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주권주의’는 정치적 프레임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국민주권주의’는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 원칙을 근거로, ‘국민의 뜻’을 정치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언뜻 참여 민주주의 원리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수파가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다는 민주주의의 착각을 강화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했고, 자당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정부·여당의 주장을 ‘국민의 뜻’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국민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국민주권주의’는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를 ‘국민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만들며, 민주주의를 특정 진영의 이익을 위한 배타적 독점 구조로 끌고 갑니다. 이것이 국민주권주의가 정치적 프레임으로 기능하는 이유입니다.
◆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앞선다?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 될 수 있어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선출 권력이 사법부·헌법재판소·감사원 등 임명권력보다 앞선다’는 주장 속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결국 여당을 지지하는 다수 세력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대법원장 탄핵 등을 통해 사법부를 자신들의 힘으로 좌지우지하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내세워 진영의 욕구를 관철하고 소수 의견을 억압하는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게 됩니다.
2025년 사법개혁 논란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와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그 전형적 사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뜻’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다수(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절대화하여 소수(야당 및 사법부 독립 지지 세력)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가 민주주의의 한계인 ‘다수결의 함정’을 극명하게 드러낸 실례입니다.
◆ 사법의 정치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법의 정치화’입니다.
즉, ‘국민주권주의’ 프레임 전략이 성공적인 정치적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되면, 앞으로 모든 주요 재판은 법정이 아닌 여론의 광장에서 먼저 판결이 내려지는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될 수 있습니다.
사법의 정치화란 정치 논리가 사법부(법원)의 판단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내려져야 할 재판 결과가 정치적 유불리, 여론의 압력, 특정 정치 세력의 의도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법의 정치화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약화시키고, 여론에 의한 지배(rule of mobs)로 기울게 만듭니다.
여기서 말하는 ‘rule of mobs’는 ‘군중(여론)의 지배’ 또는 ‘폭민(暴民, 강성 당원)의 지배’라고 표현되는 것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대비됩니다.
다시 말해 법률과 절차, 사법적 판단에 의해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법의 지배’와 달리, 군중의 지배(rule of mobs)는 ‘특정 대중’의 욕구, 분노, 여론이 사실상 최종 판단을 대신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주권’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결국 거대 여당이 프레임화하는 ‘국민주권주의’는 ‘rule of mobs’와 등치로서, 사법부의 절차적 합리성을 무너뜨리고, 정당한 법적 판결 대신 ‘정치적 선동’이 사실상의 판결로 기능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이는 군중의 여론에 따라 국가 의사결정이나 재판 결과 등을 좌우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와 다를 바 없습니다.
◆ 여론이 곧 정의?
역사는 이미 경고한 바 있습니다.
나치 독일은 합법적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얻었지만, 결국 그것은 전체주의 독재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다수결로 형성된 ‘민의’가 반드시 절대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증명한 것입니다.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앞선다”는 주장은 언뜻 민주주의 원리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수파가 국민 전체를 독점한다는 위험한 착각을 강화합니다.
합리적 이성과 적법 절차가 배제된 채 특정 집단의 격앙된 감정과 정치적 선동이 체제를 움직이게 된다면,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심화가 아니라 “여론이 곧 정의”라는 인민재판식 사고로 치닫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수 의견의 존중과 제도적 견제 장치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는 ‘국민주권주의’ 프레임은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국민주권은 모든 국민의 목소리, 특히 소수의 목소리까지 포용하는 데서 나옵니다. 정부여당은 특정 지지층의 목소리를 ‘국민의 뜻’으로 포장하는 정치적 선동을 멈추고, 헌법이 보장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존중하여 진정한 통합의 정치를 펼쳐야 할 것입니다.
마치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속 노래 〈Somewhere〉가 노래하듯, 「어딘가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안에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통합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Somewhere"를 들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