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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안티고네 ] [ 정치사상사 ① ] 변증법적 진보는 오만의 극복으로부터

관점과 관점간의 충돌은 갈등을 낳습니다. 그런데 갈등은 변증법적 발전을 창조할 수도 있지만, 파국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으뜸가는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의 선과 그녀의 외삼촌인 테베의 왕, 크레온의 선 간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레온은 정-반-합을 통한 이성의 진보 대신  파국을 맞습니다. 오만, 즉 과도한 자기 확신이 그를 파멸로 몰고 간 것입니다. 


◆ 「안티고네」 내용 :  인륜의 법 vs 국가통치의 법



「안티고네」에서의 갈등은 안티고네의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둘러싸고 전개됩니다.  

크레온은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아테네의 법은 반역자를 아테네 영토 내에 매장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런데 폴리네이케스는 외부세력인 아르고스인을 테베로 끌어들여 전쟁에 이기려 했고, 크레온은 이러한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간주하였습니다. 

따라서 크레온이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한 것은 법을 지키고자 하는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반면 안티고네는 인륜의 법에 따라 들개에 뜯어 먹힐 상황에 처한 친오빠의 시신에 매장의식을 치릅니다. 

아테네의 인륜의 법에 의하면, 매장은 죽은 자에 대한 존중과 공익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는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를 불문하고 신성한 존재로 취급되고 신에 버금가는 존중을 받았습니다. 또한 고대그리스 사람들은  죽은 자가 제대로 매장되지 않고 원혼이 되면 공동체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안티고네의 매장행위는 신들의 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크레온은 공동체의 법질서를 지키고자 하였고 안티고네는 대대로 전승된 인륜의 법을 수호하고자 하였습니다. 

종국에 크레온은 파국을 맞습니다. 

크레온은 그의 법을 어긴 안티고네를 석굴에 가둡니다. 안티고네는 석굴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합니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도 크레온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실패로 끝나, 자살을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뤼디케 또한 자결합니다. 

크레온은 살아남아서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모두를 잃었다고 탄식합니다.  


◆ 헤겔의 변증법

헤겔에게 있어 법의 변증법적 자기 발전은 두 선이 충돌 한 뒤, 서로의 한계로 둘 다 부정되고 극복되어 새로운 명제가 나타날 때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이러한 충돌로 파멸을 체험하고, 파멸이 한계로 인한 공포와 연민을 느낄 때, 더 나은 이성의 발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헤겔의 변증법적 발전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선과 선의 충돌과 파멸이 항상 진보를 창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돌이  한계의 자각으로부터 비롯된 공포와 연민을 낳지 못한다면, 충돌은 파국을 빚을 수 있습니다.  

결국 한계의 자각은 겸허함을 요구합니다. 겸허함 대신 오만이 이성을 지배할 때, 이성의 정체와 퇴보라는 위험이 기다릴 뿐입니다.   


◆ 오만이 파국을 낳고

「안티고네」의 핵심 단어는 오만입니다. 

오만(hubris)이란 나르시스적 자기 확신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사고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크레온이 파국을 맞은 것은 그가 오만(hubris)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믿음에 투철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수호의 정신이 폴리네이케스의 매장금지명령을 내린 배경이 됩니다. 
 
크레온은 반역자의 매장금지는 법질서와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크레온의 폴리네이케스의 매장 금지명령은 독단적인 명령이라기보다 정당한 통치행위였습니다. 

그런데 크레온의 통치철학은 ‘과녁을 빗나간 화살’처럼 과도한 자기 확신으로 나아갑니다.   
크레온의 명령이 정당성을 넘어서는 과도한 부분은 반역자라도 아테네 영토 밖에 매장하는 것은 허용되는데,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를 그 어디에도 묻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입니다. 

이러한 크레온의 행위는 인륜의 법에 위배되는 강자의 횡포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매장의식은 죽은 자에 대한 영원한 휴식과 행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휴식은 매장되느냐의 여부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크레온은 이러한 인륜의 법과 신의 법을 거부하고 과도한 자기 확신으로 독재적 통치행위를 범한 것입니다.  

크레온의 오만은 아들 하이몬과의 갈등에서 잘 드러납니다. 

하이몬은 테베시민들이 모두 안티고네의 행위가 정당하며 크레온의 형벌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크레온에게 보편적인 이성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하이몬은 “아버지 말씀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지 마십시오.”라며 크레온의 오만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죽이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크레온의 통치행위가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그가 공적 권력의 오류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점입니다.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통치자의 행위가 인륜의 법을 무시하는 수준으로 진화해간다면,  통치자의 철학은 오류를 수정하지 못하고 전체주의적 국가지상주의로 타락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크레온의 이성은 객관적 이성 대신 도구적 이성에 매몰되었습니다.  

크레온에게 안티고네의 처형은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편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의지와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권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결국 크레온은 자기의 이성만이 옳다는 오만, 오류수정을 거부하는 전체주의적 독재, 그리고 도구적 이성등에 빠져, 인륜의 법과 신의 법을 거부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 변증법적 진보를 위하여

“너 자신을 알라” 

아폴로 신전의 문에 쓰여 있는 이 글귀는 ‘너 자신이 인간임을 알라’라는 뜻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임을 알 때, 신을 흉내 내고 신이 되고자 하는 오만의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나르시스적 자기 확신은 다른 선과의 충돌을 통한 한계에 대한 깨달음을 방해합니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무감각은 더 나은 사고의 변증법적 진보를 막고 성장의 정체와 퇴보를 가져옵니다. 결국 켜켜이 쌓인 정체와 퇴보는 파국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정체와 퇴보를 막기 위해선, 관습· 타인의 이성· 신의 목소리를 새로운 선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나르시스적 오만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선에 대해 입구를 열어 두는 겸허함이 허락된다면, 새로운 선과 자신의 주장과의 변증법적 충돌을 가능하게 하여 더 나은 새로운 명제를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변증법적 진보의 토대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겸허함, 즉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에 대한 민감함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참고 )  [소득주도성장 (임금상승 및 이전소득등의 비임금소득에 의한)과 교육의 평준화 정책이 강성 좌파 진영에서 과도한 자기 확신의 모습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경제상황이 공황이나 장기침체에 있을 경우, 일시적인 경기부양정책으로 효과만을 가진다는 지적입니다. (표학길)

자연성장률이 총수요에 대해 내생적일지라도, 이러한 수요주도 성장이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에 의해 유지되고 소비주도형인 경우에는 인플레이션 유발이나 국제수지악화를 초래하여 향후의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인구감소와 생산성 하락으로 침체에 빠져드는 한국 경제를 성장궤도로 올리기 위해선, 총요소생산성의 증대가 유일한 길입니다.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적자본축적등의 내생적 성장론으로 정책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총요소생산성의 증대는 교육의 개혁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지나친 규제정책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교육의 평준화정책만이 선이라는 강성 좌파 진영의 과도한 자기 확신은 ‘장기에 모두 죽는다’는 케인즈의 주장을 실현시키는 지름길이 될 뿐입니다. ]


<참고문헌>
민윤영, “안티고네 신화의 법철학적 이해”
차미란,“헤겔과 라캉의 「안티고네」 해석: 비극의 윤리적 의미”
표학길, “투자주도 성장정책의 이론과 정책의 국제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