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영화

[영화 '경주' 리뷰] 슬픔과 이별을 고하고....

<경주>는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이다.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 윤희와 최현의 사랑에는 고소한 차 향기가 배어 나온다.

 

베이지색 바지에 흰색 셔츠가 무척 잘 어울리는, 경주의 한 찻집 아리솔의 여주인 윤희는 북경대 정치학 교수 최현 앞에서 차를 따른다.

 

정중히 장차를 우리는 그녀의 우아하고 품격 있는 태도는 윤희의 참한 용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최현도 여인의 마음을 흔들만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7년전 아리솔에서 본 춘화를 찾아 다시 그곳을 방문한 그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그를 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준수하며 지적인 용모의 소유자이다.

 

또한 최현이 아리솔 앞마당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모습에서 소년의 순수함을 엿보게 한다.

 

윤희도 자신의 얼굴이 찍히기 싫다며 최현이 핸드폰 카메라로 360도 촬영 하는 동안, 최현의 등 뒤에서 자신도 그를 따라 회전한다.

 

소년 소녀들의 소꼽장난 같은 순수함이 넘쳐난다.

 

누군가에게 끌릴 때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의 성취가 아니라 그것이라고 말하여진다. 윤희와 최현이 서로에게 이끌리게 한 그것은 그들의 순수함과 아이같이 거짓 없는 천진난만함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가장 원초적으로 갈망하는 욕망의 대상인지 모른다.




두 사람은 함께 최현이 빌린 자전거를 반납하러 간다. 자전거 앞·뒷자리에 탄 두 사람의 모습은 열정으로 타오르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소망스런 따뜻함이다.

 

 

우리는 이제 살아 남아야 한다.



 

윤희는 최현을 계모임에 초대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우리 이웃의 일상의 인물들이 있다. 북한학을 연구하는 박교수, 플로리스트 강선생, 윤희를 흠모하는 형사 영민등, 우리 모두 익히 한번쯤은 접해 보았을 소박한 이웃 속에서 윤희는 그녀의 삶의 안식과 위로를 얻는다.

 

하지만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 속에 살아가는 윤희에게 고분능 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은 상실을 품고 있다.

 

윤희는 만난 지 12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최현을 자신의 집으로 새벽에 초대한다.

   

그리고 윤희는 귀 한번 만져 봐도 될까요?”라는 엉뚱한 말을 한다. 그리고 최현의 귀를 만진다. 남편의 귀와 닮았다는 거다.

 

여기에 그녀의 사별한 남편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이 배어나온다.

 

그녀의 집 거실에는 남편이 걸어놓은 그림이 걸려있다. 그 그림에는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두 가닥의 동아줄이 서로 꼬여 튼튼히 묶여 있듯이, 우리의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고 맹세하고 믿는 사이에도 두 가닥 중 한 줄을 놓아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관계가 풀어 헤쳐져 버린다.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라 믿었던 자와의 이와 같은 이별은 마음에 흉터를 남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가슴에 피멍을 맺게 한다.

 

그리고 추억이 밀려온다. 그 사람의 모습, 냄새 그리고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윤희가 최현의 귀를 만진 것도 남편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떠난 후 남겨진 트라우마의 치유와 회복을 어찌해야할까? 이의 해답이 위의 글귀이다.

 

잘 정리해야 잘 살아 남는 거다.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가 마음을 엄습해 올지라도, 참 이기적이고 참 고통스러우나, 나름의 치유와 회복으로 슬픔과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녀가 최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것은 이러한 상처의 치유를 위한 몸부림 일지 모른다. 단순히 호감과 좋아함의 차원을 넘어서 그녀의 마음의 생채기의 치료인 것이다. 윤희에게서 최현은 과거의 환기이며 동시에 앞으로의 미래이다.

 

우리는 이제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떠난 이에 대한 도리이다.

 

미래를 불러오기 위해 과거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몰두하여 과거의 고통이 가려질 때 과거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마리 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