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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 말씀 QT ] [ 본질과 현상 ] 말씀이 현상을 다스리며 (요한복음 1장, 1절~3절)

 

본질과 현상

 

우리는 삶의 본질과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진리란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관념이며, 이에 대한 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본질대신 보이는 현실인 현상을 쫓는 경향을 보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럴 수 있습니다. 진리의 터 위에 서기보다 현상에 매달려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기 쉽습니다.

 

그러나 참된 현실과 신앙은 진리의 터 위에 설 때 완전할 수 있습니다. 본질과 궁극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생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뿌리 없는 삶입니다.

 

진리를 알고 삶이 진리 위에 세워질 때, 우리는 현상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에서 상황의 변화에도 요동하지 않는 반석위에 선 인생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의미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1세기 후반, 85년경에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은 4복음서라 불리워지며 공관복음서와 차이를 보입니다.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은 같은 관점에서 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지칭합니다. 


이 복음서들은 갈릴리 사역 중심, 연대기적 순서, 예수님의 공생애 동선 추적 등에서 공통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중심 동선을 따라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교감을 조명하며 그리스도의 의미를 독자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은 구약성경의 배경에 기초하여 헬라적 관점에서 해석한 변증적 복음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헬라적 사고 구조(헬라철학)는 이원론입니다. 헬라철학은 를 이데아, 본질의 세계로 보고, ‘아래’(육체와 현상의 세계)를 본질의 모조품, 그림자의 세계로 봅니다. 그리고 아래의 세계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아래 있는, 늙고 병들어 죽는 세계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물질세계를 장차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들어찰 영역으로 봅니다.

 

그런데 아래의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찬 세계로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 영·진리·영원의 세계에서, ‘아래의 물질·현상·시간의 세계로 침투한 존재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는 물리적 공간에 구약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위(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온 분으로 선포하는 이유입니다.


요한복음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 곧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인 영생 공동체로 나올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영생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초청장인 것입니다.

 

 

1, 1~3

 

1~3절이 속한 서문(1~18)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던 말씀이 어떻게 보이는 세계인 시간과 역사로 오게 되었는지를 증거합니다.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역사의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드러낸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1(a).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처음에 그 말씀이 있었다/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말씀은 우주에서의 말씀(로고스)’의 활동을 장엄하게 선포하며 시작합니다.

 

태초(아르케)는 기원, 절대적인 제1원인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는 만물의 기원과 제1원인이 로고스(말씀)임을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헬라철학에서 말씀, 곧 로고스는 우주에 편만한 이치입니다. 스토아 철학에선 로고스는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이성적 원리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계시,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자기 표현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를 의미합니다. 즉 말씀이 의인화(인격화)되어, 말씀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아들로 사용된 것입니다.

 

결국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원하고도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1(b).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절 후반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과 하나이신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기원이 하나님의 영원성 안에서, 하나님의 가장 깊은 본질 자체에 근거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고스인 말씀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영원한 신적 로고스가 성육신하여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결국 신성을 지녔고 창조와 계시와 구원의 중보자인 로고스가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는 로고스로 인해 이 아래 세상에서 하나님(위의 세계)을 알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첫날부터 하나님을 위해 준비된 말씀이었다)

 

2절에서 말씀예수님이 하나님과 위격은 다르지만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님임을 증거합니다.

 

함께는 밀접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하나님과의 완벽한 공감 속에, 하나님과 완전한 감정, 지성, 의지의 공유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따라서 함께는 말씀과 하나님 간의 특별한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3.만물(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모든 존재의 본질은 그 존재의 기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가라는 존재의 궁극은 어디서 왔는지를 이해할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은 예수님을 만물을 지으신 신성한 중보자로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태초의 창조와 구원을 통한 창조의 중재자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이미 있었던 말씀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창조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만물의 기원자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존재의 본질이 우리가 말씀을 통해 창조된 존재이며, 따라서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3절은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이 현상을 다스리며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본질과 궁극에 대한 답이 되심을 선포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이며 진리가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가치관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외면한 상태에서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대표적 이론이 다윈주의(Dawinism)입니다. 


다윈주의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물질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존재의 본질도 물질에서 찾게 됩니다. 그렇다보니 인간은 우연적이고 생존의 의지만 있는 존재로 취급되어,  궁극적 삶의 목적과 지향이 없는 허망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의지하면 윤리와 삶의 목적은 상실됩니다. 오직 자연선택과 생존투쟁에 의해 인간은 궁극적으로 비인간적이고 헛된 존재로 퇴행되어 갈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거역의 본성에 따라 번성한 다윈주의는 오늘날 하나님을 떠나 형성된  세계관의 기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미국의 복음주의 작가인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는 “자연주의적 진화라는 지적 제국주의가 모든 가치의 영토를 침범했다.”며 다윈주의에 기초한 본질론이 세상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물질의 변화에 의해 그리고 적자생존을 위한 생존투쟁에 의해 본질이 결정된다는 다윈주의 가치관이 팽배한 현실에서, 요한복음은 진리가 인격적 말씀이며 말씀이 모든 존재의 궁극적 기원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존재와 세계는 하나님과 일체이신 ‘말씀’의 설계, 의지 그리고 목적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 마지막도 ‘말씀’에 의해 선하게 인도됨을 증거합니다.   


‘말씀’이 현상을 다스립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존재의 기원이며 궁극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순간순간 변화되는 현상, 환경, 상황에 따라 요동하지 않으며, 현상을 쫒지 않고 다스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삶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말씀이 죽음의 공포를 다스리십니다. 말씀이 어둠의 영을 짓밟으십니다. 말씀이 탐욕을 물리치십니다.  


이는 우리가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이 보이는 현상을 압도하는 권능과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19)


결국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변화시켜, 사랑하고 거룩한  삶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태초에 계셔서 우리를 지으신 진리이신 예수님의 터 위에 서기를 기도합니다.  


Behold! I have given you authority and power to trample upon serpents and scorpions, and [physical and mental strength and ability] over all the power that the enemy possesses ; and nothing shall in any way harm you. (Luke 10:19, AMPC)

  

<참고문헌>

김세윤,  「요한복음강해」, 두란노아카데미(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