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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Book Review

꽃은 꺾기위함이 아니라 바라보기위한 것


 산책 길에서 예쁜 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반응이 다르다. 꽃을 뽑아 소유하려 하는 사람과 꽃을 꺾으려 하지않고 살펴볼 뿐인 사람. 소유는 곧 그 꽃의 생명의 파괴이며, 바라봄은 꽃과의 결합이다.

 

계속되는 지역 분쟁과 계급전쟁은 항상 탐욕에 기초한 소유양식에 비롯된 것이다. 이라크의 미국의 침략도 석유를 둘러싼 소유권 다툼이다. 더 강하고 조건이 좋은 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기위해 약자를 이용하려 드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To have or to be'는 인간의 성격구조를 소유와 존재의 두 양식으로 나누고, 소유지향에서 존재지향으로의 전환만이 폭력에서 연대와 애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그는 이를 위해 인간과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명제를 제시한다.

 

--축재와 착취에서가 아니라 나누어주고 공유함으로부터 기쁨을 가질 것
--자기도취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인간의 비극적 유한성을 받아 들일 것
--건전하고 이성적인 소비를 지향 할 것
--타인을 기만하지않고 타인에게서 기만당하지 않을 것
--모든 생명체와 일체감을 느낄 것, 그럼으로써 자연을 정복,지배,약탈하려는 목표를 버리고 자연과 협동하려 할 것.

 

이 책은 인간이 소유양식이라는 탐욕 속에 갇히고 짓눌려 그 무게에 신음하는 자들에 대한 희망과 구원을 제시한 나침반이다.

 

 

주요 목차

 

1)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문학에 나타난 예
   ▷언어 관습의 변화

 

2) 두 실존양식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분석
    ▷소유적 실존양식
    ▷존재적 실존양식
    ▷연대감, 적대감

 

3)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종교, 성격, 그리고 사회
    ▷인간의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과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특성
    ▷새로운 사회의 특성

 


책 속 구절들

소유의 추구는 계급간의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눈여겨 살펴보니 울타리 곁에 냉이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이누나.

 

그 꽃을 꺾고 싶었는데, 꽃이 애처롭게 말했네. 내가 꺾여서 시들어 버려야 되겠어요?

 

존재양식의 학생들은 백지상태로 참여하지 않는다. 그 강의가 다루는 주제를 미리 고찰하고 특정한 문제와 의문에 대해서 골몰한다.

 

비합리적 권위는 권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며, 권력에 굴하는 사람들을 착취한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신앙 안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사랑이란 누구인가를 배려하고 알고자하며, 그에게 몰입하고 그 존재를 입증하며 그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든 것을 내포한다. 그것은 그를 소생시키며 그의 생동감을 증대시킨다.

 

소유양식으로 체험되는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가두며 지배함을 의미한다. 이는 목을 조여서 마비시키고 질식시켜서 죽이는 행위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다음의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실제로 인간의 성격은 변화 할 수 있다.
-우리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의 원인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있다.
-우리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특정한 행동규범을 가져야한다.

 

운명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아득한 목표지점이 어디에 있든간에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명의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라.

 

여성은 가부장적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존재냐
    차경아 옮김    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