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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어의 신뢰 개념 ① ] 신뢰의 본질과 국가의 책무: Mayer의 취약성 이론과 ABIS 모델을 중심으로

-제도의 자제와 상호관용으로 헌법정신을 수호해야

#1. A씨는 마취된 채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의사가 오직 치료만을 위해 칼을 쓸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2. B씨는 운전자가 졸음이나 부주의로 사고를 낼 수 있음에도 조수석에서 잠을 청합니다. 운전자의 안전운전을 믿고 자신의 안전을 운전자에게 온전히 맡긴 것입니다. 이 두 사례는 신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뢰의 본질은 ‘취약성에 대한 자발적 노출’입니다.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해칠 수 있는 무방비 상태임에도, 그 위험을 인지한 채 기꺼이 나를 내맡기는 행위가 신뢰입니다.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자유와 권리의 일부를 양도하는 행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즉, 국가에 대한 신뢰란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 세력이 공익이 아닌 사익이나 기득권 보호를 위해 그 힘을 남용할 위험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국가는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의 ‘취약성’을 자발적으로 노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Mayer의 신뢰 정의 조직 신뢰 연구에서 널리 인용되는 Mayer 교수의 연구는 신뢰의 핵심을 “타인의 행동에 대해 취약해질 의지”로 정의합니다. "Trust is the willingness of a party to be vulnerable to the actions of another party based on the expectation that the other will perform a particular action important to the trustor, irrespective of the ability to monitor or control that other party." “신뢰란, 상대를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상대가 나에게 중요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하여, 상대의 처분에 나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기꺼이 노출하려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이 정의를 풀면 신뢰는 세 가지 요소로 정리됩니다. •기대(expectation): 상대가 나에게 중요한 ‘특정 행동’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약속·역할·규범·의무의 이행). •취약성(vulnerability): 상대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스스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위험(risk): 결과가 불확실하고 손해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핵심 구문별 의미 분석 ① the willingness of a party to be vulnerable to the actions of another party: 다른 당사자의 행동에 자신을 취약한 상태에 두려는 의지를 뜻합니다. 여기서 ‘취약한(vulnerable)’ 상태란 △상대가 나를 해치거나 실망시키거나 배반할 수 있는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 △그럼에도 그 상대에게 나 자신이나 나에게 중요한 것을 맡겨 그 위험에 노출된 위치에 서는 상황 △그러한 노출 상태를 알고도 스스로 받아들이고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를 기초로 볼 때 ‘to be vulnerable to the actions of another party’는 ‘다른 당사자의 행동에 따라 상처를 입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스스로 올려놓는 것’, 또는 ‘다른 당사자의 행동에 자신을 상처 입을 수 있는 채로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문장의 핵심은 ‘상대가 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 가능성을 감수하고 그 손에 나를 맡긴다는 데’ 있습니다. ② the expectation that the other will perform a particular action important to the trustor:상대방이 신뢰자에게 중요한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란 신뢰자가 바라는 상대방의 ‘약속·규범·역할·의무의 이행’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합니다.-비밀을 지키고, 허락 없이 정보를 누설하지 않습니다.-팀에서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합니다.-위험이 생겼을 때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해결하려 합니다. 위 문장을 국민–국가 관계에 적용해 보면, “신뢰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상대방의 특정 행동”의 예는 다음에 해당합니다. -정부와 국가가 자신의 기본권을 보호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국가가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재산권 등을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협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③ irrespective of the ability to monitor or control that other party: 그 다른 당사자를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감시·통제의 주체는 신뢰하는 쪽(신뢰자)이고, 객체는 신뢰받는 상대방(other party)입니다. 신뢰하는 쪽이 신뢰받는 쪽의 행동과 결정을 직접적으로 관리·감독하거나, 규칙·명령·계약 등을 통해 강제로 조정할 수 있는지와 무관하게, 상대방의 행동에 자신을 맡기려는 의지가 있는가에 신뢰의 본질이 있습니다. 이를 국민–국가 관계에 적용하면 정치적 신뢰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시민은 국가를 완전히 감시·통제할 수 없어도, 국가가 기본권과 안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국가의 결정에 자신의 삶과 권리를 맡기려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취약성: 무엇이 위험에 노출되는가 신뢰는 국가의 중요한 특정 행동을 기대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취약성에 자신을 노출하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국가가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함으로써, 잠재된 위험이 현실의 고통으로 바뀔 때입니다. 잘못된 경제정책이 나의 자산을 갉아먹고, 국가의 통제가 나의 자유를 옥죄며, 나의 자기결정권이 국가의 판단에 의해 축소되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은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① 결과(Result)의 취약성: 불확실성에 대한 종속 ‘결과의 취약성’이란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국가의 오판이나 실책으로 발생한 피해(재난·경제 위기 등)를 내가 떠안아야 하는 위험입니다. 통제권을 이양한 순간 결과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게 되고, 내 삶은 타인의 판단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국가를 믿고 재산과 권리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엉뚱한 경제 정책을 펼치면 내 자산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고, 외교 노선을 잘못 타면 안보 위험에 시달려야 하며, 교육 정책이 실패하면 내 아이의 미래가 닫힐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의사결정 하나로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거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뢰의 대가로 감수하고 있는 ‘결과의 취약성’입니다. ② 권리(Rights)의 취약성: 해석에 의한 지배 ‘권리의 취약성’이란 내 헌법적 권리가 국가의 해석과 정책에 의해 언제든 변질되거나 축소될 수 있는 상태입니다. 헌법이 기본권을 보장하더라도, 그 구체적 적용 범위와 한계를 설정하는 권한은 국가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세법을 개정해 감당하기 힘든 세금을 부과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헌법상 재산권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그 권리가 실제 현실에서 어디까지 보호받을지는 전적으로 국가의 정책과 법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가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이 안전한지에 대한 기준을 폭넓게 적용한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은 쪼그라듭니다. 권리의 실질적 내용이 국가기관의 입맛(해석)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입니다. 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 그 권리의 크기와 내용을 결정하는 주인은 따로 있는 상황. 이러한 구조적 종속성이야말로 우리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취약성입니다. ③ 자기결정권(Autonomy)의 취약성: 결정권의 비대칭 자기결정권의 취약성이란 나의 자기결정권이 국가의 권력 크기에 반비례하여 취약해지는 역설을 말합니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본질적으로 ‘판단의 위임’입니다. 내가 판단해야 할 몫을 국가가 대신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정책의 수립, 위험에 대한 정의까지 모두 정부와 거대 여당이 독점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위임이 나의 삶을 지배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내려야 할 삶의 핵심적인 선택들이 국가의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결국 생명, 재산, 미래 설계와 같은 핵심 결정권을 국가에 많이 넘겨줄수록 치명적인 ‘권력의 비대칭성’이 발생합니다. 개인이 ‘선택할 자유’는 갈수록 위축되는 반면, 국가의 ‘결정할 권한’은 비대해지는 것입니다. ◆국민이 기대한 ‘국가가 해야 하는 특정 행동’ (ABIS 모델) 우리는 결과, 권리, 자기결정권의 위험을 감수하고 국가에 통제권을 위임한다는 것은 국가가 특정 상황에서 반드시 해야 할 행동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대로 인해 세금·규제 수용·법 준수·개인정보 제공·일부 자유의 제한까지도 감수합니다. 이 기대가 무너질 때 신뢰는 파탄납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야 하는 특정행동은 ABIS(Ability, Benevolence, Integrity, Structure)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①선의(Benevolence) 관점의 기대 행동 취약계층을 우선 보호하는 행동입니다. (예: 이전지출은 보편 아닌 선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파를 넘어 동등하게 국민을 보호하는 행동입니다.(예: 진영의 요구만에 반응한 결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부분 최적화’, ‘진영이기주의’는 국민의 기대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 사익이 아니라 장기적 공익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행동입니다.(예: 대장동 개발 비리와 관련된 수익 환수 절차(항소)를 국가가 포기하는 행위는 선의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선의가 확인될 때 시민은 “내 취약성을 악용하지 않을 국가”라고 판단합니다. ②능력(Ability) 관점의 기대 행동 예측 가능한 위험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행동입니다.(예: 환율 방어와 같은 거시적 경제 위기 징후는 놓치면서, 탈모 지원과 같은 지엽적 인기몰이 정책에만 치중하는 태도는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국민이 국가에 바라는 능력은 단순한 '인기 관리'의 ‘행정’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책임지는 '위기 관리'의 ‘정치’ 역량입니다. ) 위기 시 지휘·조정 체계를 작동시켜 혼선을 줄이는 행동입니다. 민생·경제 위기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실행 가능한 해법을 도출하는 행동입니다. 능력이 확인될 때 시민은 “국가는 최소한 일을 한다”는 안정감을 갖습니다. ③정직성(Integrity) 관점의 기대 행동 동일 위반에는 동일 수사·동일 처벌이 작동하는 행동입니다. 권력 주변의 비리도 성역 없이 드러내고 제재로 연결하는 행동입니다. 정책·수사·제재가 여론이나 정치가 아니라 법과 절차에 따라 일관되게 집행되는 행동입니다. (예: 일반 국민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법의 잣대가, 대장동 사건과 같은 거대 이권 세력 앞에서는 항소 포기라는 기이한 ‘관용’으로 돌변했습니다. 이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대원칙을 무너뜨리고, “힘 있는 자들에게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는 특권의 논리를 국가가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공정한 법 집행을 믿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정직성이 유지될 때 시민은 “권력은 내 위에 있어도 규칙은 내 편”이라고 느낍니다. ④구조(Structure) 관점의 기대 행동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는 행동입니다. (예: 법왜곡죄 신설, 재판소원제 도입 등 사법부의 판단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사법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이는 제도가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작동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입니다.) 언론·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압력을 자제하는 행동입니다. (예: 허위조작정보 근절법과 같이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입법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보호하기보다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기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입니다.) 구조가 작동할 때 시민은 “정부가 틀려도 시스템은 나를 지킨다”고 판단합니다. ◆신뢰의 종합 정의: 기대 + 통제권 위임 + 취약성 노출 신뢰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기대'에 근거하여 기꺼이 '결과, 권리, 자기 결정권의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자발적 선택입니다. 이를 국가에 적용하면 국가 신뢰는 다음 세 가지의 결합입니다. •기대: 국가는 우리가 기대하는 중요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신뢰의 출발점입니다. 이 기대는 ABIS(선의·능력·정직성·구조)로 구체화됩니다. •통제권 위임: 시민은 보호 기대가 성립할 때 국가에 강제력, 규제, 과세·재정집행, 위기 대응, 정보 처리, 수사·감사 등 핵심 통제권을 위임합니다. •취약성 노출: 통제권을 위임함으로써 시민은 결과·권리·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위험, 즉 취약성을 현실적으로 감수하게 됩니다. ◆신뢰 붕괴의 연쇄 작용 기대 + 통제권 위임 + 취약성 노출의 결합인 신뢰는 국가가 전체 공익이 아닌 진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분 최적화(Partial Optimization)'를 추구할 때 붕괴의 길로 들어 설 수 있습니다. 그 인과적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뢰 붕괴의 연쇄 작용은 정치 세력이 공익(전체 최적화) 대신 진영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적 부분 최적화’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1단계). 이러한 선택은 곧바로 시민이 기대했던 ABIS(선의, 정직성, 구조)의 동시다발적 훼손으로 이어집니다. 대장동 항소 포기와 같이 특정 이권 카르텔을 보호함으로써 ‘선의’가 무너지고, ‘내로남불’식 법 적용으로 ‘정직성’이 파괴되며, 사법 독립 침해로 ‘구조’적 신뢰마저 훼손됩니다(2단계). 이로 인해 시민들의 인지 체계에 근본적인 전환이 발생합니다. 과거에는 국가에 권한을 맡기는 것이 자발적인 선택(취약성 노출)이었다면, 이제는 “국가에 맡긴 권한이 도리어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3단계). 이러한 판단은 곧 “국가는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불안과 공포로 확산되어 사회 전반을 지배합니다(4단계). 결국 시민들은 통제권 위임을 거부하고 법치주의에 냉소를 보내며,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내몰리게 됩니다(5단계). 그 끝에는 정치 주도세력에 대한 신뢰 붕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6단계) 따라서 정치 주도세력은 정파적 사익이나 기득권 보호에 치우쳐 국가 공동체 전체의 후생을 갉아먹는 ‘부분 최적화’의 행태를 버려야 합니다. ◆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헌법적가치를 지켜낼 수 있어 앞선 분석처럼 신뢰란, 국민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국가가 자신의 취약성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ABIS)를 갖고 통제권을 위임하며, 그 위임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결과·권리·자기결정권의 취약성 노출을 기꺼이 감수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치주도세력이 정파적 사익이나 기득권 보호에 치우쳐 국가 공동체 전체의 후생을 갉아먹는 ‘부분 최적화’의 행태를 추구할 때, 이 신뢰는 붕괴하게 됩니다. 이 과정의 배경에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연성 가드레일인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결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이 감수한 자발적 취약성이 ‘불안’과 ‘공포’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관건은, 정치 주도 세력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민주주의의 연성 가드레일을 굳건히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 규범이 작동할 때 국민의 국가에 대한 기대가 현실에서 구현되고, 헌법적 가치인 경성 가드레일도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26년 새해에는 정부여당이 2차 특검 설치와 사법권을 옥죄는 입법으로 제도를 무기화하는 대신,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메이어의 신뢰 개념 ② ] 기사요약과 Quiz

■ '메이어의 신뢰 개념 ' 요약 1. 요약 (Executive Summary) 이 글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추상적인 감정이 아닌 “취약성에 대한 자발적 노출”이라는 메커니즘으로 규정하고, 조직 신뢰 이론(Mayer et al., 1995)을 국가 단위로 확장하여 분석한다. 국가 신뢰란 시민이 결과·권리·자기결정권의 침해 위험(취약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하여 통제권을 위임하는 현상이다. 이 기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ABIS(능력, 선의, 정직성, 구조)로 요약된다. 국가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아닌 정파적 이익에 몰두하는 ‘부분 최적화(Partial Optimization)’ 행태를 보일 때, 시민의 자발적 취약성은 ‘불안’과 ‘공포’로 전환되며 신뢰는 붕괴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헌법적 가치(경성 가드레일)를 지탱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연성 가드레일)가 요구된다. 2. 이론적 프레임워크: 기대, 위임, 그리고 취약성 2.1. Mayer의 신뢰 정의 재해석 신뢰는 (1) 기대(Expectation), (2) 취약성(Vulnerability), (3) 위험(Risk)의 함수다. "신뢰란 감시·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상대가 나에게 중요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하여, 상대의 처분에 나의 취약성을 기꺼이 노출하려는 의지이다." 2.2. 시민이 감수하는 3대 취약성 (Vulnerability Types) 국가에 통제권을 위임함으로써 시민이 노출되는 취약성은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결과의 취약성(Result Vulnerability)이다. 이는 ‘불확실성에 대한 종속’을 의미한다. 국가의 정책 오판이나 위기 관리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물리적 피해를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예를 들어,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인한 위기나 재난 상황에서의 피해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권리의 취약성(Rights Vulnerability)이다. 이는 ‘해석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자의적인 법 해석이나 행정 편의에 따라 그 실질적인 내용이 축소되거나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이다. 과도한 규제나 자의적인 세금 부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셋째, 자기결정권의 취약성(Autonomy Vulnerability)이다. 이는 ‘결정권의 비대칭’으로 나타난다. 국가의 권력이 비대해질수록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 공간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며, 생명이나 재산과 같은 삶의 중요한 결정들이 국가의 판단에 좌우될 수 있는 위험을 말한다. 3. 국가 기대 행동의 구조화: ABIS 평가지표 시민이 위협을 감수하고 신뢰를 보내는 근거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특정 행동’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를 관측 가능한 지표로 구조화한 ABIS 모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능력(Ability)은 "국가가 일을 제대로 해내는가?"에 대한 기대이다. 긍정적인 신뢰 형성 지표로는 위기 징후를 선제적으로 포착하여 예방하고, 혼선 없는 위기 지휘 체계를 가동하며, 환율 등 거시적 위험을 관리하는 역량이 꼽힌다. 반면, 사후약방문식 대응으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탈모 지원과 같은 인기영합적 미시 정책에 편중하여 정책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능력 부족으로 인한 신뢰 붕괴의 신호가 된다. 둘째, 선의(Benevolence)는 "국가가 누구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기대이다. 취약계층과 소수자를 우선 보호하고, 진영을 초월하여 보편적 공익과 공동체 전체의 장기적 후생을 추구할 때 신뢰가 형성된다. 그러나 특정 지지층이나 이권 카르텔만을 보호하는 '부분 최적화' 행태를 보이거나, 대장동 수익 포기와 같이 특정 세력에 특혜를 주고 정파적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할 때 신뢰는 무너진다. 셋째, 정직성(Integrity)은 "국가가 원칙을 지키는가?"에 대한 기대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동일한 처벌을 내리는 일관성,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절차적 정당성의 엄격한 준수가 긍정적 지표다. 이와 달리 '내로남불'식으로 이중 잣대를 적용하거나, 일반인에게는 가혹하고 권력에는 관대한 '선택적 관용'을 보여 법 적용의 예측 가능성을 파괴하는 것은 정직성을 훼손하는 부정적 지표다. 넷째, 구조(Structure)는 "개인이 틀려도 시스템이 작동하여 막아주는가?"에 대한 기대이다.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고,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권력 견제 기구가 실효적으로 작동할 때 구조적 신뢰가 쌓인다. 하지만 법왜곡죄나 재판소원제 등을 통해 사법 통제를 시도하거나, 비판적 언론에 대해 합법적 괴롭힘을 가하고 제도적 감시 장치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구조적 신뢰를 파괴한다. 4. 붕괴 메커니즘: 부분 최적화에서 시스템 붕괴까지 국가가 전체 공익이 아닌 진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분 최적화(Partial Optimization)’는 신뢰 붕괴의 트리거(Trigger)가 된다. 그 인과적 흐름은 다음과 같다. [인과 흐름도] 신뢰 붕괴의 연쇄 작용 정치적 부분 최적화 (진영 논리) →ABIS 신뢰 훼손 (법치 무력화) →권력의 위협화 (보호에서 공격) → 각자 도생 만연 (위임 거부) → 민주주의 붕괴 (시스템 마비) 5. 결론: 연성 가드레일의 복원과 신뢰 회복 국가 신뢰는 국민이 국가의 보호(ABIS)를 기대하며 취약성을 감수하는 상태다. 그러나 정치 세력이 공익 대신 정파적 이익인 ‘부분 최적화’를 추구하면 신뢰는 붕괴한다. 그 원인은 연성 가드레일(상호 관용·제도적 자제)의 부재에 있다. 국민의 자발적 취약성이 공포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정치 주도 세력이 연성 가드레일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2026년에는 제도의 무기화를 멈추고, 연성가드레일의 회복을 통해 헌법정신을 지키고 신뢰를 재건해야 한다. ■ Quiz 1) (객관식) 글이 제시한 신뢰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정의는? A. 상대에 대한 호감이 커지는 정서 상태B.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만 상대를 의존하는 선택C. 위험을 인지한 채 취약성을 자발적으로 노출하는 행위D. 법·계약으로 상대의 행동을 강제하는 구조 정답: C 2) (빈칸) Mayer의 정의에서 신뢰는 “상대를 ______하거나 ______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성립한다. 정답: 감시 / 통제 3) (서술형) Mayer 신뢰 정의가 포함하는 3요소를 쓰시오. 정답: 기대(expectation), 취약성(vulnerability), 위험(risk) 4) (객관식) ‘기대(expectation)’가 의미하는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A.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믿음B. 상대가 나에게 중요한 특정 행동(약속·역할·규범·의무)을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C. 상대를 처벌할 수 있다는 믿음D. 결과가 항상 유리하리라는 확신 정답: B 5) (O/X) “신뢰는 감시·통제 능력이 강화될수록 반드시 증가한다.” 정답: X(글의 논지: 감시·통제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취약해질 의지’가 핵심) 6) (매칭) ‘취약성’의 세 유형을 아래 설명과 연결하시오. 결과(Result)의 취약성 권리(Rights)의 취약성 자기결정권(Autonomy)의 취약성 a. 권리의 내용·범위가 국가의 해석/정책에 따라 축소·변질될 위험b. 국가의 오판·실책이 내 삶의 결과를 좌우하는 위험(불확실성 종속)c. 핵심 선택이 국가 판단에 의해 좌우되며 결정권 비대칭이 커지는 위험 정답: 1-b, 2-a, 3-c 7) (객관식) 글에서 “권리의 취약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는? A. 위험의 선제적 예방B. 해석에 의한 지배C. 공동체 시너지D. 내부거래 가격 정답: B 8) (단답형) 글이 제시한 국가가 해야 하는 ‘특정 행동’의 기대를 요약한 모델 이름과 4요소를 쓰시오. 정답: ABIS / Ability(능력), Benevolence(선의), Integrity(정직성), Structure(구조) 9) (O/X) “부분 최적화(진영이기주의)는 글의 ABIS 중 ‘선의(Benevolence)’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는 사례로 제시된다.” 정답: O 10) (서술형) 글이 제시한 ‘신뢰의 종합 정의’에서 핵심 결합 3가지를 쓰시오. 정답: 기대 + 통제권 위임 + 취약성 노출(또는: 기대(ABIS) / 통제권 위임 / 결과·권리·자기결정권의 위험 감수) 11) (객관식) 다음 중 ABIS 중 ‘정직성(Integrity)’과 ‘구조(Structure)’의 경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진술은? ① 정직성은 제도 설계의 견고함이고, 구조는 권력자의 도덕성이다.② 정직성은 권력 행사에서 규칙의 일관·공정한 집행(동일 위반-동일 처벌, 성역 없는 제재)을 뜻하고, 구조는 개인의 선의와 무관하게 권력 남용을 제약하는 제도적 안전장치(사법독립, 표현의 자유 보호 등)가 작동하는 상태를 뜻한다.③ 정직성은 위기대응 능력이고, 구조는 취약계층 보호 의지다.④ 정직성은 인기 정책 수행력이고, 구조는 선거 승리 가능성이다. 정답: ②해설: 글에서 Integrity는 “권력 주변도 성역 없이, 여론·정치가 아니라 법과 절차에 따라 일관 집행”처럼 행위의 규범적 일관성을 말합니다. Structure는 “정부가 틀려도 시스템이 지킨다”처럼 개인을 넘어서는 제도적 제약·균형이 작동하는지의 문제로, 둘은 ‘행위의 일관성(집행)’ vs ‘제도적 안전장치(구조)’로 경계가 갈립니다.

[ 침묵의 나선과 판옵티콘 ①] SLAPP, 판옵티콘의 감시탑을 부수어 감금된 영혼을 구하자

[ 침묵의 나선과 판옵티콘 ①] SLAPP, 판옵티콘의 감시탑을 부수어 감금된 영혼을 구하자

현대의 권력자는 권력 유지를 위해 더 이상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침묵’을 제도화합니다. 엘리자베스 노엘-노이만이 경고했던 '침묵의 나선' 이론—소수의 작은 침묵이 가시성을 낮추고, 이것이 가시성 편향을 낳아 결국 더 큰 침묵으로 증폭되는 과정—은 오늘날 권력이 휘두르는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이라는 무기와 결합하여 완벽한 심리적 감옥, '판옵티콘'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막겠다며 내놓은 정치권의 대책은 역설적으로 권력에게 면죄부를 쥐여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나선(Spiral)'의 정체: Downward Narrowing Coil ①나선은 코일이 좁아지는 모양 ‘침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에서 ‘나선(spiral)’이라는 단어는 흔히 달팽이 껍데기나 소용돌이처럼 coil 모양으로 감겨 있는 곡선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서 제시하는 코일의 형태는 단순한 원통형이 아닙니다. 그것은 narrowing spiral, 즉 코일이 아래로 내려가며 뾰족하게 좁아지는 형태이거나 downward narrowing coil, 즉 아래로 내려가며 코일 지름이 급격히 줄어드는 형태를 띱니다. 이 독특한 기하학적 구조는 말의 침묵이 형성되는 과정을 정교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서 코일의 지름은 ‘소수 의견이 표현될 수 있는 공간’ 혹은 ‘의견의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나선의 윗부분처럼 지름이 넓은 구간에서는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내 의견이 소수라도 말해도 괜찮겠다"고 느끼는 여지가 있어, 공론장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나선이 아래로 내려가며 지름이 좁아질수록, 소수 의견이 설 자리는 줄어들고 공론장에서의 가시성 또한 급격히 감소하게 됩니다. ② 가시성 편향: 보이는 것만 믿는 착각 그렇다면 왜 코일은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소용돌이 형태를 띠게 될까요? 이 형태를 만드는 엔진은 바로 ‘소수 의견의 가시성(visibility)’입니다. 여기서 가시성은 공론장에서 소수 의견이 얼마나 보이는지를 의미합니다. 초기 단계에는 가시성이 높습니다. 소수 의견이라도 언론이나 공론장에서 어느 정도 포착되기에, 사람들은 "이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구나"라고 인지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가시성은 0에 수렴하게 됩니다. 이유는 침묵이 누적되면, 공론장에서 해당 의견은 거의 사라지고, 그러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며, 결국 스스로도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가시성 편향(visibility bias)입니다. 대중은 실제 의견의 통계적 분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인식된 의견 분포(perceived opinion climate)’를 현실로 오인합니다. 공론장에서 자주 보이는 의견은 ‘다수’로, 보이지 않는 의견은 ‘극소수’ 혹은 ‘위험한 의견’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론장을 관찰하며 "현재 다수 의견은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자신의 의견이 소수로 보이면 침묵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실제로는 존재하던 의견마저 가시성이 줄어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침묵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이 반복 과정이 바로 downward narrowing coil, 즉 아래로 가속되는 나선형 구조를 형성합니다. ③고립의 공포가 가속화하는 침묵 이처럼 나선이 아래로 좁아지는 것은, 가시성이 낮은 의견이 사회적으로 위험한 의견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며, “이 의견을 가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은 “이 말을 하면 혼자 비난받을 수 있다”는 불안을 유발합니다. 그 결과 해당 의견을 가진 사람들마저 침묵하게 되고, 나선의 지름은 더욱 급격히 좁아집니다. 정리하면, downward narrowing coil은 ‘작은 침묵 (소수로 보이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입을 다무는 현상) → 가시성 감소 → 가시성 편향으로 인한 더 큰 침묵 → 침묵이 나선형으로 증폭’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결국 침묵의 나선은 단순한 개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공론장에서 ‘보이는 것’을 인식된 의견으로 착각하는 인식의 편견의 결과입니다. ◆ 다이어그램으로 보는 침묵의 과정 이 이론을 시각화한 다이어그램은 이러한 과정을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중앙에는 녹색의 나선형 코일이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는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이는 소수(비인기)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침묵 과정을 상징합니다. •인기 있는 의견(Popular Opinion) :상단에 위치한 긴 청록색 막대는 공론장에서 항상 강하게 존재하는 다수 의견을 나타냅니다. •말하려는 의지(Willingness to speak out): 코일이 넓은 초기 단계에서는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도 발언할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인기 의견을 가진 사람: 나선 중간의 파란 점으로 표시된 이들은 나선을 따라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주체입니다. •고립의 두려움(Fear of isolation): 아래 방향 화살표는 고립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나선 아래쪽, 즉 더 깊은 침묵으로 끌어내리는 압력입니다. •침묵 상태(Remaining silent): 결국 코일이 거의 사라지는 나선의 끝부분에 도달하면 완전한 침묵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이 이미지는 비인기 의견을 가진 개인이 사회적 고립의 두려움에 의해 점점 말하지 않게 되고, 그 침묵이 다시 공론장의 인식 구조를 왜곡하면서 더 깊은 침묵을 낳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입니다. ◆ 침묵의 나선과 SLAPP 앞서 살펴본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해 소수 의견이 침묵하게 된다는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이론은 권력자가 휘두르는 전략적 봉쇄 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과 결합하여 그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SLAPP은 승소보다 괴롭힘 자체가 목적인 소송입니다. 권력은 위험을 감수하고 비판하는 '최초 발화자'를 타격하여 막대한 소송 비용과 심리적 압박을 가합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대중과 언론은 '말하면 다친다'는 기대손실을 학습하게 되고, 결국 공론장은 생존을 위한 침묵으로 좁아집니다(Downward Narrowing Coil). ◆ 보이지 않는 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핵심-영혼의 감금 SLAPP이 초래하는 침묵의 나선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한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 원형감옥)' 구조와 유사합니다. 이 감시 체계의 핵심은 '물리적 구속'이 아니라 '시선의 비대칭성'을 통한 '규율의 내면화'에 있습니다. ①시선의 비대칭성 (The Asymmetry of Gaze) 판옵티콘의 중앙 감시탑은 어둡게 처리되어 있고, 죄수들의 수감실은 밝게 비춰집니다. 죄수는 교도관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교도관은 언제든 죄수를 볼 수 있습니다. SLAPP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자(기업, 정치인)는 언제든 소송이라는 감시의 칼날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시민은 언제 자신이 타겟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 놓입니다. ②권력의 자동화 (Automatization of Power) 실제 감시탑에 교도관이 없더라도, 죄수는 '감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스스로 규율을 지킵니다. 이것이 바로 SLAPP의 진정한 효과입니다. 실제로 승소할 필요도, 모든 비판자를 고소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보기로 몇몇 '최초 발화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스스로 입을 다물고 자기 검열을 수행합니다. 권력자가 힘을 쓰지 않아도 통제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권력의 자동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③영혼의 감금 푸코는 이를 두고 "육체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감시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SLAPP의 목적은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자의 '의지'를 꺾고 공론장의 '영혼(비판 정신)'을 가두는 데 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법안(한국형 Anti-SLAPP)의 치명적 한계 이러한 판옵티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발의된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은 역설적으로 그 의도와 달리 권력자에게 '합법적 괴롭힘'의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입증 책임의 전도가 문제입니다. 개정안은 소송이 '괴롭힘 목적'임을 피고인 시민이 직접 소명해야 조기 각하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자금과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이 거대 로펌을 앞세운 권력자의 내심을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는 판옵티콘의 죄수에게 "감시탑이 비어 있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입증 책임을 원고에게 지우지 않는 한, 이 법안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법안이 제시한 '60일 이내 결정' 또한 '시간의 형벌'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얼핏 신속한 구제책처럼 보이지만, 소장이 송달되는 순간부터 발생하는 심리적 공황과 변호사 비용을 고려하면 피해자에게 60일은 지옥과 같은 시간입니다. 오히려 가해자에게는 두 달간 합법적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면죄부를 주는 셈입니다. 소송 요건 미비 시 절차를 즉시 멈추는 강력한 '자동 중지(Automatic Stay)' 장치가 절실한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형 Anti-SLAPP는 SLAPP을 일종의 ‘저위험 고수익 투자’로 전락시킬 위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Anti-SLAPP 법제와 달리, 민주당 안은 기각 시 소송 비용을 부담시키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권력자에게 수천만 원의 비용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저렴한 비용'에 불과합니다. 페널티가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할 때, 법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법의 형태를 빌린 판옵티콘, 그리고 영혼의 구출 권력이 공론장을 지배하는 방식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곤봉이 아니라 절차가, 물리적 구금이 아니라 기대손실이, 검열관이 아니라 자기검열이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이때 SLAPP은 법의 형태를 빌린 ‘판옵티콘’입니다. 판옵티콘은 죄수를 때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수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지금의 ‘한국형 Anti-SLAPP’은 다름아닌 합법적 판옵티콘입니다. 공포를 “합법적 절차”로 포장해주면, 권력은 굳이 폭력적 검열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이라는 감시탑만 세워두면, 나머지는 사회가 알아서 침묵합니다. 진정한 해법은 ‘영혼의 감금’을 합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탑을 부수어, 자기검열에 갇힌 영혼을 자기검열의 감옥 밖으로 구출해내는 데 있습니다. 본질은 발화가 비용이 되는 구조, 침묵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구조를 먼저 끊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론장은 다시,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복원됩니다.







[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의 성격 ] 물적 분할 문제의 보완 필요 ◆ 물적분할 ① 물적분할의 성격 = 현물출자 물적분할은 기존기업의 자산 부채를 신설기업에게 포괄 이전하고 신설기업은 주식을 발행하여 주식100%를 기존기업에게 이전하는 분할을 말합니다. 물적분할의 성격은 현물출자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A사는 전자 사업부와 건설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사는 물적분할하여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신설기업인 B사에 이전하고, B는 A에게 신주100%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적분할로 인해, A기업의 사업구성은 분할이전의 ‘전자사업부 + 건설 사업부’에서 분할 이후의 ‘전자사업부 + B의 주식’으로 변경됩니다. 이를 분할회계처리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배주주 A사: (차) 종속기업 주식 ×× (대) 건설사업부 순자산 ××, 처분익×× 종속회사 B사: (차) 건설 순자산(공정가액) ×× (대) 자본×× 위의 회계처리처럼, A사는 신설기업B에게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이전하고 그 대가로 B주식을 인수하였습니다. B는 A로부터 건설자산을 이전받고 A에게 B주식을 발행하였습니다. 이처럼 물적분할은 현물출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② 물적분할 성격 = 매각거래 물적분할의 경우, 분할회사는 분할을 매각거래로, 신설회사는 분할회사로부터

[ 감세와 고율관세정책 간의 모순 ] ‘트럼프 2기에 고율 관세가 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감세와 고관세의 조합으로 요약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2018년에 발효된 일몰법인 TCJA(감세와 일자리 법 :Tax Cuts and Jobs Act)를 연장 또는 영구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TCJA에 더하여, 추가 세금 인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세로 인해 촉발되는 재정적자는 고율관세로 메울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고율관세는 미국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줄것으로 예상됩니다. ◆ 거침 없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감세를 정책 노선으로 삼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장애물 없이 원하는 모든 법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속해있는 공화당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입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선, 동일한 법안이 상원 및 하원에서 각각 통과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원에서 발의된 법안은 관련 위원회(소위원회의 심사와 청문회, 상임위에서 수정과 표결)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 후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상원으로 전달됩니다. 상원의 관련 위원회를 거친 후 본

[ 기업 다각화의 장단점 ] 산업다각화와 국제다각화의 장단점은? 기업다각화는 산업다각화와 국제적 다각화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다각화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다각화 산업다각화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①긍정효과다각화로 인해 현금흐름 상관성이 낮을 경우, 다각화는 현금흐름의 안정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러한 현금흐름안정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켜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조달능력을 증대시킵니다. 한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경우, 그 기업의 수익은 시장전체의 경기변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기업의 수익률 변동이 시장전체의 수익률 변동과 동조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이처럼 그 기업의 수익률의 변동성과 시장전체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의 변동성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면, 이는 그 기업의 체계적 위험인 베타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베타가 높다면, 그 기업의 자기자본비용은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자본비용과 타인자본비용의 가중평균인 가중평균자본비용도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높은 자본비용은 기업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기업 가치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금액을 위험(재무위험과 영업위험)과 자본조달활동을 반영한 가중평균자본비용으로 할인한 금액인데, 분자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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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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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믿음 > [ 말씀 QT ]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자발적 위험노출 "나는 너를 믿어(I trust you).“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과연 상대방의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이는 신뢰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직결됩니다. 여기서 신뢰의 근거는 일반적인 통념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중고차 거래가 그 예입니다. 우리가 오랜 친구에게 차를 살 때 느끼는 '일반적 신뢰'는 친구라는 관계에 기반하여 "설마 친구인 나에게 결함이 있는 차(레몬차)를 팔아 역선택의 위험에 빠뜨리겠어?"라는 기대입니다. 반면, 사회심리학적 관점 (Mayer et al. 모델)의 신뢰는 다릅니다. 이러한 신뢰는 단순히 친구의 선의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제공하는 차량 점검 데이터와 정비 이력을 통해 객관적인 상태를 확인하고, 그 정보의 투명성과 전문성에 기반하여 상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반적 신뢰는 상대방의 도덕성(선의)만 있어도 형성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적 신뢰는 상대방의 도덕성(선의)에 더해 실력(능력)과 정직성이 모두 충족될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클라이머와 빌레이어의 사례 ① 상황 이러한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극한의 상황입니다. 로프 하나에 생명을 맡겨야 하는 클라이머와 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