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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무>리뷰 : 인물 심리의 전개가 기둥이 되는 격조 있는 영화

화면 가득 물이 넘실댄다. 그러나 영화는 메마르다.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본성의 대결은 한이 서린 탈진을 느끼게 한다.  

바다의 안개 속에 떠 있는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전진호는 배반과 상실 의 공간이다.  기관실은 욕망과 충돌의 장소이다. 이곳에는  이성이 바다의 안개를 해치고  비쳐오지 못한다.  단지 날 것 그대로의 본성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합리적이었던 인간은 광기와 욕망에 지배되어 인간본성의 낙관주의를 거부하게 된다. 




◆ 전진호의 구성 

<해무>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공식대로 인물들의 대립을 위한 배경을 마련하는 전반부와 각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선장 철주는 전진호가 그의 유일한 ‘집’이며, 그의 삶의 전부이다. 이것이  그가 목숨처럼  이 배를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그에게서 전진호는 어느 무엇과도 교환 할 수 없는 절대 가치인 것이다. 

경구는 돈에 대한 욕망에 다스림 받고 있다.  창욱은 욕구에 광분하고 있다.  순박한 막내 동식 또한  여인에 대한 욕망으로 동료 선원들과의 갈등을 초래하고 결국 수습할 수 없는 비극의 단초 역할을 한다. 

이 전진호에 한 배를 탄 이 선원들은  조선족들의 밀항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위기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자 자신들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갈등에 빠진다. 


◆ 노골적인 야수성

스릴러형식의  공포 심리영화에  가까운 <해무>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각 인물
들의 심리의 전개가 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관객에게  교훈과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폐쇄된 공간에서 점증적으로 묘사한다. 

이 인물들 간의 갈등에 빚진  극적인 긴장감 속에서 관객들은 내면의 고통을 단계 단계 상승시킨다.   기대의 배반으로 비롯된  탄식이 관객들을 불편함의 정점으로 치닫게 한다. 

<해무>는 인간의  본성의 끝자락에는 욕망에 뿌리 내린  노골적인 야수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고백을 끌어낸다.  그리고 더 이상 ‘인간이 이성적인 인간이 아닌 이성이 가능한 동물’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게 한다. 

마지막 시퀀스의 반전이 희망의 씨앗으로 제시된 면이 없지 않으나, 이는 지옥의 공포를  경험한 관객들의 허무함을 상쇄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영화의 전개의 흐름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감에 따라 그간 층층이 쌓아올린 긴장을 해체하려는 노력은  다소 낯설고 어색하다. 


◆ 격조 있는 심리영화 

혹자는 인간은 최대한의 행복은 상호간에 사랑과 좋은 관계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타인간과 사물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친절하게 도와줌을 통해 ‘나’와 ‘그’가 함께 공존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탐욕적인 본성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안개 낀 앞날은 불확실하나 그 불안과 고뇌로 고통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믿음은 위기가 닥쳐올 때 유약해진다.  위기와 갈등이 거대하게 나타날 때는 생존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 그리고 관계의 욕구가 긍정의 힘을 압도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의 덩어리라는 사실이 노골화되며,  심지어 공격적인  본능충동을 억제 변경할 수 없게 된다. 

 창작 연극 <해무>를 근간으로 한 이 영화는 어둡고 안개에 갇힌 바다 속에서  인간의 생존, 안전 그리고  관계의 욕망이 노골화된다.  전진호를 지키겠다는 생존의 욕구, 돈과 성적욕구의 노예화된 생존의 욕구, 이성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겠다는 관계의 욕구가, 각각의 인물들의 욕구가 충돌되면서 악마적 속성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대결의 결과는  전율과 허탈함뿐이다.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 자체에 내재한 본성은 전혀 여과되지 않고 부딪힌다. 

이 영화의  인물들 간의 날선 갈등, 그리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이미 연극무대에서 검증받은 시나리오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동식(박유천)과 홍매(한예리)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육체적 행위에서, 철주(김윤석)가 전진호를 지키기 위해 배의 닻을 버리는 절박한 장면에서,  창욱(이희준)의 불타는 욕구에서, 그리고 경구(김상호)의 감정이 절제된 행위에서,    불안, 두려움, 공포와 혼미의 인간 심리를  극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갑판장(김상호)의 선장에의 충성과  기관장(문성근)의 따뜻한 인정도  지옥 전진호에서 색다르게 돋보인다. 

또한 연극무대 구성처럼 배경, 의상, 색채, 조명등이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고립감과 공포, 그리고 답답함과 희망이 거세된 느낌등을 잘 드러내는데 일조한다.

 수준 높은 시나리오, 연기, 그리고 배경을 밑천으로 인물 심리의 전개가 기둥이 되는 격조 있는  영화 <해무>(111분)는  8월 13일 관객들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