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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 자아고갈이론 ② : 도메인 일반성과 의지력의 절약 ] 왜 스티브 잡스는 매일 같은 옷을 입었나?

-통제의 자동화와 율리시스의 계약

◆ '도메인 일반성'

자아고갈 이론의 핵심은 의지력이 '도메인 일반성'(domain-general)을 갖는 단일 자원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쿠키 실험후 인지통제와 스트룹 과제 후 충동구매 실험에서 명확히 증명됩니다. 따라서 자아고갈을 막기 위해선 의지력을 절약해야 합니다.

도메인 일반성은, 하나의 인지적 자원, 능력, 또는 프로세스가 특정한 영역(domain)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다양한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특정 문제(예: 언어, 얼굴 인식)에만 고도로 특화된 '도메인 특수성(domain-specific)'과 대조됩니다.

앞의 자아고갈(Ego Depletion) 실험은 자기 통제력이 '도메인 일반적' 자원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첫 번째 실험인 '무-쿠키 실험'에서, 유혹을 참을 때 쓰는 의지력과 인지 과제(어려운 문제 풀기)를 수행할 때 쓰는 의지력은 동일한 '하나의 자원'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트룹 과제 후 충동구매 실험'에서, 인지 과제 수행의 의지력과 충동 억제 의지력이 같은 자원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두 실험 모두 한 영역에서 의지력이 소모되면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통제력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이는 '감정을 참는 힘', '문제를 푸는 힘', '소비를 참는 힘'이 각기 다른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통된 '의지력 배터리'를 나눠 쓴다는 '도메인 일반성'을 의미합니다.

[✽ 참고: '도메인 일반성'은 인공지능 분야의 목표와도 직결됩니다. 체스, 번역, 이미지 분류 등 한 가지 작업만 잘하는 좁은 AI (Narrow AI)는 '도메인 특수적 AI'(domain-specific AI)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AI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에 반해 범용 AI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는 인간처럼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학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메인 일반적' AI를 지향합니다.]


◆ 의지력을 절약(willpower conservation)하는 방법

이처럼 의지력, 즉 자기 통제력은 '도메인 일반적' 자원입니다. 한 영역에서 소모되면 다른 모든 영역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따라, 하루 동안 업무 집중, 감정 억제, 의사결정 등으로 ‘의지력 배터리’를 소진한 사람은 퇴근 후 충동적 식사, 감정 폭발, 결정 회피와 같은 다른 영역에서 자기통제 실패를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 고갈을 사전에 막기 위한 핵심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에는 통제의 자동화와 율리시스계약이 꼽힙니다. 

① 통제의 자동화 



이는 의지력을 아예 쓸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결정은 전전두엽(PFC)에서 처리되며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반면 습관은 기저핵(basal ganglia)에서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은 별도의 처리 장치를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는 매일 같은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아침마다 “오늘 뭐 입지?”라는 사소한 결정에 중앙 CPU(의지력)를 소모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옷 고르기라는 결정이 자동화되면서 그 에너지는 애플의 혁신과 집중력에 온전히 투입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식사 메뉴를 단 두 가지로 제한했습니다. “점심은 샐러드 아니면 그릴 치킨”이라는 기본값을 정해 두어,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의지력을 음식 선택에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기 고갈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결정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메뉴를 먹고, 같은 루틴을 따르는 것이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피하고 의지력을 절약하는 기술입니다. 

이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하루에 쓸 수 있는 '결정 포인트' 총량을 아껴서 중요한 곳에 씁니다. 예를 들어, 다음 날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전날 밤'에 미리 정해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뭐부터 할까?" 고민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의사결정을 단순화합니다.  옷, 식단, 쇼핑 목록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고정된 루틴을 따릅니다. 즉, 같은 검은색 라운드 티와 청바지 각각 5장을 매일 번갈아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하루 의지력 총량은 한결 여유를 갖게 됩니다.


② 율리시스의 계약

의지력은 '저항'할 때 가장 많이 소모됩니다. 따라서 저항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율리시스의 계약(Ulysses' Pact)'과 같습니다.

'율리시스의 계약(Ulysses' Pact)'은 '현재의 이성적인 나와 미래의 충동적인 나' 사이의 싸움을 전제로 합니다. 이 전제하에, 미래의 유혹이나 비합리적인 판단에 굴복할 것을 아는 '현재의 이성적인 나'가, '미래의 충동적인 나'의 선택권을 미리 제한하거나 구속하는 장치를 만드는 전략이 율리시스의 계약입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의 계획을 손쉽게 배신합니다. '율리시스의 계약'은 이 배신을 원천 차단하는 강제적인 사전 약속(Pre-commitment)입니다.

이 사전계약의 전략이 의지력 절약에 탁월한 이유는, '저항'에 사용되는 의지력 배터리 자체를 아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계약이 없을 경우, 의지력고갈시에 충동적인 의사결정을내리게 됩니다. 반면 계약이 있을 경우, 애초에 충동적인 환경을 조성하지 않아, 의지력이 보존됩니다. 

예컨대 집에 건강에 해로운 간식을 아예 사두지 않습니다. 미래의 내가 유혹에 질 것을 알기에, 유혹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도박 중독자가 카지노 출입 금지 리스트에 스스로 이름을 올립니다. 미래의 내가 다시 도박에 빠질 것을 알기에, 이러한 현재의 등록은 미래의  출입을 '물리적'으로 막습니다.

[✽참고: 율리시스 계약은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율리시스(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율리시스는 선원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끄는 '사이렌(Sirens)'의 치명적인 노랫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이성적인 나'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 하지만, 노래를 듣는 '미래의 나'는 이성을 잃고 바다에 뛰어들 것임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부하들과 계약 (Pact)을 맺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으라고 명령하고, 자신이 아무리 애원하고 풀어달라고 명령해도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율리시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었지만, 돛대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