 대한 이 영화의 메시지는  알곡 아닌 껍질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게 한다.   

8월21일 개봉, 9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