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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맨체스터 바이 더 씨>리뷰: 수용할 수 없는 자를 수용하며

짐을 어깨에 맨다한들, 책임을 진다한들, 죄책감을 씻을 수 있을까?

 

그만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올라오라 한다. 그래서 작은 창에서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지하방에서 커다란 창들이 달려 있는 방으로 옮겨 본다.

 

그리고 짐을 지고 고통과 죄책감을 씻고자 한다. 힘겨운 경험에서 무너져 내린 슬픔을 잊고, 죄책감의 늪에서 빠져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수고는 헛될 뿐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보고 싶을수록, 그리워질수록,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슬픔과 사랑은 늘 동전의 양면 아닌가.


 

 

닫힌 결말과 열린 결말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보스턴 건물 잡역부인 리는 상실감과 죄책감의 벽에 포위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 심부전으로 시달려 온 형 조는 리를 고향 맨체스터의 16세 아들 패트릭을 부양하는 후견인으로 지목하고 세상을 떠난다.

 

어쩔 수 없이 리는 조카를 부양하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하지만 패트릭과 리는 이리저리 충돌하게 된다.

 

감독은 시간을 가지고 논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되면서 닫힌 결말과 열린 결말을 동시에 구성한다.

 

리가 패트릭을 돌보는 모습을 전개시키며 결말을 닫는다. 동시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타임 슬립의 형식으로, 상징으로 씨를 뿌리고 그 의미를 플래시백을 통해 거두면서, 리의 아픔과 갈등을 관찰하고 결말을 열어놓는다.

 

닫힌 결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패트릭의 관객을 향한 시선이다. 그가 관객을 향해 시선을 던지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장면이다. 이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서 앙트완이 카메라의 시선과 분리되어 관객을 응시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패트릭이 관객에게 나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열린 결말은 엔딩 신으로 마무리된다. 카메라는 리와 패트릭이 보트에서 함께 낚시를 하는 모습을 비추는데, 전지적 시점인 이 신은 리와 패트릭의 앞날을 관객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한 초점이다.

 

 

 

수용할 수 없는 자를 수용하며

 

죄책감의 해소는 죄책감의 회피와 망각도, 혹은 죄에 대한 보상도 아니다. 죄책감의 해독제는 용서이다. 타인으로부터의 용서 못지않게,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기보다 사랑과 친절로 자신을 스스로 감싸는 자기용서가 죄책감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초자아가 자아를 거칠게 꾸짖고 있는 상황에서, 실수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고 또한 책임을 짊어진다고, 고통과 슬픔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죄책감의 치유는 죄에 대한 보상보다 수용을 요구한다. 죄책감에서의 구원은 상호간의 수용인 것이다. 타인의 수용과 아울러, 죄책감이 수용되었음을 수용하는 것이 죄책감의 치유이다.

 

결국 수용할 수 없는 자를 수용함으로써 아픔이 낫는다는 역설이 치유의 힘이다.

 

 

*<Manchester by the Sea> 영화정보

감독: 케네스 로너건,

출연: - 케이시 애플렉, <굿 윌 헌팅>의 벤 애플렉의 동생

        조 - 카일 챈들러

        패트릭- 루카스 헤지스

137, 드라마, 215일 개봉

수상 :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등 5개 부문 노미네이트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

 

*이 영화는 심신이 허약할 때, 더 운명적으로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금질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치유를 느낄 수도 있다. 영화를 제대로 즐기고 배우고 싶다면 두 번 이상 볼 필요는 있을 듯. 즉 영화 선택은 영화를 아예 안 보던가, 두 번 이상 보던 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