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치일반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유권자들의 한 표가 자본주의의 성장의 동력



서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다른 지역보다 한 발 앞서 받아들여,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누렸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을까?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탐구한다. 여기서 ‘프로테스탄트’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비롯된 개신교도가 아니라,  영국의 청교도(Puritan)를 말한다. 

베버는 당시 유럽의 직업통계를 관찰한 결과 하나의 사실에 주목하였다.  “근대산업에 있어서 자본 소유나 기업경영의 담당자들을 살펴 볼 때 그들이 현저하게 프로테스탄트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다.”라는 점이다. 즉  프로테스탄트가 근대적 기업의 소유자, 경영자, 상급 숙련 노동자등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인구 대비 프로테스탄트 비중보다 높았다. 

베버는 이러한 관찰에서 청교도는 내면에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가설을 도출해냈다. 

그가 언급한 청교도의 합리적인 특질이란 신 앞에서의 금욕적인 생활태도였다. 여기서 욕구를 억제한다는 것은 나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통제한다는 뜻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로 요약되듯이, 게으름· 필요 이상의 수면·  잡담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 등이 죄악시 된 것이다.  사치와 향락에 빠지는 것도 신의 영광을 더럽히는 행위였다. 

이처럼 베버는 산업과 경제를 주도한 청교도들이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지녔다는 가설을 다른 사실들과 대조·검증한 결과, 청교도의 금욕적인 태도가 거대한 자본축적을 가져왔음을 발견하였다. 

결국 베버는 청교도 윤리인 금욕적인 태도가 자본주의 정신을 탄생시켰고,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의 토대인 자본축적에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 베버 VS 마르크스

토대가  인간의 정신에 의해 지배된다는 베버의 통찰은 마르크스의 철학적 신념에 대한 도전이었다. 

정신과 물적 토대간의 인과 관계에서, 마르크스는 유물론에 근거하여 경제적 물적 토대가 정신· 생산관계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베버는 역으로 정신이 물적 토대에 영향을 미친다며 마르크스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상승이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든다고 보았다. 이는 인클로저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羊毛공업이 발달하자 원료가 되는 양모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는  양모가격의 폭등을 초래하였다. 이렇게 牧羊업의 수익률이 치솟자 자영농민에게 토지를 임대했던 영주들은 임대 토지를 회수하고, 토지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토지를 私有화 하였다. 

이러한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로, 다수의 자영농민은 토지를 상실하고 토지 소유자와 고용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양모공업의 발달이라는 생산력의 상승이 자본가와 임노동이라는 생산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마르크스는 파악하였다.  


◆ 금욕적인 태도가 경제적 토대를 결정

생산력 상승으로 형성된 경제적 토대가 생산관계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논리와 달리, 베버는 원인변수와 결과변수를 바꾸어 놓았다. 상부구조의 정신이 하부의 경제적 토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금욕적인 태도가 어떻게 경제적 토대를 결정할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청교도들은 구원은 현세에서 신이 부여한 과업, 즉 소명(Calling)을 감당하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소명을 달성하기 위해 해가 떠 있는 한, 열심히 일을 하였다. 

신이 부여한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리고 신의 영광을 위해  그들의 삶은 너무나 짧고 소중하였다. 따라서 무익한 잡담, 사치, 과도한 수면등을 줄이고,   소명인 생산에 그들의 힘을 집중하였다.  직업생활에서 게으른 자는 곧 신에게 게으른 자와 동일한 것이었다. 

재화에 대한 염려 또한 ‘언제든지 벗을 수 있는 얇은 겉옷’처럼 성도의 어깨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청교도들은 부의 형성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이처럼 세속에서의  희생과 업적은 구원의 징표로 필수적인 것이었다. 

결국 신이 바라는 청교도의  금욕주의 태도는 거대한 자본의 축적을 가져왔고 근대 자본주의 발달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유권자들의 한 표가 자본주의의 성장의 동력

정치는 권력과 공직을 획득하기 위한 권력투쟁과정으로 이해되어왔다. 이는 합리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사람의 안전이나 행복보다 자신의 안전과 행복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진다는 ‘자기이익의 공리’가 정치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의 이익보다 표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공익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기자가 접해 본 몇몇 정치인들은 그러하였다. 이들은 몇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면서, 힘없고 돈 없는 국민들의 편에서  헌신하는 정치인들이었다. 대정부 질문과 법안 발의 준비로 입안이 다 헐어버리는 의원들도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베버가 말한 소명을 감당하는 리더들이다. 베버가 언급한 ‘금욕의 태도’로 자신들의 명성과 힘의 획득보다 서민들의 이익을 먼저 앞세운다. 국민들이 부여한 과업 즉 소명을 받들고, 나태함 없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국민이란 이름에 기대어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정치 엘리트들의 희생의 태도가 제도를 발전시키며,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베버의 언급처럼 소명의식에 따른 직업윤리는 본래적 자본주의의 정신을 회복시키며, 이는 곧 경제발전의 동인이 되는 것이다.  

4월13일은 국민이 부여한 과업인 ‘소명’을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날이다. 

이러한 소명의 정치인이 제대로 뽑힐 때,  정치인들의 ‘금욕의 태도’가 함께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꽃피우는데 일조하고, 우리의 자본주의를 내실 있게 성장시킨다.  

그러므로 소명으로 무장한 정치인을 선출하는 유권자들의 한 표가 자본주의의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