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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사르트르의 사실성과 초월성 ① ] 자기기만 : 자유로부터의 도피

-보수가 가야 할 '진정한 초월'의 길

파리의 한 카페, 쟁반을 든 웨이터가 있습니다. 

그는 손님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절도 있게 주문을 받습니다. 사르트르는 이 웨이터를 보며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웨이터라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지만, 결코 쟁반이나 의자 같은 사물은 아니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사실성)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자유(초월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도피하는 태도를 '자기기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1년, 지금 국민의힘은 사르트르의 카페에 서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일 뿐"이라며 과거의 쟁반 뒤로 숨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 또한 우리였다"고 인정하고 새로운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사르트르의 철학은 국민의힘이 나아가야 할 바를 엄중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인간관: 의식의 이중성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 의식의 근본적인 특성은 '이중성'에 있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기에, '사실성(Facticity)'과 '초월성(Transcendence)'이라는 두 가지 층위를 동시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① 사실성 (Facticity)

"나는 나인 존재다 (I am what I am)“

사실성은 나에게 이미 주어진, 바꿀 수 없는 구조적 조건들을 의미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나를 규정하고 있는 모든 객관적 토대, 즉 나의 과거와 현재의 물리적 상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결정된 '사물적' 속성이 바로 '사실성'입니다.

사실성의 구체적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천적 조건: 출생지, 부모, 인종, 성별, 신체적 특징(키, 장애 유무)입니다.
•과거의 이력: 전과 기록, 학교 성적, 지난 직업 경력입니다.
•현재의 상황: 현재의 부채 상태, '공장 노동자'라는 현재의 신분, 경제 공황 같은 사회적 환경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내 의지로 과거로 돌아가 바꿀 수 없기에, 마치 바위처럼 고정된 나의 일부분입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나는 나인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② 초월성 (Transcendence)

"나는 내가 아닌 존재다 (I am not what I am)"

반면, 초월성은 주어진 조건(사실성)을 박차고 넘어서는 미래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사실성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의 조건을 부정하고 해석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는 의식의 힘을 가집니다.

사르트르는 이 초월성을 곧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공허한 자유가 아니라, '주어진 사실성(조건) 위에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새롭게 선택하는 근본적인 능력'입니다.

초월성의 구체적 적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험 실패(사실성) → 이를 좌절이 아닌 재도전의 계기로 삼는 계획(초월성)
•작은 키(사실성) → 이를 열등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태도(초월성)
•웨이터라는 직업(사실성) → 언제든 그만두거나 지배인이 되겠다는 가능성(초월성)

결국 초월성(자유)이란 현재의 조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미래를 기획(Project)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힘입니다.

인간은 고정된 사물이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I am not what I am), 우리는 사실성이라는 발판을 딛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나를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던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의 진정한 실존이며 의식의 이중성입니다.


◆사르트르의 '카페 웨이터' 사례: 의식의 이중적 긴장

사르트르는 인간 의식의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 파리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웨이터를 관찰했습니다. 이 평범해 보이는 웨이터의 모습 속에는 인간이 '사실성(Facticity)'과 '초월성(Transcendence)' 사이에서 어떻게 줄타기를 하며 존재하는지가 가장 극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① 사실성과 초월성

사르트르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의 실존은 사실성(현재의 역할, 조건)과 초월성(다른 가능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웨이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웨이터로만 규정될 수 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태도입니다. 인간은 현재의 조건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조건 너머를 지향하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웨이터의 모습을 통해 이 두 가지 층위를 분석합니다.

먼저 '사실성(Facticity)'입니다. 웨이터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조건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는 손님을 응대하고 쟁반을 나르며, 웨이터로서 요구되는 절제된 동작을 수행해야 합니다. 출근 시간, 유니폼, 상사의 지시는 그를 구속하는 '팩트'입니다. 만약 그가 "나는 웨이터가 아니야"라며 주문을 거부한다면, 그는 명백한 현실을 부정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초월성(Transcendence)'을 지닙니다. 그의 존재는 웨이터라는 직업적 역할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습니다. 잉크병이나 의자는 그 자체로 고정된 사물이지만 인간인 웨이터는 다릅니다. 그는 퇴근 후 소설가를 꿈꿀 수도 있고, 당장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떠날 자유도 있습니다. 즉, 그는 웨이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 그 자체가 웨이터라는 사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웨이터 사례의 핵심은 '규정되지 않음'입니다. 만약 그가 "나는 쟁반처럼 영원히 웨이터일 뿐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사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의 본질은 이 역할에 갇히지 않으며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그는 사실성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진정한 초월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② 진정성: 두 차원 사이의 긴장을 견디는 힘

사르트르는 인간이 지녀야 할 올바른 삶의 태도를 '진정성(Authenticity)'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사실성과 초월성 중 어느 한쪽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두 차원을 동시에 붙잡는 태도를 말합니다.

예컨대 진정성 있는 웨이터는 우선 "나는 웨이터다"라는 사실성을 인정합니다. 역할에 따른 책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대로 살 수밖에 없어"라며 스스로 가능성의 범위를 좁히고 조건 속으로 도피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 놓습니다. 현재의 조건이 자기 존재 전부를 규정하지 않으며,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조건을 망각하고 구체적인 제약 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추상적인 환상'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현실의 토대를 부정하고 구름 위를 걷는 몽상가가 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그는 사실성으로 도피하지도 않고 초월성의 무지개만 쫓지도 않습니다. 사르트르에게 있어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진정성의 결여입니다. 진정성 있는 인간은 자신이 항상 사실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자각하며, 이 둘 사이의 불편한 긴장을 끝까지 견디는 존재입니다.

③ 자기기만(Mauvaise foi, 모베즈 푸아): 자유로부터의 도피

반면 사르트르가 비판하는 것은 이 두 차원 중 하나로 도망치는 태도, 바로 '자기기만(Mauvaise foi)'입니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의식의 두 측면 중 하나를 부정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자유와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첫째는 사실성으로의 도피입니다. "현재 상황이나 성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며, 실제로는 다른 선택이 가능했음을 은폐하는 태도입니다. "나는 아마도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며 현재 조건에 매몰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초월성으로의 도피입니다. 구체적 조건과 과거를 부정하며 "그 무엇도 나를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태도입니다. "나는 무한히 자유로우니 제약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환상에 젖어, 자유가 구체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진실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만의 목적지는 결국 하나, '책임의 공중분해'입니다. 우리는 구조 탓을 하며 현재 행위의 책임을 부인하거나(사실성 도피),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며 과거 행위의 책임을 증발시켜 버립니다(초월성 도피). 심지어 기만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피해자'나 '순수한 영혼'으로 포장하기로 한 그 해석조차 사실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진실마저 은폐합니다.

④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살기로 했다'

따라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진정한 초월과 진정성은 우선 사실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이런 과거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조건을 지우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못 해"라고 주저앉지 않고, 그 조건들 위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 기획하고 결단합니다.

결국 "조건 탓"으로 숨지도 않고, "과거는 나와 상관없다"며 잘라내지도 않으면서,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살기로 했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기만을 극복하는 길이자, 사르트르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삶의 진정성입니다.


◆진정한 초월: 과거를 짊어진 자만이 미래를 그릴 수 있다

12·3 비상계엄 1년. 국민의힘은 여전히 두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쪽은 "그건 진짜 우리가 아니었다"며 과거를 지우는 길입니다. 다른 한쪽은 "그때도 우리였기에, 앞으로는 다른 보수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길입니다.

이 갈림길은 사르트르가 말한 '초월성(Transcendence)'의 본질로 설명됩니다.

사르트르에게 진정한 초월이란, 과거를 지우고 공중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무거운 팩트(Facticity, 사실성)를 발판 삼아 미래로 도약하는 행위입니다.

① 자기기만의 도피적 초월

보수진영은 지금까지 12·3 사태를 '대통령 개인의 일탈'이나 '야당의 도발에 의한 사고'로 치부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계엄은 민주당 탓이다." "우리는 피해자다.“

사르트르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초월성으로의 도피'라는 전형적인 자기기만(Mauvaise foi)입니다.

이러한 인식에 사로잡혀, 국민의힘은 당시 야당의 정치공세를 합리적 정책과 협치로 막지 못했던 사실성을 부정해 왔습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도피적 초월이었습니다.

도피적 초월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변화'가 성립할 수 없듯이, 보수 진영이 관용과 합리성을 무시한 채 정책적 도그마에 빠졌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성찰 없는 초월은 현실에 발 딛지 못한 채 구름 위를 떠도는 '책임 없는 유령'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② 뼈아픈 사실성의 직면

따라서 국민의힘이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억울하다"는 변명 대신 다음의 팩트를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치 공세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세를 관용과 합리성으로 막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헌정을 위협하는 계엄을 허용했다. 이 참담한 결과는 우리의 선택이 빚어낸 우리의 모습이다.“

이 고백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무거운 사실성을 어깨에 짊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초월이 탄생합니다. 상황 탓, 남 탓을 멈추고 "이것이 우리였다"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자유의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③ 진정한 초월의 길: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선택한다“

과거를 짊어진 국민의힘에게 '초월'은 이제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자기 기획(Project)이 됩니다.

•(사실성) "우리는 합리성과 협치를 무시하고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있었다.“
•(초월성)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합리성을 수용하는 보수가 되기로 다시 선택한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진정성 있는 초월'입니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뼈저리게 인식했기에 그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필연적으로 선택하는 구조입니다.

이런한 맥락에서 "국민의힘이 선택해야 할 진정한 초월의 해법은 명확합니다.

첫 단추는 인정과 반성입니다. '과거의 도그마적 보수를 추종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이를 토대로 전혀 다른 보수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이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헌법에 규정된 국민 기본권 강화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당장 헌법과 계엄법의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통제하고 5·18 정신을 헌법에 새기는 원포인트 개헌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 개헌을 통해 "어떤 정권이라도 다시는 12·3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군사 독재의 유산과 결별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초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