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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진도 여객선 침몰 ;진도실내체육관 르포 5] “청와대로 가야해, 청와대에서 드러 누워야해.”


19일 오후 11시경, 2층 관중석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1층 프레스센터에 실종자 가족들이 거세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너희들도 꼭두각시야”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또한 실종자 가족이  인터뷰한 내용이 전혀 방송되지 않았다는 말도 들려왔다. 

또 다른 실종자가족들은 방송사 카메라들이 위치해 있는 2층을 향해, “찍지마, ”라며 외쳤다. 한 학부형은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난 2학년○반 ○○○ 아빠야.”라며, 방송사 카메라맨들을 향해 “찍지마란 말이야”라며 기자들은 모두 체육관을 나가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19일까지 대부분의 언론들의 보도는 수동적으로 침몰원인과 선장의 과실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을 뿐,  구조 과정의 문제점과  당국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은 거의 보도 되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천암함 사건에서 이미 인명구조 관련 학습을 마친 당국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고, 가족의 주장처럼 “꼭두각시”일 지도 몰랐다. 

이후 가족들 사이에선 여기저기서 “청와대로 가야해, 청와대에서 드러 누워야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이처럼 실종자 가족들이 격앙된 것은  오후에 공개된 구조영상을 확인한 뒤였다, 당시 구조의  진척 상황을 비로소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오후의 영상을 보면서, “선내는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돌고 있네” 라며 침몰 나흘째임에도 전혀 구조작업이 진척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영상 공개 후 해경측은 더욱  황당한 변명성 브리핑을 가족들에게 하였다.  해경측은 선내진입을 못한 것에 대해 ‘선내 진입은 못해도 망치로 유리창 쪽을 두드리면서 지나갔다’면서 ‘두드리면 생존자가 신호를 줄 것이다.’라는 설명이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탑승객들이 생존해 있다면,  침몰 나흘째여서  거의 탈진하여 기력을 잃고 있을 텐데,  어떻게 신호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더 나아가 해경측은  해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장비를 동원하여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가족들이 더 우수한 장비와 외국들의 도움은 왜 받지 않는가라는 항의에, 그제야 ‘외국에 도움을 요청해 둔 상태다‘ 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한심한 구조상황을 목도한 가족들의 반응은 우선 구조를 포기하고 선체인양을  하자는 절망적인 주장이 대두되었다. 

이후 밤이 되자 실종자가족들은 청와대에  건의사항을 들고 직접 대통령을 만나고자 하였다. 그들은 항의성 시위라기보다, 단지 현재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사항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소박하였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며 핵심을 찌르는 내용이었다. 

청와대로 향하기 전에 실종자 대표가 밝힌 건의사항의 첫 번째는  각 부서들간 통일된  구조작업을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구조의 기본을 언급한 것이었다. 

실종자 대표는  “해수부, 안행부, 해경, 해군등에게 사항을 물으면 각자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통일적인 지휘체계가 없다. 우리는 이를 건의하기 위해 청와대에 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청와대를 향해 체육관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대통령은 만나기는 커녕, 진도대교에서 저지당하였다. 우리 선량한 아빠, 엄마들이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시위폭력집단으로 간주당한 순간이었다. 

급기야  가족들의 분노는  진도읍 전체로 펴져나갔다.  버스 정류장등에서 만난 승객들은 직접적으로  정부와 청와대의 무능함을 성토하고 있었다. 

이 사태 후에 비로소 방송에서  ‘콘트롤 타워’, ‘민관군’이란 용어가 나오며, 서서히 체제가 정비되었고, 구조가 본격화되었다. 이핑계 저핑계로  4일 동안  전혀 구조가 진척되지 못하다, 다음 날 선체진입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월호 침몰 4일 동안  수수방관과 교만함을 여실히 보여준 당국과 언론의 현주소였다. 기자 또한 이 사태의 공범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