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의 3대이론으로 현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구성주의가 꼽힙니다.
이 중 구성주의는 1980년대 후반, 현실주의· 자유주의등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부상한 이론입니다.
주류이론인 현실주의는 물리적 힘, 경제력등 합리적 요인이 국가의 행위, 국제관계를 설명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구성주의는 행위자의 관념과 공유된 이해가 현실을 규정한다는 두 가지 가정에 기초하고 하고 있습니다.
◆ 구성주의의 두 敎義: ①관념
구성주의에 있어, 구조를 바꾸는 것은 물리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국제관계등 현실세계를 결정하는 우선적인 힘은 경제력등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구성주의는 물리력을 현실세계 창출의 독립변수로 배제하지 않습니다. 단지 관념을 통해 부여되는 이차적 지위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관념(idea)이란 규범, 행위자의 정체성, 가치, 인식등 주관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의 안보상황이 물질적 힘의 분배(distribution of power)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반면, 구성주의는 국제정치가 인식의 분배(distribution of idea)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1990년대 초, 소련 몰락 후 수립된 16개 신생독립국가들의 대러 정책이 이에 대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 중 어떤 나라들은 구소련과 다시 경제 관계를 맺은 데 반해,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와 경제관계를 축소하거나 단절하였다.
그런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발생시켰는가가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신생독립국들의 대외 경제정책이 단순히 객관적 경제이익의 득실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리투아니아처럼 러시아로부터 큰 흑자를 내고 있었던 국가는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축소하였지만, 대러 무역구조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적극적으로 경제관계 재개를 원하였습니다. 현실주의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구성주의 이론은 국가정체성이 각기 다른 대러관계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리투아니아는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서유럽 국가였는데, 소련이 2차대전 직후 리투아니아의 주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소련의 일부로 편입시켰다는 정체성담론이 리투아니아의 대러관계의 단절을 야기하였다는 분석입니다. 러시아의 경제관계의 지속은 단기간의 경제 이득을 가져오지만, 리투아니아의 서유럽정체성을 훼손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의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리투아니아 정부는 파악한 겁니다.
반면, 벨라루스는 친러시아 국가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단기적으로 대러무역 적자를 경험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상호의존성에 의해 장기적으로 이득을 얻을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이처럼 관념이란 정체성이 국가의 행위와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변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 구성주의의 두 교의: ② 간주관성
국제관계가 정체성등 관념에 결정된다면, 행위자들의 정체성은 자연적으로 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관념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됩니다.
다시 말해 사회현상은 자연적 사실이 아닌 사회적 사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자연적 사실은 인간의 인식과 별개로 존재하는 실증적 사실이며, 사회적 사실은 구성된 사실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는 나무를 무어라 부르든 광합성을 통해 성장하는 식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점은 자연적 사실입니다. 반면 종이가 지폐가 된 것은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의한 것입니다. 이는 집합적으로 합의가 되어 실제성을 갖게 되는 구성된 사실, 즉 사회적 사실입니다.
구성주의는 사회적 현상이 이러한 사회적 사실로 이루어졌다고 전제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성되는 집합적 아이디어(collectively held ideas), 즉 공유하는 관념이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는 겁니다.
구성주의는 이러한 집합적 아이디어(공유 관념)를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 일컫습니다.
결국 정체성, 규범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성되는 ‘집합적 아이디어’, 즉 간주관성의 일종입니다.
◆ 세상의 변화는 사람의 관념에 의해 이루질 수 있어
현실등 국제관계가 물질적 요소보다 믿음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는 구성주의 이론에 의존한다면, 세상의 변화는 사람의 믿음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책혜방)
아무리 지금의 현실이 삶을 괴롭힐 지라도, 과거의 상처에 집착하여 빠져나오지 못하기보다 앞으로의 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현실의 바닥을 헤치고 일어설 때,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바닥을 딛고 설 수 있는 것은 거울이론(mirror theory)에 가능합니다.
Master인 행위자가 행위의 모범을 보였을 때, 그 행위가 곧 다른 행위자의 정체성 확립에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이를 모방한 행위자는 새로운 행위유형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두 행위자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는 국제정치든 개인의 현실이든 불문하고 적용되는 이론으로 평가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호관계에 놓여 있는 두 국가 중,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행위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긍정적 행동을 하였을 때, 결국 다른 국가는 그 기대에 부응하여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자기 충족적 기대(self-fulfilling prophecy)의해 두 국가는 규범을 함께 공유하게 되고, 이러한 공유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됩니다. (한국정부의 일본을 향한 화해노력도 이러한 일환으로 이해되어집니다.)
종합하면, 객관적인 물질의 힘이 현실을 낳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힘이 지금과 미래의 상태를 창조하게 됩니다. 따라서 거울이론과 자기충족적 예언에 의해 누워있는 바닥을 딛고 일어설 때 실제로 새로운 구조가 창조될 수 있다는 겁니다.
<참고문헌>
책혜방, 「정체성의 국제정치와 중미 무역 분쟁」, 한양대 석사학위논문
이용욱, “구성주의 국제정치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