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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미국 보호무역과 킨들버거의 함정 ] 미국의 디커플링 정책은 킨들버거의 함정을 초래할 수 있어

워싱턴 컨센서스의 기치하에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던 패권국 미국이 보호무역기조를 뚜렷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같은 미국의 경제개혁정책의 전환은 자국의 안보와 경제 안정의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동시에  세계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패권국 미국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만약 미국이 자국의 ‘마당’만을 지키는데 매달린다면, 중장기적으로 1920~30년대 세계가 겪었던 혼돈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 워싱턴 컨센서스

자유무역의 창시자이며 현 패권국인 미국이 금융위기 이래 자유무역과 반대되는 보호무역의 인식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인식 전환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서 ‘트럼프노믹스’와 ‘신워싱턴컨센서스’(New Washington Consensus로의  경제개혁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1990년대 초부터 2017년(금융위기직전)까지 정부의 시장개입을 지양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세계경제질서를 말합니다.  무역자유화, 외국인직접투자촉진, 규제완화, 재정적자축소, 시장에서 금리 결정등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질서가 형성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워싱턴 컨센서스는 기대에 걸맞게, 세계경제의 GDP 대비 대외교역 비율을 상승시켜, 긍정적 효과를 산출하는 positive-sum 게임을 유도하였습니다. 

포지티브 섬 게임은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한 효율성의 산물이었습니다. 

효율성은 비교우위에 따른 무역을 할 때 극대화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반도체 한 단위를 생산하기 위한 A국의 기회비용이 B국의 기회비용보다 낮을 경우,  A국은 반도체에 대해 B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게 됩니다. 반면, 밀 한 단위를 생산하기 위한 B국의 기회비용이 A국의 기회비용보다 낮을 경우,  B국은 밀에 대해 A국 대비 비교우위를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각국은 상대적으로 기회비용이 낮은 재화를 수출하게 될 때, A B국 모두의 실질소득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처럼 한 국가가 비교우위원리에 따라 비교우위에 특화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공급할 때, 세계 전체의 효율성은 극대화 되어 각 국 모두의 후생은 골고루 증가되었습니다.  


◆트럼프노믹스와 뉴워싱턴컨센서스

그런데, 시장중심 자유주의 경제를 옹호하였던 미국이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보호무역으로 경제정책방향을 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은 보호무역지향의 정책은 공화당 정책인 트럼프노믹스와 민주당 정책인 뉴워싱턴컨센서스로 대표됩니다. 

① 공화당 정부의 디커플링 : 트럼프노믹스

트럼프 노믹스의 등장은 무역장벽을 낮추고 비차별원칙을 강조하는 다자간 무역체제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자유무역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노출시켰습니다. 다시말해 이는 워싱턴컨센서스의 산물이며 다자무역체제의 작동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가 세계무역 질서를 조정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중국은 시장원리대신 정부가 특정 산업의 육성을 목표로 하여 선별적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개입의 ‘보이는 손’ 원리를 작동시켰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선별적 간섭이라는 부분입니다. 

정부개입은 기능적 간섭과 선별적 간섭으로 구분됩니다.  전자는 교육·건강등 인적자본투자를 통해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을 말하며, 후자는 특정산업에 저금리 대출, 보조금지급등의 혜택을 제공하여 산업의 생산력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의 정부개입방식은 후자와 관련되었습니다.

즉 중국은 ‘industrial targeting-선별적 정책’의 기조하에,  정부가 산업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목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직간접 수단을 동원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였습니다.

문제는 특정기업에 제공되는 특혜성 선별 정책들이, 미국과 유럽선진국들이 보기에, 시장경제의 기본원칙과 다자간 무역체제의 기본원칙을 위반하는 사항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부가가치를 증가시킨 중국이 선진국의 전략산업에 진입하여 이들 국가들의 경쟁력을 퇴조시키고 실업을 증가시키는 현상은  무역장벽을 낮추고 비차별원칙을 강조하는 다자간무역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등의 대외무역 전략에 자유무역체제와 정반대되는 반자유무역 보호주의로  대응하였습니다.  특정산업목표의 선별적 정부간섭으로 부가가치를 증가시킨 중국이  첨단제조업을 고도화하여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줄이고 무역적자 폭을 확대시킨 상황에 대해, 트럼프행정부는 안보와 기술을 연계하여 디커플링(decoupling) 정책으로 대응한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디커플링은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 기술 분리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트럼프는  디커플링이 중국의 첨단기술획득을 차단하여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트럼프는 전통적인 다자적 규칙을 폐기하고 양자주의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동맹에 기초한 다자적 규칙에 의해 자유주의적 질서를 확장시키는 기존의 방식을 내려놓고, 개별국가와의 개별적 협상에 기반해서 무역적자등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양자주의적 접근을 활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트럼프는 거시적 경제정책 대신 미시적 경제 정책을 선호하였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무역불균형보다 상대국에 대한 관세 부과등을 통해 양자적 국제수지 불균형 조정에 집중한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의 미시적 정책스탠스는 제로섬게임이 작동하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택함으로써,  세계위기의 관리자인 패권자 미국의  의무를  소홀히하였다는 비판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②민주당 정부의 디커플링 : ‘뉴워싱턴 컨센서스’

민주당정부도 트럼프노믹스를 승계하여 디커플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구성을 통해 기술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여 중요기술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정책방향은 2023년 4월, 제이크 설리번 백안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발표한 ‘뉴워싱턴 컨센서스’에 집약됩니다. 

이는 시장중심 개혁을 지향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작동으로 인해 시장의 힘은 커지고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사회안전망이 약화되고 취약계층의 불안정한 삶이 심화되었으며, 급격한 자유화로 인한 경제변동성이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비판이  일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워싱턴 컨센서의 정책 기조인 무역자유화의 혜택을 크게 입은 중국의 성장과 도전이 미국국내제조업에 타격을 주어 실업률을 높였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서 뉴워싱턴 컨센서스로의 전환이 미국의 입장에서 필연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어지는 이유입니다. 

뉴워싱턴 컨센서스의 기본 줄기는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입니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정부의 시장 비개입이라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정반대를 향하는 것으로, 정부가 산업정책에 개입하여 성장을 이끈 개도국의 과거 성장 패턴을 닮았습니다.

또한 뉴워싱턴 컨센서스는 군사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국가들과 패권을 노리는 국가들에 높은 장벽을 치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설리번이 언급한 ‘a small yard with high fence’(좁은 마당에 높은 울타리)가 그것입니다.  군사적 위협을 가하거나 패권을 노리는 국가들에 높은 진입장벽을 치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을  중심(좁은 마당)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겁니다. 

이같은 공급망 재편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 원자재 및 중간재 수급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동맹과 우방국으로 공급망 다변화(Friend-shoring) 혹은 동맹 쇼어링(Ally-shoring) 및 리쇼어링(국내 회귀: Reshoring)을 통해, 중국이 자원과 부품등을 무기화하여 미국의 생산과 안보에 위협을 줄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디커플링은 ‘slowbalization’(slower globalization)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또한 민주당의 디커플링은 첨단 산업 외의 영역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상대적 디커플링(relative decoupling)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차세대 기술 및 고기술 산업에서의 디커플링은 피할 수 없지만, 탈세계화는 아니라는 겁니다. 


◆ 킨들버거의 패권안정이론

미국이 추진하는 보호무역주의와 공급망 재편을 위한 디커플링 정책은 중국의 침투로 약해지는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만한 주요 산업에서 중국의 진입을 차단하겠다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격차를 확대하여 패권국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디커플링 정책이 패권국의 의무를 방기하고 자신의 마당만을 지키는 것에 집중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질서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국제정치경제학자이며 대공황 전문가인 찰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는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패권국의 의무를 강조합니다. 

그의 ‘패권안정이론’에 의하면, 국제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패권국(hegemonic state)은 기축통화(key currency)를 발행하고 국내시장을 외국의 수출품에 개방하고 공정한 무역체제를 만들어 유지하며 무역적자를 떠안아야 합니다.  

즉 패권국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제공하는 기축통화와 공정한 무역질서 그리고 수출시장은 일종의 공공재(public goods)인데, 패권국은  자유주의 세계경제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다른 주권국가들에게 공공재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킨들버거는 이것이 자유주의 세계경제의 패권국이 반드시 수행해야할 의무라고 말합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대공황시기에는 패권국의 리더십이 부재하여, 글로벌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과 금융에서 패권을 상실하고 있었고, 미국은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글로벌 경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 세계적 혼돈을 낳았다는 겁니다.   

국제정치학자 길핀(Robert Gilpin)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현재까지 세계경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패권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킨들버거 함정과 우리의 대응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고립적 디커플링 정책을 강조한다면, 이는 세계의 외교 경제 군사적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을 수 있습니다. 

중국도 기축통화의 부재와 원천첨단기술의 부재로 패권국의 지위 획득이 요원한 상황에서, 미국이 ‘American First’를 외치며 고립주의적 디커플링의 길을 걷는 것은 패권국의 의무인 세계적 공공재 공급의 부재와 이로 인한 세계적 무질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G-0’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G-0’의 상태는 킨들버거 함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킨들버거 함정이란 패권국이 글로벌 공공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공급해주지 않게 되면,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무역갈등이 심화되는 위험을   말합니다. 

따라서 패권국가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패권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주변 국가들과 협력하고 연대하지 않을 경우, 세계질서는 1920~1930년대 식의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현 패권자인 미국정부가 더 이상 자유무역을 위한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국은 공급망의 다변화와 우수인력의 육성등을 통한 첨단기술 축적으로 자급자족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세계 디커플링 시대의 생존수단이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이창수, “미-중 디커플링 정책의 정치경제학과 한국의 대응방안”
박훈탁, “패권안정이론의 시각에서 본 트럼포노믹스 :트럼포노믹스의 정치적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