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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새정연, 당파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에 관심 두어야

20세기 초에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독일의 나치즘과 수백만의 농민을 숙청한 소련의 스탈린주의등 전체주의가 유럽의 이념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20세기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영역인 공적영역에 사적인 요소가 침투하여 공적인 관심을 끌어, 결국 공적영역에서의 정치 행위가 위축된 탓이라고 분석한다. 
 

◆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아렌트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정치행위를 설명한다. 

우선 사적영역은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생물학적 필연성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활동이 수행되는 공간을 말한다. 이는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고 아이를 낳아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을 의미한다.  

반면 공적영역은 개인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공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말한다. 

여기서 행위action는 인간의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인 노동labor, 물건들을 만드는 작업work등이라는 인간의 생존의 필연성과는 무관하다. 

행위는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고유한 인격적 개성(who-ness)을 발휘하는 활동으로, 이는 정치적 행위와 동의어이다. 여기서의 공적영역의 정치적 행위는 ‘나만의 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 모두에 대한 관심사를 말한다.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게 된다.  

이처럼 공적영역은 이러한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곳을 말한다. 


◆ 공적인 영역을 파괴하는 ‘사회적인 것’

아렌트는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관심이 공적영역으로 스며들어 공적 관심을 획득하여 공적영역의 본연의 행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사적영역의 요소들이 공적영역으로 침투하여 나타난 현상을 ‘사회적인 것’이라 정의 내린다. 

공적인 영역이 사적인 요소의 주입에 의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사적영역의 매력 때문이다. 사적인 것은 인간의 존재와 생명유지를 위한 소유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 필연성이라는 사적인 매력이 공적영역에 침투하여 공적영역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공적 영역은 그 매력에 의해 공적영역에서의 본연의 정치 행위가 위축된다. 그 결과 사적 매력이 공적 영역의  정치적 문제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빵이 자유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개인의 이익과 안전이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압도하게 된다. 사익이 공익보다 앞서게 되며, 부분의 이익이 정체이익을 누르게 된다. 당파이익이 국가이익보다 우선시 된다. 

이렇게 된 것은 자본의 급격한 팽창과 무관하지 않다. 원래 과거에 사적 영역에서의 재산의 소유는 공적영역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으로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 소유가 증식을 하여 부와 동일시되면서, 부의 창출이 주된 관심이 된다. 다시 이 부가 엄청난 축적이 되자 자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사적인 매력들이 공적 영역에 들어와 공적 관심을 누르고,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사회적인 것’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공적영역이 사적인 것을 위한 공간으로 대여하게 되어,  인간의 정치적 활동은 중단 파괴된다. 

이제 사람의 활동은 정치적 영역에서조차  생존의 필연성에 매몰되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망각과 냉소를 보내고,  정치의  비참여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 새정연의 ‘사회적인 것’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을 둘러싸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최고위 폐지등의 개별 혁신안은 계파갈등 해소라는 혁신위의 목표에서 이탈하여 친노와 비노 간의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비주류측에서는 친노 헤게모니 해소를 위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주류측에서는 친노 청산이 혁신의 목표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공천 혁신을 통해 계파주의 청산을 이루겠다는 혁신위의 목표가 결국 空염불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혁신위가 제출한 혁신안에 대해 이렇게 당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새정연의 혁신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선 새정연이 품고 있는 내재적인 상흔은 친노 계파와 비노 계파 간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비롯되었다기보다, 국민들의 새정연에 대한 정책역량에 대한 불신과 당의 불균질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정연은 정책역량을 높이고 국민의 새정연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계파간의 공천권을 둘러싼 다툼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새정연이 국민으로부터 배척을 받는 이유는 새정연이 국민의 불안, 즉 일자리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안전 불안, 건강 불안등을 씻어 주겠다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고민 없이, 정부여당의 정책을 단지 비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새정연이 기이하게도 지난 공무원 연금개혁 과정에서  이익집단 공무원의 불안을 완화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에,  서민들은 새정연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친노와 비노 간의 노선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정연이 우선적으로 일치를 이루어야 할 부분이 당의 정체성과 강령 확립임에도, 계파 간 공천 다툼에 노선 투쟁은 뒤로 밀려 있는 상황이다. 이는 ‘배신의 정치’든 반민주적인 절차를 밞았든 간에,  노선 정립을 이룬 새누리당과 대조를 보이는 모습이다. 

새정연은 결국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당파 이익 조율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러한 조율조차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이는 아렌트가 지적한 ‘사회적인 것’에 대한 경고와 맞닿아 있다. 사적인 매력들이  공적영역으로 침범하여 공적인 관심의 주도적인 위치에 등극하게 된 다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아렌트의 지적이 새정연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안전이 공적영역으로 침투하여 국민의 안전보다 우선시 되고 있고, 당파이익이 국가이익을 제압하고 있으며, 정치인의 사익이 공익보다 앞서 달리고 있는 현실을 두고, 어느 국민이 새정연에 애정과 미련을 둘 수 있단 말인가? 

계파간의 공정한 공천은 국민이 알 바가 아니다. 새정연은 계파의 안정과 각 구성원의 생존과 필연성을 보장하는데 관심을 기울기보다, 국민의 이익과 안전에 먼저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새정연은 국민이 당의 정체성에 따라 정당에 대한 지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제시해야한다.  

그러므로 국민을 위한 정책과 노선 정립보다 정치인들의 사적인 필연성이 먼저 내세워 진다면, 새정연의 공적인 영역은 혼돈으로 얼룩지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