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 미국의 철학자 드워킨(Ronald Dworkin)이 언급한 이 말은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입니다. 많은 것을 알지만 이것들을 하나로 꿰지 못하는 여우와 달리, 고슴도치는 가치들을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여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가치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하나로 이해하는 고슴도치적 태도에 대한 사례가 자유와 평등이 하나의 통일체로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자유주의적 평등론과 교육개혁 능력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자유주의는 타고난 재능과 여건을 마음껏 발휘하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여기에 생산적인 노력이 더해져서 지위와 부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도록 법적· 제도적· 관행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파레토 균형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이끌어,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합니다. 또한 개인의 상승욕구를 채워주게 되어, 계급의 유동성을 촉진시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는 가정의 문화자본등 여건이라는 우연변수가 성과를 좌우하는 불공정성을 초래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합니다. 즉 형식적 기회균등이 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 직원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희소한자원의 공정한 배분원리에 대한 논쟁으로 읽혀집니다.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정한 자원배분의 원칙은 능력주의, 즉 능력에 따른 보상입니다. 타고 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유롭게 경쟁하여, 이러한 능력에 비례하여 지위나 부등을 배분받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그의 저서 ‘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지나친 능력주의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따라서 능력주의는 일면적 편향적 해석으로 이해 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형식적 기회균등에 근거한 능력주의 ①능력주의와 형평성: 능력주의는 능력과 보상의 비례적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자원의 배분원리입니다. 마이클 영에 의하면,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노력의 총화인 능력(능력=IQ+노력)이 인간의 지위나 부를 결정합니다. 능력이라는 투입이 지위를 산출하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능력주의가 지지하는 자원배분의 공
최근 재난지원금 지급과 맞물려,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미래 기술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대한 우려, 총수요 부족, 프레케리아트(precariat, 안정된 일자리 취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계층)를 위한 사회보장책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적어도 단계적으로 무조건적, 보편적, 정기적, 현금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의 주요 정체성을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본소득의 주요 정체성은 탈 노동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며, 저녁 시간에는 비판’을 하는 삶, 이러한 삶이 내뿜는 기운은 곧 자유입니다. 소득을 위해, 매력적이지 않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으로부터 탈출하여 스스로 자유로운 시간을 통제하는 자유 말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왕국’은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각자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삶이 영위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왕국은 안정된 물질적 기반에 의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이고 충분하며 정기적인 현금을 제공함에 따라 건설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본소득의 정체성은 돈을 벌
미국이 코로나 방역의 실패와 흑인들의 격렬한 시위로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갈등과 반목의 사회로 쪼개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19 사망과 미국 공공의료보험의 부재 지난 31일 기준으로 미국의 코로나 19 사망자는 10만6000여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다수의 사망자를 낳은 것은 전국민 공공의료보험을 갖추고 있지 않아, 흑인과 유색인종등 취약계층에 속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흡곤란이나 발열증상이 있다면 즉각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은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여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 미국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부재와 소극적 자유주의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불비는 미국사회의 주류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주류 사회는 행복을 로크식 자유주의, 즉 방해를 제거하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극적 자유주의는 미국의 제도가 공공적 지향성을 심각하게 퇴화시키는 배경이 됩니다. (이재승) 실제로 연방헌법은 행복추구권을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립선언에 포함되어 있던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배제되어, 인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면역을 ‘실험’하고 있는 스웨덴당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집단면역의 성공기준은 50~70%의 항체생성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선 3500명이상이 희생하여 항체를 가진 인구가 약25%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연대와 공동체주의에 근거하여 사민주의정신을 추종하는 스웨덴 당국이 오히려 공리주의자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웨덴당국을 집단면역 실험으로 몰고 갔을까요? 이는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정책과 무관하지 하지 않습니다. ◆ 스웨덴의 가치들의 결합 : 집단가치+ 개인가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조건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보편적 의료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입니다. 누구나 공동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누구도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합니다. 때문에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고부담의 수술을 거의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료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료공급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스웨덴의 의료체계는 세금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함께 이겨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료 시민을 돕는 행위는 어떤 원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정의의 원리일까요 ,연대의 원리일까요? ◆상호부조는 정의감의 발로 상호부조가 정의의 발로라는 주장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불운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엔 부의 몫이 같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천부적 능력의 불평등 탓에, 게다가 주어진 재능의 개발과 성숙이 가정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에, 제약된 사회의 자원은 사람들 사이에 배분을 달리합니다. 또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 사건에 의해 자연적 배분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눈먼 운’(brute luck)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개인은 불운을 통제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결과는 보상을 통해 바로잡아져야 합니다. 우호적이지 않은 여건이 열악한 처지를 만들었다면,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의 의무는 자연의 수혜를 받지 못한 이들의 처지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당연히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유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회의 성원은 불평등한
가치를 창조하는 데는 예상치 못한 변동(이에 대한 대처 역량)이 크게 기여합니다. 민주당의 4.15총선의 압도적 승리도 전통적인 세대효과에 있기보다 이러한 surprise, 위험(이에 대한 대처 역량)에 빚져있습니다. ◆ 자산가치 공식 환경적 특수성으로 표현되는 위험, surprise가 가치를 창조하는 실질적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간단한 자산 가치 공식으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실현된 가치(announcement)=기댓값(expected part) + 위험(surprise)” [이 식은 다음처럼 자산가치의 변동률(수익률)로 달리 표현될 수 있습니다. “실현된 수익률 = 기대수익률 + 예상치 못한 변동률”] 예를 들어 A기업 주식가격이 오늘 180원으로 결정되었고, 기댓값과 surprise는 각각 130원 50원입니다. 그런데 실현된 가격 180원은 과거 불확실성하에 예상되었던 기댓값 130원과 차이를 보입니다.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event)들이 발생하여 50원의 변동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변동(unexpected variation)은 surprise, 또는 innovation라 불립니다. 이는 장기평균 추세선으로
이번 4.15총선 특징의 하나로 정치 주류의 교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정의 주요 의사결정의 표준이 과거 보수우파의 그것에서 진보좌파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언론들은 이에 대한 근거를 더불어 민주당이 최근 전국단위 선거에서 4번 연속 승리(2016년 20대 총선,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하였다는데서 찾습니다. 특히 주류교체의 요소로 세대효과를 강조합니다. 인구 구성의 변화가 주류교체의 단단한 지반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 과연 이론으로 수용 가능할까요? ◆ 무엇이 추세변화를 가져오나? 정치주류의 교체는 이념의 추세가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추세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는 지적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이념의 경향성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향성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이에 대한 세 가지 가능성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허석재) 우선 구성원이 바뀔 때 추세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대효과 또는 출생시기를 공유하는 코호트효과입니다. 과거 청년들은 장년이 되듯이 사회 구성원은 순환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세대교체로 인해 이념의 추세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거친 파도로 인해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여객선 버지니아호에서, 피아노의 바퀴 고정 장치를 푼 나인틴헌드레드(1990)는 연회장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왈츠를 연주합니다. 격랑도 마법 같은 그의 연주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떠한 충격에도 평형상태를 유지하며 마음의 중심을 잡습니다. 1900년 1월 1일, 버지니아호 연회장의 피아노 위 상자 안에서 갓난아기로 발견된 나인틴헌드레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즉흥 음악으로 표현해 낼 만큼 천재적 피아노 실력을 발휘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육지를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상에서 단박에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한 여인을 찾아 육지로 떠나는 발걸음도 되돌립니다. 육지에서, 생활인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건만, 그의 천재적 음악 감성이라면 거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건만, 이 모든 달콤한 기회조차 내려놓습니다. 결국 그는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은 채, 여객선 악단의 피아니스트로, 생활인이 아닌 美의 창조자로 바다위에서 살아갑니다. 그가 써내려 가는 삶의 책 등을 한 손으로 받치며, 비록 죽음이 그를 위협할지라도, 평생 균형을 유지해 갑니다. 그렇게 유혹하는 욕망의 지나침에도, 깨지기 쉬운 용
베버(Max Weber)는 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신념과 행위의 일관성만을 강조하는 신념 근본주의에 빠져, 행위와 결과의 일치를 주장하는 책임윤리를 배격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념윤리 현실 초월적이고 근본적인 이념과 행위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존경받을 만한 행위입니다. 루터의 신념에 찬 행위는, 베버의 언급처럼,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터는 교황청이 판매하는 면죄부가 구원에 대한 성경적 원리(칭의,稱義)에서 벗어난 것이며, 독일시민에 대한 착취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521년, 면죄부를 판매하는 로마교황 레오 10세는 당시 독일의 통치자 찰스5세에게 루터의 복종 또는 사형을 부탁합니다. 찰스 5세는 루터에게 자신의 신념을 굽힐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자신의 신념이 성서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그 요구에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단호히 밝혔습니다. 이후 그는 친구 프레더릭의 보호를 받으며 라틴어로 쓰인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라틴어를 모르는 평민들에게 전파하였다. 이처럼
필연과 꿈의 긴장은 그 둘 사이의 화해를 요구합니다. 마법의 열쇠로 어두컴컴한 필연이란 監獄의 자물쇠를 열고 그곳에서 탈출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빛나는 꿈의 城을 몽상할 뿐입니다. 열쇠공 진철이 그렇습니다. 닫힌 남의 집 문은 귀신같이 열어도, 자신의 답답한 현실로부터 탈출할 열쇠는 정작 쥐고 있지 못합니다. 그의 아내와 큰 딸은 집을 나갔습니다. 가족이 아파트에서 함께 오순도순 살아 보겠다는 꿈, 지구 반대편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해보겠다는 소박한 꿈은 그저 꿈꾸기에 그칠 뿐입니다. 이러한 꿈과 현실간의 괴리가 가져오는 긴장은 어느새 진철에게 냉랭한 체념으로 전환됩니다. 그런데 진철의 폐쇄된 우리에 열쇠구멍 같은 크기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듭니다. 신문사 편집 기자인 진철의 작은 딸 은서가 살던 집의 계약 만료로 새 집을 구하기 전까지 진철과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창 없는 방의 벽에 붙어 있는 환상적인 푸른 바다와 하늘이 그려진 달력 그림을 바라보며 몽상에 젖어 있던 진철의 마음에 봄날의 따뜻함이 다시 스며듭니다. 은서를 위해 복숭아 김치를 담그고 핑크색 수건을 준비합니다. 밤 늦게 퇴근하는 은서를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갑니다. 이렇게 진철을
제도 도입은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익 충돌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제도 도입으로 한 집단의 이익이 높아지면, 또 다른 집단 의 이익이 감소하는 음(-)의 상관관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제도 개혁의 성패는 이해관계들 간의 이익 조정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이에 대한 실례의 하나입니다. 과로사 위험이 가중되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근로시간단축이 법제화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경쟁력 약화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 제고도 저성장 저물가라는 작금의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경제 분야의 핵심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논의 배경 근로시간단축이 가져오는 이해 관계자들 간의 이해 상충관계에 대한 해법으로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의 확대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즉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의 논의는 2018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주52시간 근로상한제한의 법제화로부터 비롯됩니다. 주당 최다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의 삶의
패스트트랙으로 올라간 법안 중 검경수사권조정에 대한 여야의 견해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사법개혁을 둘러싼 논쟁은 준사법기관으로 검찰에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검찰외의 기관, 예컨대 공소권을 갖춘 공수처를 추가로 허용할 것인가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즉 한편에선 세계 어디에도 공소권을 가진 공수처 같은 준사법기관은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쪽에선 세계에 유례가 없는 입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검찰이 사회문제의 최종심판자로 나서고 있다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 기소권을 보유한 공수처를 지지하는 논거 기소권을 보유한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한 논거는, 로마법언 또는 common law의 언급처럼, 일반적으로 자기 정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수사권 및 기소권이 있는 기관이 검찰을 통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심판자이면서 당사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므로, 사람은 자신의 사건에 대한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로마법언)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는 경우에 자기 사건을 자신이 조사 할 수 없다.”(미국 common law)] 즉 자기편 사건을 자기기관이 제대로 수사, 기소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각자에게 그의 (정당한) 몫을’ 우리는 이 正義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체계로 이해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존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형식이 ‘빈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곧 이르게 됩니다. 형식을 채우는 내용은 우리의 열정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때문에 고된 노력, 뜨거운 갈망으로 각자의 몫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라는 과녁에의 명중 여부는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인 활과 화살의 우수함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곧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불공정한 조건에 대해 ‘정의가 있는가?’라고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곧 거두고 운명에 순응합니다. 자연의 우연한 작용이라는 運의 위력에 의해, 열정에 대한 응분의 대가는 얻어 질 수 없다는 체념에 젖게 되는 겁니다. 왜냐면, 운은 나의 의지와 분리된 힘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건에 대한 의문과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 그간 2개월여 간, 우리는 출생의 조건이 낳는 왜곡된 사회 구조를 씁쓸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운이 정당한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컨대 어떤 농부가 정성껏 농사를 지었는데 예측하지 못한 태풍과 홍수로 농사를
1990년대 이후 부상한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정부들이 우파 정당들에게 정권을 빼앗기며 퇴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선 현재 극우 성향 정당인 사회자유당의 자이르 메시아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정권을 맡고 있습니다. 보우소나루대통령은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 '열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극우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칠레에선 현재 좌파 성향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을 이어 중도 우파성향의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대통령입니다. 그는 억만장자로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의 다수의 유권자들이 좌파 정부와 결별하고 우파 정당을 지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의 퇴보, 그 원인은? (이상현외) 우선 유권자들의 좌파정부에 대한 반감은 좌파정부의 평등 지향적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입니다. 과거 좌파정부의 부상은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해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좌파정부의 정권획득으로 이어졌고, 좌파정부는 극빈층의 지원정책〔브라질 룰라정부의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베네수엘라의 미션(Misión), 아르헨티나의 헤페스 이 헤파스 데 오가르(Jefes y Je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