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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lockburst 영화의 이해 : 블록버스터 영화의 출현과 진화

휴식은 반복된 일상으로부터 비롯된 지친 피곤의 덩어리(block)를 터뜨리는(burst) 신선한 파괴이다. 그래서 blockburst영화에 마음을 맡기는 일도 또 다른 휴식인 셈이다.

 

블록버스터의 정의 는 인풋과 아웃풋의 관점에서 혼용되고 있다. 투입기준으로  한국영화사상 최고투자액인 430억을 들인 설국열차를 블록버스터라 칭하고 있다. 산출기준으로는 통상 미국의 매표매출로 북미 1억달러이상, 세계 4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영화를, 1억달러의 벽(block)을 넘어섰다(burst)는 뜻으로 blockburst라 일컫는다.

 

그런데 운동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이 기본이듯, 우선 우리의 머리 속에서 블록버스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한번 툭툭 털어보자.


 

뉴 아메리칸 시네마 (1967-75)

블록버스터 이전 시기의 영화는 ‘뉴아메리칸 시네마’로 지칭된다. <내일을 향해 쏴라> <이지라이더>같은 도전적 주제를 담은 실험적인 저예산영화가 작가주의 이름하에 등장한 것이다.

 

1967년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작 보니앤 클라이드)가 개봉되자, Time지는 “폭력과 섹스가 가미된 새로운 미국영화가 몰려오고 있다.”며, 이 새로운 물결을 ‘뉴아메리칸 시네마’로 명명하였다.

 

이들은 고전할리우드의  낭만과 해피엔딩의 A급 장르영화를 낡은 잔재로 낙인찍고, 이의 대체물로 반전, 인종갈등,성억압의 윤리, 남성의 권위등 아방가르적 주제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즉 사회의식과 변혁적인 소재를 담은 작가주의 영화를 창조하여, ‘현실 속으로’적극 뛰어 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19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석유 파동,베트남전 패배를 겪으면서, 정치,경제적으로 아물지 못할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러한 힘의 쇠퇴는 사회를 한층 보수화로 몰아넣었다. 동시에 작가주의의 전위적 실험은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게 된다. 

 

 

뉴 할리우드 시네마 (1975-80년대 초)와 블록버스터의 출현

 

작가주의 영화가 조종을 울리게된 후, 새로운 보수화에 대응한 새벽종의 타종은 ‘movie brats(영화 악동)’의 몫이었다. 이들이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현장이 아닌 영화학교에서 먼저 수학한, 전문적인 지식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등이 헐리우드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뉴할리우드 시네마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윤과 예술의 균형에서 이윤극대화에 무게중심을 분명히 두었다. 상업주의의 전면 부상이었다. 이 조류는 단순서사의 high concept,강력한 스펙터클,그리고 대규모 제작비,와이드릴리스의 배급방식등으로 특징 지워진다,

 

첫째로 high concept의 도입이다. 스필버그는“만약 어떤 사람이 스물 다섯 개 이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는 아주 괜찮은 영화로 만들어 질 수 있다. 손에 쥘 수 있는 아주 간결한 아이디어를 사랑한다.”라며 하이컨셉트의 서사의 단순성을 설명한다. 즉 누구나 전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강조한다.

 

또한 영화의 소재가 미국사회가 보수화되면서, kidult영화, 즉 kid를 위한 동화와 adult의 로맨스를 결합한 어른동화가  관심을  모으게 된다. 성인관객도 피터팬증후군처럼 아이로 퇴행하려 현실을 잊고자하는 욕구를 영화가대리만족시켜준다.

 

하이컨셉트는  수명주기 전체에 마케팅을 도입,강화한다. 그리고 <죠스>의 포스터처럼 영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위협적으로 묘사한다. 

 

둘째로  관객의 눈을 호강시키게 하는 강력한 스펙터클을 동원하여 보는 이의 넋을 빼놓는다. 서사의 논쟁을 스펙터클로 종식시킨다.

 

셋째로 규모의 경제로 타 영화를 제압한다. 배급방식도 제한된 몇몇 극장에서 우선 상영하고,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 상영관을 늘리는  과거 단계적 배급방식이 아닌, wide-release 즉 전국 혹은 세계 동시개봉을 추구한다. 이쯤되면 영화가 예술인지, 가치극대화가 최고의 선인 산업인지, 구분이 모호해져버린다. 영화는  소비자가 수요하는 제품의 또 다른 아이템인 것이다.

 

뉴할리우드시네마의 이러한 특징은 1970년대 영화사들이 복합기업에 팔려가면서이다. 복합기업은 다각화로 전체리스크를 줄이는 경영전략을 추구하며, 마켓을 단일 마켓,즉 전세계로 확장한다. 복합기업에겐 국경이 없고 국가가 없다. 이를 위해 영화도 위험회피라는 재무관리의 목표를 충실히 수행한다. 이 결과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들은 점점 감소해 간다.

 

결국 뉴할리우드영화는 알프레도 히치콕등 작가주의 영화대신 단순 서사의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 틴에이저,sf물등의 B급장르영화를 선호하여, 관객을 push하는 영화보다, 관객이 영화를 pull하는 영화에 천착한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러한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전형이다. 즉 상업적 이윤이라는  목표하에  자극적이고 단순한 서사와 화려한 스펙터클을 덧입혀, 경영학의 현대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보기에 먹음직한 사과로 영화가 포장된다. 

 

 

◆현대의 블록버스터

 

<배트맨 다크나이트라이즈>는 현대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관객이 더 이상 영화의 pull의 주체가 아닌, 영화가 관객을 pull하는 역전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영화가 관객에게  사색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지와 스펙터클이라는 기초위에  심오한 서사가 올라서는 단단한 구조가 건설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련되고 획기적인 스펙터클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줄어들면서 관객이 다시 서사에 눈을 돌렸다는 반증이며, 이러한 관객의 needs를 영화산업이 예리하게 간파한 결과물인 것이다. 서사와 스펙터클의 균형의 모색인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의 망작이라 불리어지는 몇몇 블록버스터급 영화들도 서사의 도외시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와중에 엄청난 흥행돌풍을 보였던 <설국열차>도 이러한 관객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한 작품으로 이해되어진다. 세련된 스펙터클의 기반위에 불편하고 진중한 뉴아메리칸시네마 성향의 작가주의적 서사를 올림으로서, 튼튼한 건축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도 뉴할리우드시네마의 블록버스터의 내재된 기본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사회적의식이라는 계급의 갈등과 반란이라는 영화 구조의 상층부의 역할을 하는 서사는 실상 스펙터클의 기능을 하는 기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감독의 언급처럼, 이 영화의 엔딩은  격정적인 반란의 결과물과 무관한 인류의 새로운 출발을 바라는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실제의 단순 서사는 주인공이 옹립하고자 하는 지도자가 결국 그의 타도의 대상이었다는 철학적 고뇌인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갈등과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는 스펙터클의 극대화에 동원된 도구역할을 할 뿐, 실상 영화구조의 상층부의 머리역할은 아닌 것이다.

 

혁명과 계급이라는 일반적인 서사를 스펙터클의 도구로 차용함으로서, 오히려 서사의 치열한 논쟁을 이끌게 된다. 이러한 논리싸움은 영화의 상품성을 더욱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최종 정거장인 이익극대화란 숨겨진 진실이 탄탄히 영글게된다. 결국 <설국열차>는  뉴할리우드시네마의 블록버스터의 본령에 영리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블록버스터는 자본의 회수라는 제일의 지상명령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갈수 있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전위적인 요소까지 차용하여, 서사와 스펙터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여 hybrid 시네마의 형태로까지 진화된다. 물론 이러한 귀결은 당연 관객들의 세련된 안목과 고급화된  needs로 비롯된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