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가 단단한 기술이라 믿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언어와 상징입니다. 정치학자 머레이 에델만은 정치를 ‘불안의 상징적 관리’라 했습니다. 때로는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때로는 권력을 위해 불안을 만들어내는 위험한 예술은 곧 정치입니다.
정치는 종종 우리의 불안에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합니다.
바로 ‘두려움(Fear)’의 설정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불신’이라는 사회의 막연한 불안을 가져와, 사법부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정치는 이를 개혁해야 한다며, 사람들의 모든 분노를 그곳으로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그 어둠 위에 한 줄기 빛을 비춥니다. ‘욕망(Want)’의 제시입니다. ‘국민을 위한 사법’, ‘완벽히 공정한 재판’이라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아름답고 순수한 이상을 제시합니다. 이 매력적인 구호 앞에서,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따르고 싶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그 빛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을 지정합니다. ‘가능성(Possible)’의 독점입니다. 자신들이 설계한 법안만이 이상을 실현할 유일한 칼이라고 말하며, 다른 모든 길을 막아섭니다.
이 세 단계를 거치며,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어둠 속으로 빠져듭니다.
(검찰청 폐지도 이러한 삼단계 축을 거쳐 완성되었지요. 검찰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여 대중에게 검찰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수사 기소 분리를 통한 권력독점의 해체라는 욕망을 심어주고, 검찰청 폐지가 유일한 민주화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외쳤지요.)
에델만이 경고했듯, 상징이 조작될 때, 그것은 치유가 아닌 혼동의 칼이 됩니다. 사회는 둘로 나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기둥엔 균열이 생겨, 국민의 안전은 위협받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엔 깊은 공포가 자리합니다.
◆토마소 알비노니의 ‘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 g단조’
이 깊은 공포와 혼동의 시대를 위로할 음악이 있을까요.
토마소 알비노니의 ‘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 g단조’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1)는 바로크 후기 베네치아 출신 작곡가로, 흔히 ‘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 g단조’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20세기 이탈리아 음악학자 Remo Giazotto(레모 자초토)의 창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Giazotto는 알비노니의 작품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 중, 드레스덴 도서관의 파괴된 소장본 잔해에서 알비노니의 삼중주(trio sonata)의 일부 저음부(basso continuo) 및 멜로디 조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 단편을 바탕으로 이 아다지오를 재구성하거나 새로 지은 것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현재 음악적 허구(musical mystification)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는 거의 Giazotto의 창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저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에서는 저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가 곡의 기반을 이룹니다.
오스티나토는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 '완고한(stubborn)'이라는 뜻을 가진 음악 용어입니다.
음악에서는 특정한 음형, 리듬, 또는 멜로디의 짧은 악구가 곡 전체에 걸쳐 같은 성부에서 같은 음높이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같은 성부 (Same Voice/Part)란 예를 들어 '바소 오스티나토'라면, 이 반복되는 패턴이 계속해서 베이스 파트(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갑자기 바이올린이 그 패턴을 연주한다면, 그것은 오스티나토라기보다는 '주제의 모방'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음높이 (Same Pitch)란 음높이까지 같은 것으로, 청중은 같은 피치일 때 " 그 패턴이 또 반복되는구나"라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에서는 저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가 곡의 기반을 이룹니다.
이는 오르간이나 첼로, 콘트라베이스 같은 저음 악기가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고정된 저음선율입니다.
이 저음선율은 곡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반복되며, 그 위로 현악기들이 애절하고 서정적인 선율을 쌓아 올립니다. 이 반복적인 패턴이 곡의 슬프고 깊은 감정을 강조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몰입감을 느끼게 합니다.
오스티나토 기법을 사용하여 작곡된 대표적인 곡이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의 ‘캐논 D장조’입니다.
알비노니 아다지오는 슬프고 비극적인 분위기인 반면, 캐논 D장조는 밝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1680년경 요한 파헬벨이 작곡한 순수 바로크 음악입니다.
캐논 D장조의 기반에는 8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오스티나토 저음선율(D–A–B–F♯–G–D–G–A)이 28번 반복됩니다. 이 저음선율은 고정된 틀을 제공하며, 그 위에서 3대의 바이올린이 점차 복잡한 선율 변주를 쌓아갑니다.
오스티나토는 곡의 안정감을 유지하며, 폴리포니적 선율들이 자유롭게 얽히도록 돕습니다
여기서 폴리포니(polyphony)는 "다수의 소리"라는 뜻으로,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이 동시에 연주되며 상호작용하는 음악적 구조를 말합니다. 이는 단일 선율에 화음이 반주하는 호모포니(homophony)와 구분됩니다.
◆ 곡의 구성
알비노니 아다지오는 세부분으로 구분됩니다.
① 도입부: 엄숙한 시작
곡은 오르간과 첼로, 콘트라베이스 같은 낮은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반복적인 저음 선율(오스티나토)로 시작됩니다. 특히 저음 현악기는 활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현을 퉁겨 연주하는 '피치카토(pizzicato)' 주법을 사용합니다. 이 엄숙한 분위기의 도입부는 앞으로 전개될 비극적인 멜로디의 감정적 토대를 마련하며 긴장감을 서서히 쌓아 올립니다.
② 주요 멜로디: 감정의 심화
도입부가 끝나면 바이올린과 같은 고음 현악기들이 등장하여 애절하고 서정적인 주요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이 슬픈 선율은 곡의 중심적인 감정을 이끌어 나갑니다. 저음부의 피치카토는 계속 반복되며 구조적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고음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대조를 이루며 곡의 감정을 점차 고조시키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③변주와 절정: 감정의 폭발과 마무리
마지막 부분에서는 솔로 바이올린이 등장하여 주요 멜로디를 다채롭게 변주하며 독주를 펼칩니다. 모든 현악기들이 점차 강렬하게 합주하며 감정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이 극적인 절정이 지나간 후, 곡은 다시 서서히 잦아들며 g단조의 깊고 애잔한 슬픔의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됩니다.
◆ 슬픔과 비탄
곡 전체에 흐르는 감정은 깊은 슬픔, 비탄, 그리고 장엄한 애도입니다.
이우울한 선율을 따라 미래를 그려봅니다. 상징의 홍수 속에서 개혁의 미명 하에 우리가 상실한 것은 정녕 무엇이며, 이 어두운 선율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또 어떤 공포와 마주하게 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