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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정준칙 ② ] 한국형 재정 준칙이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재정준칙은 동시에 신축적인 재정을 요구한다.」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에 있어서의  고민은 아마도 형용모순인 이 표현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쪽은 준칙이 유약하다고 비판하고,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옹호하는 쪽은 준칙이 경직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재정이 악화되기 전에 법제화된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또 한편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기회복을 위해 준칙은 유연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처럼 상충되는 두 가지 재정 목표, 즉 재정건전성의 강화와 재정의 신축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달성할 것인가가 한국형재정준칙 도입의 핵심요소가 됩니다. 

우선 재정의 지속가능성(fiscal sustainability)을 확보하기 위해 헌법이나 법률에 재정준칙이 명시되어야 합니다. 이번 발표된 재정준칙은 국가재정법에 준칙의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국가적 경기침체기에 재정의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준칙 예외조항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한국형 준칙에는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 위기등의 상황에서 준칙 적용이 면제되고, 경기 둔화 상황에서 통합 재정수지 적자가 4%까지 허용되는 규정이 담겨 있습니다. 

발표된 재정준칙에는 재정 목표들의 충돌을 조화롭게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한국형재정준칙 도입의 과제는 어떠한 재정준칙들이 재정지속성과 경기회복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준칙들인가라는 점입니다.   


◆유형별 준칙의 장단점

이번 발표된 재정준칙은 채무준칙(Debt Rule, DR)과 균형재정수지준칙(Budget Balance Rule, BBR)입니다. 

2025년부터 국가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60% 그리고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을 수치적 한도(numerical ceiling)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DR과 BBR에는 커뮤니케이션과 감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기 순응적이어서 경기안정화 기능이 미비 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예컨대 정치인들이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는 압력에 처하면, 경상지출보다 삭감이 쉬운 투자지출(자본지출)을 줄여 투자지출에서 경기순응성을 높이는 정책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겁니다. (김정미)

[DR이 재정정책(으로 인한 재정지출)의 변동성을 유의하게 줄이므로 재정건전성 확보에는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김정미)] 

반면 지출준칙(Expenditure Rule, ER)에는 단기 년도 평균지출이 아닌 다년도 평균 지출액을 산출하면 경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세입 제약이 없어서  이것만으로는 재정건전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ER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Pay-go 준칙이 함께 채택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Pay-go 준칙과 예산법률주의 
 
신규 의무지출에 대한 재원마련 의무화를 내용으로 하는 Pay-go준칙[pay-as-you-go, 지출이 증가할 때(go)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pay)]이 지출준칙과 함께 입법화 된다면, 수입측면도 함께 고려되어 재정수지개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준칙 발표에서 지출준칙과 Pay-go 준칙이 예상과 달리 배제되었습니다. 

복지지출 억제와 국회의 입법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Pay-go 준칙의 단점이 준칙으로서의 채택을 막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Pay-go 준칙이 작동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점이 준칙 적용을 저해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Pay-go 준칙 적용의 기반은 예산법률주의입니다. 

Pay-go 준칙 적용의 원칙적 경로는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예산 총량과 상임위원회별 예산 배분이 이루어진 후, 배분된 예산에 근거하여 정책 우선순위에 따른 예산법안이 발의됩니다. (염명배외) 

결국 이러한 ‘톱다운 방식’을 취하는 예산법률주의와 조세법률주의가 상호작용하여 자원배분합의와 자원조달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산법률주의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 행정부는 예산을 편성하여 ‘대통령 예산안(President's Budget Proposal)’이라는 형태로 의회에 제출합니다. 의회는 이를 바탕으로 예산결의안과 세출 예산법을 의결하게 됩니다. 

의회 예산위원회(Budget Committees)에서 심의·의결하는 예산결의안은 의회 예산심의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산총액· 상임위별 예산배분· 예산심의에 관한 지침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임위별 한도에 기초하여 각 상임위는 전권을 가지고 개별사업을 심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의회는 법률의 형식으로 세출 예산법(Appropriation Act,지출승인법)을 의결하고,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예산을 집행하게 됩니다.  

예산법률주의를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분리 심사형식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국가재정 총량의 결정, 상임위별 예산의 배분, 그리고 재량지출의 예산심의를 담당하고, 일반 상임위원회는 배분된 예산의 한도 내에서 각 소관의 의무지출 예산을 심사하도록 합니다. (김월래)

상임위는 Pay-go 준칙이 적용되는 예산들 중에서 시급한 예산 법률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의무지출 예산과 재량지출 예산을 의결하여 본회의에 송부하고, 본회의에서 단일안건으로 의결하는 것이 아니라 항별 또는 소관별 예산을 각각 의결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산법률주의가 도입되기 위해선, 통치구조· 재정분야에 있어서의 의회와 행정부의 권한 배분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개헌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반면, 예산법률주의를 헌법에 규정하는 경우, 국회의 예산법률안 심의권이 제약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따라서 개헌보다 국회의 예산관련 심의권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나라의 국회가 미국의 사례를 준용하여 예산심의권을 확대하는 것이 재정건전성과 재정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연금의 재정준칙

한국형 지출준칙의 도입에 있어 시급한 과제는 스웨덴의 재정준칙 사례처럼 연금 재정준칙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스웨덴은 2000년부터 균형재정수지 준칙인 BBR(중앙정부는 GDP대비 2% 흑자 목표)과 중앙정부와 연금에 대해 지출 상한을 두는  ER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7월에 발표한 ‘4대 공적연금 장기재정전망(2020~2090년)’에 의하면, 연금재정수지가 2020년 0.6조원 흑자에서 2090년까지 226.7조원으로 적자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정수지 적자의 GDP대비 비율도 점점 증가하여 2078년에 6.1%로 최고수준을 보인 뒤, 2090년 5.5%로 감소할 전망입니다. 

이는 4대 공적연금의 전체수입이 연평균 0.9%증가(불변가격 기준으로 2020년 55.7조원에서 2090년 104.4조원으로 증가)하고 전체지출은 연평균2.6%증가(2020년 55.1조원에서 2090년 330.9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각 연금별 전망은 더욱 암울합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경우, 적립금이 각각 2055년과 2048년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공무원연금은 2020년 2.1조원에서 2090년 32.1조원으로, 군인연금은 2020년 1.7조원에서 2090년 6.7조원으로 적자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공적연금의 특징인 수혜를 받는 측과 비용을 부담하는 측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편익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그 비용부담은 다수에게 분산되는 현재의 불공평한 공적연금 제도는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금의 재정준칙은 어떠한 준칙보다 선행되어 채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념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재정지속성과 경기회복을 달성하기 위해 적합한 한국형 재정 준칙들로, 예산법률주의에 기반한 지출준칙과 Pay-go 준칙 도입이 고려됩니다.  또한 연금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연금 준칙의 도입도 깊이 고민해야할 시점입니다.  

이번 준칙을 두고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과 유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영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정부의 이번 재정준칙의 도입은 변화무쌍한 우리나라의  대내외 환경에서, 지속가능성과 신축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최적의 재정준칙 채택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정책이든 숙성되는 시간과 이를 가공하는 땀이 함께 어우러져야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국민의 후생을 높이는 경제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에, 한국형 재정준칙을 본격적으로 토론하여 최적의 한국형 준칙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준칙 선택과 관련하여 경계해야 할 점은 정책이 진영의 이념에 함몰되는 것입니다. 

이념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크기에 맞게 정책을 재단하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국민과 국가의 안녕에 가장 합당한 정책이 도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백웅기(2016), “우리나라 재정준칙의 도입방안”
염명배, 이성규 (2015), “페이고제도에 의한 실사구시적 논의: 한국형 페이고 제도의 모색”
김정미(2018), “재정준칙이 재량적 재정지출의 변동성에 미치는 효과”
김월래(2018), 「예산법률주의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 중앙대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