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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 : 천민자본주의 극복해야


1995년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졌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는 937명에 이르렀고, 실종자도 6명이었다. 그 당시 백화점 매출 1위의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한국전쟁 다음으로 최대 인명피해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비극은  올해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세월호 침몰로 우리는 19년전 이 참사의 끔찍한 데쟈뷰를 겪는다. 

재난연구와 메뉴얼 연구, 안전의식 형성, 그리고 규정 준수등, 무엇하나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의 비합리적 영리성의 허점이 드러나자,  여지없이 폭력의 악마는  꽃다운 목숨들을 앗아갔다. 


삼풍백화점 붕괴 과정 
  
삼풍백화점은 건물 설계 당시 삼풍 아파트 종합상가로 설계되었다. 거의 다 지어갈 무렵에 상가에서 백화점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건물구조가 바뀐다. 최초 설계의  상가 건물 벽을 허물고 매장 공간을 확보하였다. 벽이 없어지게 되어, 무게가 기둥으로 집중되게 된다. 게다가 기둥 속의 철근 수도 최초 설계도의 16개에서 8개로 줄였다. 

무엇보다 최초 4층까지만 설계를 했던 건물이 5층으로 확장되었다.  5층은 식당가를 조성하면서 5층 바닥에 배수로가 설치되고 콘크리트가 추가되었다. 

특히 옥상에 4개의 냉각탑을 두었다.  최초 지하에 설치하는 대신, 지하 공간 확보를 위해 옥상에 설치한 것이다. 그 결과 4층 식당과 냉각탑을 합쳐 100여톤을 그 약해진 기둥이 견뎌야 했다. 이미 건물 붕괴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화점의 에어컨 이동도 붕괴에 결정적이 역할을 한다.  삼풍 아파트 주민들의 에어컨 소음에 대한 민원제기로, 에어컨을 북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시킨다.  이 과정에서 에어컨을 옮길 때 크레인으로 에어컨을 들어 올려 옮겨야 함에도, 비용절감을 위해 굴림대위에 에어컨을 이동시킨다. 그 결과 건물에 충격을 주어 균열이 발생한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사고 당일의 일이다. 그날 오전 9시경 5층 비빕밥 식당에서 천장이 내려 않았다.  이어 5층 대부분의 식당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거나 내려앉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영진은   건물안전 진단을 받는다. 건축소장은   “백화점 영업을 중지하고 고객들을 대피시키라”고 권했다. 

하지만 이 준 삼풍그룹회장은 붕괴 2시간 전에, 지지대를 받치는  보수를 하도록 지시하고 영업을 강행한다. 

그러나 2시간 후 시설부장은 경영진에게 건물 붕괴를 알리는 전화를 하자, 이 회장등은 일제히 건물 밖으로 긴급하게 대피한다. 그 사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손님들과 종업원들은 1천여명을  넘고 있었다. 

“모두 긴급히 대피하라”는 다급한 직원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5층 바닥과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5층 잔해들이 아래층을 치면서  건물이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무너진다. 약 20초 만에 지하 4층까지 완전 붕괴되어 1,500명이 이 잔해에 묻힌다. 

백화점 주변에  피투성이의 사람들이 목격되고 있는  와중에, 옷을 훔치는 여인도 있었다.  미소를 머금으며 옷을 훔치는 여인은 ‘악마의 웃음’이라는 사진으로  회자된다. 

상품그룹회장 이준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징역 7년 6개월이 확정된다. 

부의 상징인 화려함 속의 모래성이 바로 삼풍백화점이었다.  


◆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는 삼풍백화점의 데쟈뷰이다. 변침에 따라 고박상태가 불량했던 화물 컨테이너등이 좌현으로 쏠리면서 급속도로 전복되었다. 이 사고는 무책임한 승무원들에다 복원력이 불량한 탓으로 발생하였다.

복원력은 무게중심과 회전중심이 차이로, 무게중심이 밑에 있고 회전중심이 위에 있을 때 복원력(GM)이 생긴다. 하지만 세월호가 인천에서 출항 시 화물을 3배 과적하여 복원력에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을 남긴다.  따라서 만재흘수선이 물밑으로 가라앉자, 화물을 줄이지 않고 평형수를 줄여 만재흘수선을 물위로 띄워 올린다. 

최초 출항시에는 GM이 플러스였다. 하지만 점차 배 밑의 연료와 청수를 소모하게 되어,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 무게중심과 회전중심이 같아지게된다. 결국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이르게 되자,GM이 제로가 된다. 그 결과 선박은 전복된다.

하지만 이준석선장등은 승객들의 퇴선을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배가 침몰하자 선장과 승무원들만 승객을 방치한 채 자신들만  탈출한다. 


◆ 천민자본주의의 극복 

이 두 참사의 공통점은 비합리적 영리욕과 윤리의식의 실종이다. 이러한 영리욕의 기저에는 얼빠진 자본주의가 위치해 있다. 

막스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정신은 기업가들의 합리적 경영하에서의   금욕적 청교도적 윤리라고 강조한다.  투기적, 탐욕적, 비합리적 영리욕은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벌기위해서 사람의 목숨에 도박을 걸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천민자본주의는 배격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성은  우발성에 대한 둔감함이다. 신일철교수는  합리적 사고는 맥시민 룰 (maximin rule)이라고 지적한다. 즉  위험회피적인 의사결정이다. 

우발손실의  가능성, 즉 확률로 분포가 이루어질 때, 위험선호자는 이 손실가능성을 외면하고  모험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지겠어 라고 자신의 비합리적 영리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위험회피자는 그 손실가능성에 민감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비를 사전에 철저히 한다. 규정에 맞게 의사결정 한다. 안전에 대한 대비를 하고, 합리적인 이윤을 추구한다. 비합리적 영리추구로 요행수를 바라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는다. 

신일철 교수는 도산 안창호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행위에 대한 호소를 소개한다. “浮虛는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고 정당한 계산과 노력을 하지 아니하고 천에 한번 만에  걸려드는 요행수를 표준하며, 예외적 행동으로 여기 덥쩍 저기 덥쩍 마구 덤비는 것이다.”라고 도산은 말한다. 

이는 청교도적 윤리에 바탕을 둔 착실성과   자본주의의 시민의식과 일맥 상통한다.  즉 현세적 영리욕을 버리는 금욕이 아니라, 규칙에 근거하여 자신의 부를 쌓고, 이의 일부를 주변에 나누어주어, 상대가 온기를 느끼도록 한다. 

신교수는 퓨리턴적 에토스는 토목공사에서 그 원료보다 제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며, 투기보다 그 직업에 충실하다 보면 돈을 버는 것은 부차적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단순노동이라도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받아들여져,  비록 이러한 노동에도 정성을 다하여 장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에토스가 담겨져 영리추구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대재난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에토스로 무장 한다면, 투기적이고 극단적 위험선호 그리고 비합리적 영리추구의 천민자본주의는 극복 될  수 있다.

한편 김창호 박사는 천민자본주의의 포기를 위해서는  단순한 윤리회복을 넘어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구조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어떠한 윤리 회복운동도 사실상의 윤리적 문제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성장은 관료와 경제의 효율성만 강조되어, 합리적인 에토스의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발목을 잡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합리적 이윤추구와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더 나은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김박사는 이러한 윤리의식의 정착을 위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유사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와 개혁은 정부의 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시민의 사상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 이는 천민자본주의의 극복의 단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