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치일반

[연말정산 3] 국민은 왜 분노하나?

# 초등학생이 게임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화가 난 엄마는 계속 게임방을 들락거리면 집에서 쫒아내 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엄마의 경고는 실속 없는 경고에 그쳤다. 아이가 계속 피시방을 다녀도 아들을 집에서 쫒아내지 못했다.  
 
# 정부는 에이즈를 치료하는 약을 발명하면 30년 동안 특허권을 보장한다는 특허정책을 만들었다.  정책 발표 1년 후, 한 의약품 회사에서 에이즈 치료 신약을 발명하였다. 정부는 신약 가격이 비싸 보급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특허권 보장기간을 이전 공표한 30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위의 이야기는 일관성 없는 태도에 관한 예이다. 

부모는 아이가 잘못 하면 집에서 내쫒는다고 말해 놓고서도, 이후에 아이의 잘못을 묵인한다면 아이는 더 이상 엄마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아이는 계속 피시방을 집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정부가 말을 바꾸어  특허권 기간을 줄인다면  누구도 새로운 발명을 하려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비일관성은 국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않도록 한다. 정부는 정책을 공표한 후, 국민들은 이 정책을 신뢰하고 이에 상응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들의 믿음을 배신하게 된다면, 국민들도 정부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정부의 명령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위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이러한 문제는 준칙(rule)과 재량(discretion)의 문제라고 말한다. 

준칙이란 일정한 규칙을 미리 정하여 발표하고 이에 따라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재량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정책당국자가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준칙을 공표해 놓고, 국민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준칙을 재량으로 바꾸게 되면 당장은 정부의 의도대로 정책의 효과는 나타날 수 있으나, 앞으로의 정책효과는 소멸한다.  

정부가  준칙에서 재량으로 변덕을 부린다면,  이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게 되어 더 이상의 정부 정책과 권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 통화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

정책의 비일관성은 통화정책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중앙은행이  준칙을 공표하고 이에 기초하여 정책을 수행한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준칙에서 재량권을 발휘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수 있다.  낮은 실업률과 낮은 물가상승률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은 거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몰래 돈을 시중에 풀어 물가를 올려 버렸다. 그러자 기업은 자기 제품이 잘 팔려서 가격이 올랐다 착각하고 생산과 고용을  증가시킨다. 결국  실업률이 감소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 제품 가격이 오른 것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통화량을 늘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고, 실업률은 다시 원래 수준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처럼 동태적 비일관성은 준칙보다 효과 면에서 못하게 된다. 조장옥 서강대교수는 준칙에서 재량으로의 비일관성 정책이 종전보다 더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정부의 비일관성이  경제주체들의 기대 혹은 믿음을 배반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책당국이 스스로 선언한 정책을 파기하면 사람들은 정책 당국의 발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므로 신뢰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 정부의 비일관성-1 

이번 연말정산 사태는 정부의 비일관성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정부가 국민의 정부에 대한 기대를  배신한 문제이다.  국민은 자신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더 나갔다는 문제보다 정부의  비일관성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수가 대기업으로부터 확보한 세수를  압도하고 있다. 

현정부는 정부 출범 시에 ‘증세 없는 복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복지재원을 비과세 감면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충당한다는 정책을 내걸었고 지금도 이 정책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은  내실이 없는 주장이다. 

우선  해외 금융계좌 신고의 경우, 10억 원 초과라는  신고 기준금액을 낮추어야 하는데도 세법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고도 지하경제양성화라는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대기업 비과세 감면 축소와 관련,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22일 브리핑에서 "이미 대기업을 상대로 비과세 감면을 줄이거나 축소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이를 통해 세수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인의 비과세 감면 폐지라는 주장도 사실 알맹이가 없다.  작년 세법개정에서 야당이 비과세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하였으나,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입에 비해 대기업으로부터의  세수확보는  미미하였다.

지난해 세법개정에서 고용창출세액공제에서 5% 추가공제까지 모두 폐지해야함에도, 정부는 대기업 기본공제율 0.7%만 폐지하였다. 국회예산정책처에 의하면 이로 인한 세수효과는  고작 900여억 원이다. 또 R&D세액공제 중 대기업의 당기분 공제율을 1% 인하하였다. 전문가들은 공제율을 1% 낮추면 3,200억원가량 증가한다고 분석하였다.  정부는 대기업 비과세 감면 조정으로 최대5000여 억원이 확보될 예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간접세 조정인 담뱃세 인상으로 2조8000억원, 근로소득세 조정으로 9천여억원이 국고로 더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총 3조 7천억원이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게 된 셈이다. 

기업 5000억대  국민 3조7천억. 이러한 기업과 국민간의 세 부담의 현격한 차이는  정부가 대기업 비과세 감면으로 세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주장과 일치하지 않아, 정부의 정책의 비일관성이 국민의 분노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비일관성-2

또 구체적인 정책에서도 정부의 비일관성은 발견된다.  저출산 극복이라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실제로 세법은 이에 역행하여 저출산해소를 위한 세제지원금액을 줄이는 세법을 입안한 것이다.  이것도  준칙에서 재량으로의 변덕을 의미한다. 

모든 자료를 단순화하여, 6세 이하 자녀 2명을 기준으로 종전과 자녀세액공제금액을  비교해보자. 

종전 자녀가 2명인 경우 다자녀 공제로 연 100만원을 공제받고, 6세 이하 자녀 추가 공제는 1명당 1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았다. 그러므로 소득공제는 총 100+ 100×2= 300만원이다. 

이를 기초로  과표 1200~4600만원의 구간의 경우, 종전 돌려받는 금액은  300만원×0.15%=45만원이다. 반면 자녀 세액공제는 자녀 2명에 30만원을 돌려받는다.  그러므로  자녀추가공제방식은 15만원을 더 내야한다. 

4600~8800만원 구간에는 종전보다 42만원을 더 내야한다. 300만원×0.24%-30만원=42만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가 도입한 자녀장려세제를 고려해보자, 자녀장려세제는 1명당 최대 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상자는 부부합산 연수 4천만원, 재산 1억4천만원이하, 무주택 1세대1주택 요건을 모두 구비해야한다. 

그러므로 15%구간에는 추가 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산층에 해당되는  4600~8800만원 구간은 자녀 장려세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중산층은 자녀 관련 세부담이 42만원 증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자녀세액공제로의 전환으로  중산층의 경우, 자녀세액공제에서  추가 부담을 지게 되었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을 강조하는 이면에 이를 파기한 정책을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세법개정은 소득재분배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소득재분배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이는 소득계층을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으로 구분 할 때, 세법개정으로 저소득층은 소득 부담이 완화되고, 중산층은 그 부담이 동일하며, 고소득층은 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세법개정에서 중산층은 자녀세제관련  세부담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신뢰와 원칙, 좌초 위기 

이처럼 이번 사태의 암초는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 배반되는  행위를 하였다는 점이다. 정부의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이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현 정부의 출범의 닻을 올리게 한 원동력은 신뢰와 원칙이라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이 주요 전략으로 자리매김한 듯한 인상이다. 

일전에는 청와대 전 행정관과 전비대의원간의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이 행정관이 여당 대표와  중진의원을  들었다 놨다고 하거나,  고위직 인사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회괴한 주장들이 그것이다. 

이 수준이라면 이 사건이 이번 정부의 연말정산사태 대처와 맞물려,  '권력의 집중 문제'와 별개의 사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 준칙에서 재량으로 복귀

조장옥교수는 한번 준칙에서 재량으로 정책이 바뀌었다고 해서 다시 준칙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가정은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말한다. 

현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재량에서 준칙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제 반환점을 돌기 직전이다. 다시 재량에서 준칙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열려있다. 국민들은 정부가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복귀하기를 갈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