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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 사회자본과 거래비용 ] 소진된 신뢰를 다시 축적하여 자본화하는 길

-사회자본 잠식과 정책적 림보

‘내란 프레임’은 감정의 세 변수—람다(λ), 감마(γ), 알파(α)—가 결합해 작동하는 정치심리의 수학적 모델입니다. (기사: '프레임 무감각' 참조)

이 구조는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공포를 설계하고 유지하다가 스스로 통치효율성을 감퇴시킵니다. 즉 내란 프레임은 감정 자원을 과도하게 소모하여 피로와 반작용을 낳고 이는 통치 효율성을 근본적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런데 통치효율성을 감소시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적 자본의 주요 요소인 신뢰가 소진되기 때문입니다. 


◆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과 그 위기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란 화폐나 토지 같은 유형적 자원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 내재된 무형의 자산을 의미합니다. 물적 자본이 자산으로 운용되어 미래 경제적 효익을 창출하는 기반이 되듯, 사회 자본 역시 미래 효익 창출의 기초가 됩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은 사회 자본을 구성하는 3대 핵심 요소로 ‘신뢰(Trust)’, ‘호혜성의 규범(Norms of Reciprocity)’,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Social Networks)’를 제시했습니다.

신뢰(Trust)는 사회 구성원 상호간에 약속을 지키고 서로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규범과 호혜성(Norms of Reciprocity)은 ‘내가 도우면 언젠가 나도 도움받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관행입니다. 이 공유된 기대는 협력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네트워크(Networks)는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동창회, 시민단체, 정당 등)입니다. 네트워크가 강할수록 정보 흐름과 협력이 강화됩니다.


◆신뢰자본과 거래비용

신뢰가 쌓이면 정치 주도 세력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수익’을 얻습니다.  

•정책 추진력 증가, 
•지지율 상승, 
•메시지 설득력 증가, 
•위기 시 기회비용 감소, 
•대중의 관용·유예 기간 확대, 
•실수나 논란에 대한 회복 탄력성 증가

특히 신뢰자본은 경제적 자본처럼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즉 신뢰가  거래비용을 줄여 ROI[(수익-비용)/비용(투자)]를 높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정치세력이 10이라는 비용이 드는 'A 정책'을 추진해서 '지지율 5% 상승'(수익을 25으로 가정)이라는 수익(Return)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력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높을 경우 정책  방어에 쓸 에너지가 거의 소모되지 않습니다. 발표하고 정책홍보하고 정책추진만 하면 됩니다. 따라서 거래비용은 0입니다. 

하지만 신뢰가 고갈된 상황이 되면, 거래비용이 높아집니다.  대중이 정책을 의심하므로, 정치세력은 이를 설득하고 반대 시위를 막고 해명하는 데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예컨대 앞선 사례에서 거래비용이 0인 경우, ROI = [(25 – 10)/10] = 1.5, 즉 150%입니다. 반면 신뢰가 낮아 거래비용이 10 추가로 든 경우, ROI = [(25 – 20)/20] = 0.25, 즉 25%입니다. 

따라서, 같은 정책에서 신뢰 수준(사회자본, 거래비용)에 따라 실현 가능한 투자수익률(ROI)이 6배나 차이나게 됩니다. 신뢰와 사회자본의 축적이 실제 정치적 자원배분상의 효율성과 수익성에 구조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 수치로 설명되는 겁니다. 


◆ 거래비용의 급증의 여파 : 정책적 림보

이처럼 신뢰의 고갈은 곧 정책 추진의 ‘거래비용’ 급증으로 이어집니다. 정책의 방향이 옳더라도 정부 신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면 설득, 협상, 집행의 모든 단계마다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즉, 정책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설명 비용은 배로 늘어나고, 사소한 조정조차 정치적 꼼수로 오해받기 일쑤입니다. 정부가 아무리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백번 강조해도, 대중은 그 콩이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심지어 유전자 조작 콩(GMO)은 아닌지부터 따져 묻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당연한 사실(콩으로 메주 쑤기)을 믿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추가 서류(원산지 증명)'를 떼어와야 하는 비효율을 초래하게 됩니다. 과거라면 사회적 합의로 넘어갈 수 있었던 사안들조차, 이제는 끝없는 검증 요구와 음모론적 해석이라는 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결국 필수적인 개혁 과제들은 불신의 늪에 빠져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정책적 림보(Policy Limbo)’ 상태에 갇히게 됩니다. [참고: 여기서 림보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불확실한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정책이 입안되었으나 추진력을 잃고 결정되지도, 그렇다고 폐기되지도 못한 채 붕 떠 있는 '식물 상태'를 의미합니다.]

더 큰 문제는 파급력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표류는 곧바로 리더십의 위기로 전이되어, 정권 자체가 식물 상태에 빠지는 ‘정권의 림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권의 안정성 자체를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 신뢰 자본의 축적

그렇다면, 소진된 신뢰를 다시 축적하여 자본화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경제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신뢰 자본 역시 본질적으로 ‘축적(Accumulation)’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탕진은 순식간이지만, 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뢰는 대중이 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확신을 가질 때 비로소 자본으로 쌓이기 시작합니다. 

①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 (Predictability)가 쌓일 때 신뢰자본은 축적

신뢰자본은 "정치세력이 말한 대로 일관성 있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축적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사법개혁이란 명분하에 사법 시스템 파괴를 주장하던 세력이 갑자기 헌법 존중 TF을 외친다면, 대중은 혼란과 불신을 느낍니다. 그 순간 “무슨 염치로 헌법정신을 입에 올리느냐”는 냉소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헌법존중 TF가 오히려  '역화 효과' (Backfire Effect)를 초래합니다. 역화 효과는 기존의 잘못된 신념을 바로잡기 위해 제시된 명확한 사실적 증거가 오히려 수용자의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관료들은 "중립적으로 국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들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헌법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내란가담 공무원들을 색출하는 TF를 가동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정체성 보호적 동기를 강하게 발동시킵니다. 그리고 심리적 불편함(인지 부조화)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신념이 더 옳다는 새로운 논리나 확신을 찾아내어 신념을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정부여당의 공무원집단에 대한  '혁신'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어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초래하게 됩니다. 즉 개혁의 동기가 공무원들의 집단 정체성·자존감과 충돌하여, 결과적으로 의도된 혁신 대신 적극적 변화 거부와 수동적 태도가 조직에 확산되는 겁니다. 

이러한 혁신은 오히려 마이너스 신뢰를 생산하여, 기존의 신뢰자본을 오히려 갉아먹게 됩니다. 즉 명분과 현실이 괴리된 행태는 신뢰 회복이 아니라 신뢰 파산의 가속기로 작용할 위험이 큽니다.


②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신뢰 (Competence)가 있을 때, 신뢰자본이 축적

대중이 "저들은 맡겨진 일을 실제로 해낼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는 단순히 정책의 의도가 선하다는 수준을 넘어, 닥쳐온 위기나 사회적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함(Efficacy)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균형소득을  끌어올리는 길은 편법이 아닌 정공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전 지출이 승수효과를 통해 유효수요를 늘릴 때, 동시에 생산도 늘어 균형소득이 증가한다는 논리(소위 호텔 경제학)는 단기에 타당성을 가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재원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이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공급 능력의 확충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수요 확대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만 유발할 뿐 실질적인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유능함이란, 당장의 고통만을 덜어주는 달콤한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워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치유'를 해내는 능력입니다.


③ 공익적 의도에 대한 신뢰 (Benevolence/Integrity)가 있을 때 신뢰자본이 축적  
 
이는 윤리적 자본을 말하는 것으로, "저들은 사익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일할 것"이라는 도덕적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다시말해, 공익적 의도에 대한 신뢰는 권력자들의 이익이나 특정 집단의 이권이 아니라, 국민 전체 혹은 지지해준 대중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도덕적 진정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④ 상호 호혜성에 대한 신뢰 (Reciprocity)가 있을 때, 신뢰자본이 축적

이는 내가 지지·기여하면 언젠가는 정당한 보상이나 보호를 받으리라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 정치 시스템 안에서 언젠가는 공정한 보상이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장기적 교환 관계’의 안정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즉 누군가가 정치적 지지나 자원을 ‘선제적으로’ 제공했을 때, 당장은 직접적인 보상 없이도 “언젠가 이 시스템 또는 집단이 나에게 공정하게 보답할 것이다”라는 장기적 기대가 성립됩니다.

예를 들어, 대중이 선거에서 정책과 성과를 믿고 어느 정당이나 리더에게 표를 던지면, 그 정치세력은 향후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거나, 위기 상황에서 후원자들을 우선 보호하는 방식으로 신뢰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정치영역에서의 신뢰란, 대중이 "저 정치 세력에게 내 운명의 일부(권력)를 위임해도, 나를 배신하거나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내 삶을 지켜줄 것"이라는 안전감(Safety)과 기대(Expectation)의 총체를 말합니다. 이같은 신뢰들이 쌓일 때, 신뢰자본은 지속적으로 축적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위의 네가지 요소들이 무너지면, 그동안 쌓인 자본은 일시에 자본잠식에 빠지게 됩니다. 


신리소진과 신뢰축적

신뢰 자본이 많을수록 그 정치 세력의 투자수익율은 높아집니다. 

그러나 이 신뢰의 사회자본을 단기적 정치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소진하는 전략—예컨대 강한 공포나 위기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대중의 동조와 관심을 급격히 유도하는 행위—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의 심리적 피로와 냉소, 불신을 불러오며 사회자본의 축적과 영향력에 점진적인 마이너스 효과를 미칩니다.

결국 이러한 전략이 반복되고 진부화되면, 대중은 정치 세력의 메시지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게 되고, 사회자본의 근간인 신뢰 잔고가 현저히 저하되는 신뢰 소진(trust erosion) 또는 사회적 신뢰 붕괴(breakdown of social trust)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때, 정치세력은 고갈된 신뢰자본에 대한  축적을 필요로 합니다.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 문제해결능역에 대한 신뢰, 공익적 의도에 대한 신뢰,상호 호혜성에 대한 신뢰를 쌍아 나갈 때, 신뢰의 자본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뢰축적 행위들의 누적이 사회적 ‘거래 비용’을 줄여, 향후 정책의 동력을 제공하게 됩니다. 


■ (참고)공포프레임의 붕괴를 설명하는 식

람다와 감마가 만든 공포가 알파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은 아래  하나의 공식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V(공포) = π(p) × [-λ × |x|^α]

이 식은 특정 사건(예: ‘내란’)이 대중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현실적 공포로 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람다(λ)는 손실의 고통을 2.25배 증폭시키고, 감마(γ)는 그 사건의 발생 확률을 240배 부풀립니다.

이 둘이 결합하면, 객관적으로는 미미한 가능성이 주관적으로는 ‘임박한 재앙’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창조된 공포는 α의 법칙에 따라 서서히 효용을 잃습니다. 처음에는 강렬했지만, 반복되면서 감정의 민감도가 떨어지고, 대중은 피로와 냉소를 느낍니다. 이때 공포 프레임은 스스로 붕괴합니다.

람다와 감마가 만든 공포는 알파에 의해 해체되는 구조적 필연성을 지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