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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

[영화와 세상 ④]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언제인가? : 영화는 소통과 공감의 통로

-영화의 시작을 규정하는 요건들, 네 가지
-키네토스코프와 시네마토그라프를 구분하는 뚜렷한 특징은 소통의 유무
-영화 <내 친구 정일우>,낮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소통과 공감 가져와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언제일까요? 이는 어떤 기준을 영화 시작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상통합니다.


영화의 시작을 규정하는 요건들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영화촬영기 (movie camera), 영화영사기(movie projector), 스크린 투사방식 (screen projection), 유료 공개상영(paid public screening)이 그것들입니다.


이 요건들을 조합하면,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영화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이 영사기를 통해 다수의 유료 관객 앞에서 스크린투사방식으로 상영될 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가 언제일까요? 달리말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발명을 누가 했을까요?



◆키네토스코프 – 미국의 딕슨


영화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을 상영한 이는 에디슨의 조수 딕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1894년 키네토스코프를 통해 영상 필름을 보여주었습니다.


딕슨은 톱니장치가 필름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프레임 양쪽에 네 개씩의 구멍을 뚫어 필름의 연속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딕슨등은 에디슨 실험실 근처에 블랙 마리아(Black Maria)라는 스튜디오를 짓고, 연예인 운동선수등이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연기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영화는 사실성을 드러내기보다 배우의 연기등 예술성에 중점을 둔 것이지요.


그럴 것이 무거운 키네마토그라프로  실제 삶 속에서의 촬영이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키네토스코프는 1인 관람용 핍쇼(peep show) 기계여서, 이를 영화의 진정한 시작으로 인정  할 수 없습니다.



◆ 비오스코프 - 독일의  막스와 에밀 스클라다노브스키 형제


영화시작의 기본요건을 제대로 구비하여 필름의 유료 공개상영을 한 발명가는 독일의  막스와 에밀 스클라다노브스키 형제였습니다. 이들은 1895년 11월1일 뤼미에르 형제보다 두 달 앞서 독일의 베를린에서, 비오스코프 영사기로  서커스 장면 필름을 상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역사는 이 상영을 공식적인 영화의 시작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오스코프 상영을 위한 신문 광고는 이 사건을 ‘유럽최초의 필름공개상영’으로 소개하였지만, 역사는 영화의 기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떠한 산업 혹은 예술이든, 그 분야의 시초로 인정받기 위한 사건은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합니다. 산업 및 예술의 깊이와 넓이가 이 사건으로  심화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스클라다노브스키 형제의 비오스코프는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영사를 위해 1초에 16프레임의 움직임이 필요한데, 그의 영사기는 초당 8프레임밖에 영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타개책은 두 렌즈와 두통의 필름으로 각기 교차로 영사하는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오스코프는 첫 상영 이후 1년 정도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상영되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복잡성이 소멸의 배경이 된 것이지요. 스클라다노브스키 형제는 결국 영화의 공식적 발명가라는 영광을  뤼미에르 형제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시네마토그라프 -오귀스트 루이 뤼미에르 형제


영화역사는 영화의 공식적 시작을 오귀스트 루이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로 꼽고 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는  필름 전송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습니다. 현대의 간헐장치의 원형을 발명하게 된 것이지요.


이들은 셔터기능을 개발하여 셔터의 여닫음으로 필름의 빛에 대한 노출과 차단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필름이 쉬지 않고 지나가는 딕슨의 방식보다 더 명료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필름은 1초에 16프레임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광원으로는 아크 램프의 빛이 사용되었고, 이 때 불빛은 마술 환등 기구통을 통해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사기의 전체 모습은 마술 환등에 필름 회전 장치를 연결한 형태로 보였습니다. 



◆소통과 영화


딕슨의 키네토스코프와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를 구분하는 뚜렷한 특징은 소통의 유무입니다. 키네토스코프가 혼자만의 오락기구인 반면, 시네마토그라프는 투사방식을 이용하여 다수가 함께  웃고 우는 소통과 공감의 통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뤼미에르 필름은 1895년 12월 28일 그랑카페의 지하인도살롱에서 1프랑을 낸 유료관객들에게 상영되었습니다. 35명의 관객들은 원 쇼트로 이루어진  <물뿌리는 사람>등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꾀를 써서 정원사가 호스로 자기 자신에게 물을 뿜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또 1896년 1월에 상영된 <시오타 정거장에 기차의 도착>에서 플랫홈에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혼비백산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이처럼, 뤼미에르의 영화 등은 관객들 사이에 교감의 다리를 놓아 소통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현대에도 소통의 의미를 말하는 따뜻한 영화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철거민과 빈민의 대부였던 아일랜드계 미국인 故 정일우신부를 그린 다큐멘터리 <내친구 정일우>는 낮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난뱅이들이 이 나라의 희망이오”라며  그저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만으로 이들에게 무기력에서 자립으로의 변화를 안겨주었던 정일우 신부는 관객들에게 진정성있는 소통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냉철한 머리로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소통과 공감을 이끄는 영화는 오늘도 세상의 한 뼘의 변화를 위해 변화 확장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이상면(2010),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언제인가? ",문학과 영상 2010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