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영화

소원아, 너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단다. 영화<소원> 리뷰

괜찮아! 소원아, 다 괜찮아!

‘마음 속에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는 쉼을 모른다. ’

‘눌러도 눌러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억. 내 머리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였다면 좋으련만... 단번에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을 텐데..’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털고 일어나라고? 이 아픔을 네가 알아? 
난 왜 태어났을까... 

과거의 외적인 충격과 상처로 현재 눌려있는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는 상처받은 영혼의 절규가 들려온다. 정녕 아픔은 치유될 수 없고, 회복될 수 없단 말인가!

이준익감독의 신작, <소원>은  지치고 좌절한 영혼들에게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린다. ‘단언컨대, 너는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단다.’ 

영화 <소원>은 소원이에게 ‘괜찮아 소원아, 다 괜찮아’라고 가녀린 어깨를 감싼다. ‘힘내’라는 말 대신, ‘힘들지’라고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상처를 싸매주고, 아물게한다. 그래서 소원이는 다시 학교에서 수학문제를 풀고, 아빠와 롯데자이언츠의 전날 역전패를 속상해한다. 아름다운 일상으로의 복귀인 것이다. 소원이는 이제 다시 출발이다. 앞으로의 미래의 소원을 향해...

# 치유 
치유는 찢어진 마음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치유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가 나를 원하며, 받아주고, 돌보아주고, 사랑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때 시작된다. 

코코몽이 되어 땀에 흠뻑젖은 채, 소원이의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대신 감당하는  아빠, 엄마.  소원이의 치료비로 적금통장을 건네주는 아빠친구. 그리고 자기가 소원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울먹이는 소원이 친구, 영석이. 이들 모두는 소원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늘 함께하여, 결국 이 코코몽친구를 아픔에서 구해낸다. 그들의 가슴 뜨거운 사랑이 소원이를 어둠의 세계에서 건져낸다. 

그들이 과거의  사건 자체를 변하게 할 수는 없으나 그 사건의  결과를 다시 역전시킨다. 절망이  희망과 새로운 삶의 의미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준익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에서처럼  별은  누군가가 빛내주어야 빛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상처받은 영혼도 누군가의 위로와 관심을 통해서 치유되는 것이다. 

# 회복 
회복은 자기 부정, 자기동정, 미움, 무가치등의 감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과정이다. 마음의 쓴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내면의 치료, 잠재심리적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소원이는 할머니의 ‘아이고 죽겠다’를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고 곡해한다. 소원이는 산수문제 하나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문제 「 영석이가 딱지 9개을 가지고 있고, 소원이가 3개를 가지고 있을 때, 공평하게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에서 소원이는 답을 구하지 못한다. 영석이가 3개를 자신에게 나누어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내재된 잠재적 불신을 내려놓아야한다. 치유가 아물어도, 다시 풍선을 물 속에 잡아 넣어두려고 애써도, 결국은 힘이 빠져 풍선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래서 잠재의식 속에 형성된 잘못된 생각과 굳어진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 

소원이는 ‘왜 태어났을까’에서  주위의 위로,관심, 애정을 확인함과 아울러, 소중한 동생의 존재는  ‘니 참 잘 태어났다’라는  밝은 긍정의 사고로 바뀐다. 이제 상처는 물 위로 다시 떠오르는 풍선이 아니고,  서서히 물 속에서 용해되어진다.

# 성장 
이제 영화 밖의 이야기를 해보자. 소원이의  앞날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소원이는  지금 미움과 자기부정의 멍에를 털어버리고 억눌린 영혼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느낀다. 그리고 이 자유는 태도의 변화, 목표설정을 가능하게한다. 삶의 동기가 변하는 것이다. 

영혼은 맑아지고 속사람은 더욱 강건해지고 경건해진다. ‘내게는 뭔가 내어놓을 것이 있어’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라는 자신감과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이 목표설정과 동기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해답은 지속적인 관계의 회복이다. 쓴 뿌리를 뽑아낸 이웃의 사랑과 절대자의 신뢰를 자신 속에 항상 가득 채워야한다. 나의 불안과 상처를 이웃과 절대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내가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의 가족,이웃,그리고 절대자는 나로 인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여기서 내적치유가 정점에 다다르게된다.

싸우고 화내고 미워하면 아드레날린이 나오나, 서로 사랑하면 면역성를 높여주는 엔돌핀이 분비된다. 부정과 두려움이 쌓여 분출되는 이 아드레날린은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서로 믿고 사랑하고 함께 어깨동무하고 나아갈 때, 가족과 이웃과 절대자와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소중한 일상의 유지와 미래의 소원을 품게된다.  창조적인 인생이 펼쳐진다. 

코코몽 인형을 쓰고 있는 아빠에게 소원이가 아빠임을 눈치채고 말한다. “아빠야가? 덥제?” 아빠는 이제 나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는  소원이의 아빠인 것이다. “아빠!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