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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비판적 합리주의 ② ] 문빠가 본모습을 되찾기 위해

바람직한 시민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이는 그 구성원들이 비판적, 합리적사고를 갖추고 있는 사회로,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성향을 갖추어 나와 저가 우리가 되고,  함께 더 나은 이론과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비판적 합리주의 태도와 거리를 두고 있는 문빠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폐쇄된 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어, 구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문빠가 지향하는 형식과 실질 



널리 알려진 대로, 문빠 현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문재인대통령과 그 정부에 대한 강한 지지로 그 죄책감을 덜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속죄의식이 문재인을 지키는 문빠현상으로 발현되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종교의 속죄의식과 같았던 문빠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적폐청산을 벌이면서,  변질되어 갑니다. 

즉 문빠는 形式으로는 하늘 아래 함께 있지 못할 사이인 ‘저들’ 검찰을 완벽히 무력화시킨다는 기치를 내걸면서, 그 實質로는 ‘나들’의 울타리에 포함되어 있는 현 집권 주류 강경파의 정치 경제적 특권을 지키겠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문빠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나?

이처럼 문빠는 검찰 개혁의 기표아래에서 현 집권세력의 주류 강경파의 입장을 절대적이고 맹목적으로 지지하며 ‘나들’의 城을 지켜나갑니다. 

때문에 문빠는 연예인을 흠모하듯이 정치인을 추종하는 감성적 팬덤집단과는 다른, 주류 강경파의 정치적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前衛로 활동합니다. 

결국 현재의 문빠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나들’이란 성의 기표이며, 그 기표는 과거에는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문재인에서  현재에는 집권 주류세력의 상징인 조국으로 옮겨간 모양새입니다.  

문빠들이 도덕대신 윤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힘의 구심점인 조국을 옹호하는 것은 기표의 지킴을 통해 ‘나들’의 성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 문빠의 논리의 전제와 지킴을 위한 수단

집권 주류 하드라이너와 그 동조자들로 구성된 폐쇄된 공동체, 문빠는 자신의 城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논리적 전제 하에 그 전제의 사수를 위한 수단을 동원합니다. 

우선 문빠는 ‘나들은 옳다’라는 전제를 고수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연결됩니다.  

문빠는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의식을 각성한 사람들의 연결망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인 해석으로 통용되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이들의 자각은 ‘나들’을 지키기 위해 타자에 대한 반항과 저항의 필요에 대한 자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 진보·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이었던 노무현과 달리, 문빠는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겁니다. 

민주주의는 상호 이질적인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공적인 주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참여의 장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빠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아래에서 ‘나들’ 밖의 ‘저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자, ‘나들’과 입장이 다른 ‘저들’을 적대시하여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정치적 ‘훌리건’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문빠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비판적 시민의 모습과 다른, ‘나들은 옳다’라는 아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에 매달려,  어떤 이슈에 대한 편향적 주장을 펼치거나 (예컨대 김어준은 미투 운동에 정치적 공작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예언합니다), 자신의 이론과 충돌하는 ‘저들’에게 문자 폭탄을 퍼부으며 저들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 문빠가 본모습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기존에 수립한 전제에 대립되는 주장을 허용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인해, 문빠는 거짓의 전제가 거짓의 결론을 이끄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문빠는 폐쇄된 사적 조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일수록, 전체 국민의 이익은 줄어든다는 구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일부 사적 공동체 구성원의 비판적 합리주의 부재는 사회 전체의 공적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결론을 유도하는 틀린 전제에 빠져 이를 수정하지 않을 경우, 고인 물처럼 사고는 썩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고인 사고는 움직임 없는 정체를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더 나아가 폐쇄되고 배타적인 사적 조직이 사회의 지배력을 획득 할 때, 사회전체의 공공이익인 민주주의 ·공정· 정의는 당연히 훼손됩니다.    

진정한 진보의 필수 조건은 편견에 사로잡힌 당파성의 몰입이 아닌, 전제에 대한 회의, 유연성, 타인의 비판에 대한 호의적인 대처라는 비판적 합리주의 성향의 구비입니다. 

결국 문빠가 고정된 전제에 의심을 품고, 이들 공동체 밖의 타인들의 의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성향을 지닐 때, 그리고 사적 공동체의 이익이 아닌 전체 사회의 이익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마음가짐을 가질 때, 문빠는 노무현의 가치를 계승하는 진정한 문빠의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 체화와 편향 ] 기술진보의 사분면 : 편향성과 체화성의 이론적 분류와 생산함수 분석 기술 진보는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주요 요인입니다. 이러한 기술 진보는 두 가지 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중립성과 편향성의 축(힉스중립 vs. 편향적 기술진보), 다른 하나는 체화성과 비체화성의 축(체화 vs. 비체화 기술진보)입니다. 그런데 수식의 형태만 보면, 힉스중립 기술진보와 비체화 기술진보는 모두 다음과 같이 동일하게 표현됩니다:   Yₜ = A(t) · F(Kₜ, Lₜ) 이 수식은 기술 수준 A(t)가 생산함수 전체에 외생적으로 곱해진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 수식이 동일하다고 해서, 힉스중립 기술진보와 비체화 기술진보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A(t)가 생산함수 밖에 위치한다고 해서 곧바로 힉스중립이거나 비체화 기술진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중립성과 편향성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 진보는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을 동일한 비율로 향상시킬 수도 있고, 특정 요소(예: 자본 또는 노동)에 편향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무 프로세스의 전반적 개선은 자본과 노동 모두의 생산성을 높이는 힉스중립적 기술진보입니다. 반면, AI 도입으로 노동의 생산성만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면, 이는 노동 편향적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