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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들러의 용기] <영화: 라라랜드 리뷰>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문제

때로 넘어져도 일어나면 된다. 아침은 다시 오니까. 태양은 새로 뜨니까

 

Question.

 

안녕하세요? 저는 방송국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입니다. 스타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오디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오디션을 칠 때마다 가슴은 무너집니다. 하겠다는 의지만을 가지고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미래가 그저 두렵기만 합니다.

 

전 아마도 배우의 재능이 없어 오디션에 번번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절망하여 배우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저의 열등함으로 나날이 용기를 잃고 있습니다.



 

 

Answer.

 

안녕하세요. 알프레드 아들러입니다. 전 프로이트 박사와도 친분이 있는데요, 빈의 수요모임에서 그와 함께 10년 가까이 정신분석을 연구하였지요.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나 소질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용기가 없어서이지요. 왜 그런지 제 얘기 한번 들어보시죠.

 

 

원인론과 목적론

 

한 카페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커피를 쏟자 당신은 큰소리를 칩니다. 당신은 왜 큰소리를 쳤나요?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 혹은 세탁비를 받기 위해 큰소리를 친 건 아닌지요?

 

마음이 불안하면 우리는 집밖을 나가기 싫어할 수 있습니다. 불안 때문에 외출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혹시 집밖을 나가지 않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을 마음에 심어두는 것은 아닌지요?

 

좌절과 실패로 인해 자신을 파괴하는 일탈이 나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삶의 괘도에서 이탈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좌절과 절망의 감정에 젖어드는 경우는 없는가요?

 

위의 사례들은 원인론과 목적론에 대한 비교였습니다. 화가 나서, 불안 때문에, 좌절해서라는 원인이 큰 소리를 치게 하고, 외출을 막고,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역으로 해석하자면, 사과를 받기위해, 일탈에 대한 욕구 해소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절망의 감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인론에 익숙해 있습니다. 살기 힘든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나빠서, 이를 테면 부모가 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과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라 믿습니다. 과거 경험에서 받은 충격인 트라우마는 미래의 성공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모두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열등감은 진보의 원동력

 

하지만 목적론에 의하면 불행한 경험은 실패의 원인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해도 이것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미래가 바뀔 수 있습니다. 같은 불행한 경험이 항상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로는 성패의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론적 사고에 의하면 같은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도, 이 불행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미래에 살 수 있게 됩니다. 능력과 소질이 남보다 마이너스라 해도,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눈물 나는 싸움을 치른다면 마이너스는 플러스로, 패배는 승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우월하지 못한 열등성이 미래의 열등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빈에서 진료한 곡예사들이 목적론적 사고의 예입니다.

 

전 빈 대학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빈 시내에서 내과의사로 일했습니다. 병원근처에는 유원지가 하나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곡예사들이 저에게 진료를 받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일반사람들보다 뛰어난 체력과 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체력훈련으로 현재의 체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환경이 나쁜 미래를 낳는다는 원인론으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관열등성이란 이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생활에 곤란을 가져오는 핸디캡이 있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악전고투하여 그들 자신들을 더욱 강하게 단련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일반사람들이 온전한 상태에 이르는 지점을 넘어 훨씬 우월한 지점에 안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등감은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됩니다. 그리고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이 목표하는 이상과 현실 속 자신과의 비교를 말합니다. 이 열등감이 진보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열등 콤플렉스

 

하지만 지나친 열등감은 열등콤플렉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열등콤플렉스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원인론적 사고에 집착합니다. A이기 때문(A가 아니기 때문)B를 할 수 없다고 단정하면서, 현실에 당면한 과제인 B를 할 수 없는 것은 A 때문이라며 핑계와 구실들을 늘어놓습니다.

 

제가 예전에 안면홍조증 여학생에게 이 증상이 나아지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그녀는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A라서 B를 할 수 없다는 원인론에 근거해서, 얼굴이 수시로 붉어져서 남자친구에게 고백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고백할 수 없는 원인은 안면 홍조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다 차일 두려움이었습니다. 고백하여 관계를 맺는다는 현실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핑계를 댄 겁니다.


이처럼 열등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현실의 과제를 회피하려 합니다. 이러한 핑계를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과제와 부딪치고 싸우기 싫어, 그럴듯한 핑계를 내세우며 열등콤플렉스를 끄집어냅니다. 능력이 없어서, 소질이 없어서라며 구실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달음질 하는 숨가쁜 도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용기

 

그러므로 우리가 목표를 이룰 수 없도록 가로 막는 범인은 원인이 아닙니다. 용기의 결핍입니다. 현실의 과제와 맞서겠다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열등콤플렉스라는 인생의 거짓말에 굴복하는 겁니다.

 

우리의 문제는 높은 인생의 장벽도, 핑계거리인 열등성도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목표에 접근하기 위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목표를 향해 요구되는 태도는 과제에 도전하는 용기입니다.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이 장애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남 앞에 나서기 싫어서, 말을 잘 못한다는 핑계를 내세우는 겁니다. 변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에도 변하지 말자고 선택한 겁니다. 그러므로 대중 앞에 서겠다는 과제와 목표를 향해 용기 있게 맞선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인생의 과제 세 가지, 공동체 생활· · 사랑- 공동체 감각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목표에 접근하기 위한 태도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같은 경험을 해도,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고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당면한 목표 뿐만 아니라, 인생의 과제 혹은 목표는 무엇일까요? 저는 인생의 과제는 세 가지, 즉 공동체 생활· ·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구성원의 친구가 되고, 유익한 일에 종사하면서, 행복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됩니다.

 

이 세 가지의 관계는 공통적으로 공동체 감각을 요구합니다. 공동체 감각이란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est)을 말합니다. 상대를 기쁘게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감사하면서, 상대에 대한 이익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감각에 반하는 시도는 私的 논리입니다. 풍요로운 공동체 생활, ,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낼 수 있는 열쇠는 개인의 욕심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관심을 베푸는 것입니다.

 

같은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한 태도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성패가 결정된다고 강조했는데요, 공동체 감각이 결여된 사람은 사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공동체는 공유지의 비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적인 욕구를 채운다면, 공유지는 결국 황폐화되고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몰두해야 할 인생의 목표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입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협력이 공유지를 살리고 공동체를 발전시킵니다.

 

공동체에 대한 공헌은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가 되려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에 대한 공헌은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이 녹아 있는 피아노의 연주에 살아 움직입니다.

 

 

<참고자료>

나카노 아키라, 손영석옮김 (2015), 아들러가 가르쳐주는 용기의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전경아(2016),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알프레드 아들러, 오구라 히로시 해설(2014),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알프레드 아들러 원저, 변지영 편저(2014), 항상 나를 가로막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