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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 대의 민주주의 ] 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퇴보하나?

-주인 대 대리인 문제, 대의제 붕괴 초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대부분의 정치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정치제도입니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제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작동을 둘러싼 문제점들이 심심찮게 정치현장에서 발견되고 있어서입니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대의제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퇴보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지가 정치개혁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 대의 민주주의란?

민주주의는 인간이 고안한 정치제도 중에서 정당성에 대한 수용성이 가장 높은 정치체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민주주의와 조합되는 다양한 정치제도가 정치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직접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등이 정치현장에 실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주의체제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직접민주주의를 제외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의 민주주의는 popular sovereignty(인민주권)라는 민주주의 이념에 대의정부라는 운영방식이 합쳐진 정치제도로 요약됩니다.  

즉, 주권자인 시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려 줄 대표자들을 선택하고, 그 대표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대의 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가 공동체의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 대의민주주의 등장 이유 (이동수)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력이 선거를 통해 정부와 의회에 위임되어 행사되는 제도입니다.  

근대국가가 고대 도시국가에서 운영된 직접민주주의 대신 위임에 의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두 가지 해답들- 기술적인 문제 해결과 통치자의 탁월성을 위한 것-이 있고, 학자들은 대체로 후자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① 대의제는 통치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통치할 공간의 규모와 시민의 시간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우선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탁 정치가 나타났다는 지적입니다.   

근대국가들의 영토는 고대 도시국가의 그것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직접 통치 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그 규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 규모'(human scale)에 걸맞은 제도로 대의민주주의가 채택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인간적 규모’란 한 사람이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을 모두 알 수 있고,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으며, 각 구성원들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향에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규모를 뜻합니다. 현대사회에서 허용하는 그와 같은 규모는 대략 500명 정도입니다.) 

또한 근대인의 시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의민주주의가 도입되었습니다. 근대 시민들은 생산을 위한 노동등 생활문제를 노예등에 맡기는 대신 직접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시간을 사적인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시민들은 공적문제에 관여 할 여가 시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의사결정이 자신들의 의사를 대리할 자들을 세워 행사하게 된 배경입니다. 

② 근대 대의제가 확립된 것은 기술적인 배경보다 질적인 목표를 위해 직접민주주의 대신 대의제가 채택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메디슨(James Madison)의 견해를 지지하는 마넹(Bernard Manin)은, 대의제는 선거를 통해 탁월한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로 이해하였습니다. 

여기서 메디슨과 마넹이 정의하는 탁월한 대표란  “사회의 공동선을 분별할 수 있는 최상의 지혜,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덕을 가진 사람”을 지칭합니다. 

즉 메디슨에 의하면,  선출된 현명한 자는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가장 잘 분별할 수 있고, 그들의 애국심과 정의에 대한 사랑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나라의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을”통치자로 이해했습니다. 

결국 직접민주주의를 기각하고 근대 대의제가 채택된 것은 수탁자인 대표의 덕성, 곧 공동선 추구와 자신의 이익 대신 국가의 이익에 대한 헌신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 주인 대 대리인 문제



메디슨과 마넹의 견해에 따라, 대의제는 국가의 주인인 시민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대리인인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리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고 애국심과 정의에 입각하여 통치를 행할 것을 기대하는 위탁제도로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탁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인 대 대리인 문제입니다.  

주인은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대리인은 주인의 이익과 상충되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의 발생은 당사자 간에 정보 비대칭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주인은 중고차를 구입할 때 그 차가 고품질의 차인지 레몬인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대리인이 주인을 위해 성실히 임무를 수행할지를 주인은 제대로 파악하기가 사실 힘듭니다. 

그렇다 보니 주인은 역선택을 하거나 대리인은 주인 몰래 주인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도덕적 해이를 범합니다. 주인에게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진실 된 정보를 감추는 등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리인은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이 주인인양 행세하고 주인을 자신의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레몬이 마침내 자신이 레몬이 라고 본색을 드러낸 겁니다. 

주인은 그 차가 레몬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도로에서 고장 나 멈추어 섰거나, 주변차를 들이받고 사고가 난 뒤에야 비로소 이를 알기 때문입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결국 후과를 지불합니다. 

이러한 대리인 문제는 주주-경영자, 국민-선출직 공무원(국회의원, 대통령등)관계등에 빈번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  대의제와 당내 민주주의의 퇴보

근대가 대의제를 채택한 이유는 탁월한 이들, 곧 공동선을 지향하면서 시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 통치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동수)

그런데 대의제는 주인-대리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리인인 정치수탁자들이 위탁자 주인인 시민의 동의를 얻지도 않고 시민의 이익과 나라의 이익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정치학자들은 대의민주주의에 나타나는 병폐인 이러한 대리인 문제를 ‘대표의 실패’로 표현합니다.  대표자가 자신의 사익추구등과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위탁자인 시민의 의사를 탐색 대변하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러한 대표의 실패는 곧 정당정치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대의제의 정치인들이 시민 전체의 이익 대신 부분의 이익, 즉 당파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에 대표의 실패가 나타났다는 지적입니다.(윤성현)

마넹도 이런 점을 비판합니다. 

오늘날 대의제의 한계는 ‘탁월성의 원칙’에 입각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대의제의 기본정신이 정당민주주의하에서 훼손되어, 결국 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데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정당의 대표들이 시민들의 이해로부터 독립되어 공동선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단지 정당과 정당의 운영자들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동수) 

특히  당파적 이익추구는 국회의원이 자유위임관계를 부정하도록 합니다. 

헌법 제46조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원이 당파적 이익에 복종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경우,  정당은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경계 밖으로 몰아냅니다.  “진영의 울타리를 쳐놓고 그 구성원들에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2015, 유승민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 연설문) 

이와 관련하여, 정당 민주주의의 파괴는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정당의 의사결정이 소수집행부에 의해 과두정처럼 운영되는 것)으로부터도 비롯됩니다. 

예컨대 선거에 앞서 행해지는 당내 후보 선출에서, 윤심, 명심등 보스의 의지가  당원들의 후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투표율에서 당심이 민심을 추월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과거 3김 시대의 보스정치, 마피아정치를 답습할 경우, 정당민주주의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사슬에 묶여 퇴보를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결국 정당민주주의가 당파적 이익과 전체주의적 사상을 강요할 때, 대의제 민주주의는 속절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지식인들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쿠데타로부터 오기보다, 대의제의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심판(referees)을 압박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게 될 때 나타난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심판이란 법원,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규제기관등을 지칭합니다. 

즉 시민들의 이익과 인권보호를 바라는 지식인들은 선출직 정치인들이 심판들의 판정을 피하기 위해 법률을 바꾸는 등으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는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적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버드대의 스티븐 레비츠기 교수등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는 선출된 자가 권력을 잡은 이후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승리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고치고, 사법부를 개편하는 등의 비슷한 형태로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어 왔음을 지적합니다. 

결국 민주주의 붕괴는 주인의 대리인들인 정치인들이 이처럼 양심도, 대의도, 시민적 숙의과정도 추월하여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게임의 룰을 자의적으로 변경할 때 나타 날 수 있습니다. 


◆대의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인과 대리인 문제로 나타나는 대의제의 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당론기속의 최소화, 자유투표의 확대, 치열한 내부 논의등의 진정한 당내민주화, 또한 주인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조사등이 포함된 숙의민주주의의 도입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시민의 인권과 관련된 법률 개정사항에서, 시민의 숙의 과정이 배제 된 너섬에서의 양당의 합의가 어떻게 한국 전체의 합의로 치환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의원들이 자신들은 시민의 대리인이므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고  배짱을 내밀지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이 합의에 대한 부인은 또 다른 국민 사이의 갈등을 초래 할 수 있어, 시민의 바람직한 자세는 합의의 추인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서글플 따름입니다. )

무엇보다 대의제의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시민들이 다시 깨어나는 것입니다. 생활에만 매몰되어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태만히 한다면, 이는 때늦은 후회로 인해 자신들을 자책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 유권자인 우리는 다음 선거에서 집단적 편향성에서 벗어나, 당파적· 부분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공동선과 시민의 진정한 안위를  염려하는 대리인들을 선별하는 합리적 노력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즉 후보 지지기준이 후보가 파란당 소속이므로, 또는 빨간당 출신이므로 뽑는다라는  기계적 기준대신,  후보가  진정으로 대의제의 대리인지 여부가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의민주주의가 더 이상 관객민주주의 아닌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6월에 참여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대해봅니다.  


<참고문헌>
이동수,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
윤성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하이브리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