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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리뷰] 뜻밖의 사건을 향한 즐거운 여행

예술가는 작품의 생산자인가? 아니면 변화의 주체인가? 

혹자는 사회 문제에 보다 깊이 개입하여 당면한 문제를 드러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삶의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행위는 예술가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펙트럼의 반대의 진영은 예술은 자신의 고유성을 갖는 독자적 활동으로 이해한다.  예술은 혁명적 실천과 사회적 실현의 공간이라기보다, 작품생산을 통해 작가의 깊은 성찰을 이루는 창조적 개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독창적인 카툰의 세계를 열고, 카툰으로 세상의 변화를 꿈꾸어 온,  영국 출신  예술가이며  카투니스트인 랄프 스테드먼에게  이러한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그림자처럼  쫒아 다닌다.  

그는  사회의 현실을  그의 작품 속에 삼투압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명에 충실하였다. 웃기는 그림을 그리는 카투니스트라기 보다, 이 삽화를 통해 거짓의 세상에 저항하여 한 뼘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는 예술을 변화의 도구로써만 여긴 것은 아니다. 그는 달콤한 와인의 세계에서 또 다른 예술의 창작을 선보인다.  그는 와인 라벨, 맥주 라벨 디자인에도 충실하였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또한 그의 캘리그라피도 독보적인 영역을 창조하였다. 

그래서 그를 붓을 무기로 든 투사로 단정지울 수는 없다.  여타 창작자들처럼 그도 소박한 삶 속에서 순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발견한다. 부정이 얼룩진 세상이 그를 투사로 부른 것 뿐이다. 

‘과거를 초월하고 현재의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는 사르트르의 주장은 개별과 전체를 동시에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세상의 아픔을 품는  ‘아티스트’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 랄프의 삶의 원칙 

이 영화는 1936년생 영국 출신, 랄프 스테드먼이  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그의 카투니스트로서의 철학, 그에게 영감을 안겨준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곤조 저널리스트’의 창시자인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헌터 톰슨과의 콜라보레이션과 우정등,  그의 삶을 多面으로  조명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는 조니 뎁이다. 그는 헌터의 작품,  ‘Fear & Loathing in Las Vegas’와 ‘The Rum Diary’을 극화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우선 감독 찰리 폴은 랄프의 인생관과 철학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베트남전쟁에서 네이팜탄 피해, 베트남의 밀라이촌 민간 학살사건등에 분노한 랄프는 그의 무기인 카툰으로 닉슨을 공격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헌터와의 갈등 섞인 우정은 이 영화의 줄기가 된다. 헌터와의 첫 번째 콜라보레이션은  ‘Fear & Loathing in Las Vegas’이다. 랄프의 삽화가 헌터의 글을 더욱 돋보이고 빛나게 한 것이다.   헌터가 권총자살을 하기 전까지 이 둘은  동반자관계로 서로 버팀목이 된다.  
또한 그에게 영감을 안겨준 아티스트들이  소개된다.  베이컨, 렘브란트,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등이 그의 영혼에 풍부한 영감을 안겨준다. 

랄프는 여행과 미술은 무엇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예상 못한  사건이라는 그의 믿음은 베이컨의 명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쉼 없는 노력은 다빈치가 말한 ‘천재성은 노력할 줄 아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예술가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제시해준다. 우선 예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체득되어야한다. 사회가 예술 속으로 흡입되고 개인이 예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철학이 예술가의 내면에 존재해야 한다.

 또한 그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동반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헌터와 랄프는 함께 짝을 이루어 상대가  빛나도록 빛을 비추어 준다. 


◆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독창적인 비주얼을 선사한다.  영화의 첫 도입장면부터  버릴 것이 없다.   화면에  소개되는 출연자 이름들은  랄프의 캘리그라피로 묘사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레이어가 겹치는 입체적인  장면 묘사등은 랄프의 독창적이며 표현주의적인 카툰과 어우러져, 매력적인 영상을 화면에 수놓는다. 

또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은 랄프와 헌트가 바라본  현실에 대한  분노,  형제나 다름없는 이 듀오의 관계등, 각 시퀀스의 특징을 적절히 묘사해주고 있다. 이 영화의 OST를  직접 작곡한 아티스트는  그래미상 단골 후보이며 폴 메카트니등의 곡도 담당한 시차 스카벡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발견되는 감독의 주관으로 빚어낸 감동과 격정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입체적인 비쥬얼에 비해 스토리는 평면적이어서  감각적인 재미는 덜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원리처럼, 랄프와 헌트의 삶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거나, 미술계통에 종사하지 않는 관객들이  일반 오락영화처럼 스토리를 추적해 간다면  이 영화의 참 맛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을 좀 쌓고 관람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감칠 맛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커닝’이 아니다.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사전에 듣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 뜻밖의 사건을 향한  즐거운 여행

랄프의 삶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암시해 준다. 

혹자는 말한다. 삶은 항상 변함없는 규칙성으로 건조하고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랄프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미술은 속임수 인지도 모르겠어. 여기에 뭐가 있는지 나도 모르거든. 빈 종이에서 시작됐지만 그 이상의 것이 됐지.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는 거야.”라고 우리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가 준비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도 이러한 인생관으로 무장한 랄프의 삶을 인생의 교범으로 참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삶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한다는 것,  콜라보레이션을 할 동지를 찾는 일, 그리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멘토를 찾는등은 우리의 삶에도 쉽게 적용 가능한 원칙이다. 

이제   우리에게 펼쳐져 있는  뜻밖의 사건을 향해 즐겁게 여행을 떠나 보자. 

(7월 10일 개봉,  89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