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 세 마리의 세 그릇의 죽
숲 가장자리에는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 함께 사는 아늑한 집이 있습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그 집에는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바람은 창가를 조용히 스칩니다.
아빠 곰은 크고 튼튼한 체구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는 큰 냄비에 죽을 진하고 뜨겁게 끓여 둡니다. 강한 불 위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는 죽은, 결단과 속도를 중시하는 그의 기질을 고스란히 닮아 있습니다.
엄마 곰은 중간 크기의 냄비에 죽을 알맞게 데워 둡니다. 충분히 따뜻하되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 온도와 적당한 농도는 조화와 안정을 중시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아기 곰은 작은 냄비에 죽을 부드럽게 끓입니다. 가볍고 섬세한 맛을 지닌 이 죽은 새로운 감각을 지닌 젊은 입맛에 잘 맞습니다.
세 곰은 서로의 조리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이가 있어야 누군가에게 ‘딱 맞는 한 그릇’이 생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으로 죽을 준비해 식탁에 올려 둔 뒤,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집을 정돈하고 산책을 나갑니다.
◆만족은 다른 가치가 어우러지는 공존의 설계에서 나오는 것
그때 마침 숲을 헤매던 금발 머리의 호기심 많은 소녀 골디락스가 우연히 이 집을 발견합니다. 숲 길을 오래 걸어 피로가 쌓인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식탁 위에는 크기와 빛깔이 다른 세 그릇의 죽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골디락스는 먼저 아빠 곰의 큰 그릇을 맛봅니다. “아, 너무 뜨거워요.” 혀 끝이 화끈해지는 순간, 그녀는 서둘러 숟가락을 내려놓습니다. 뜨거움은 때로 결단과 열정의 다른 이름이지만, 적절한 온도로 조절되지 못하면 누군 가 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다음으로 엄마 곰의 중간 그릇을 먹어 봅니다. “조금 미지근해요.” 안전하고 무난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딘가 기운이 빠진 느낌입니다. 이는 극단을 피하려는 의도가 오히려 목표의 선명함을 흐릴 때 생기는 정체 상태와도 닮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기 곰의 작은 그릇을 맛봅니다. “딱 좋아요.” 온도와 농도가 그녀의 상태와 정확히 맞물리자 숟가락이 자연스럽게 빨라집니다.
여기서 골디락스가 얻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만족은 각기 다른 가치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존의 설계’에서 나옵니다. ‘딱 좋음’이란 단순히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의 기계적인 중간 값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이를 능동적으로 비교하고 선택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최적의 상태’입니다.
하나의 잣대로 모두를 획일화하는 순간 만족의 기준은 사라지고 맙니다. 서로 다른 필요와 가치가 나란히 서서 건강하게 경쟁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딱 좋음은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배가 부른 골디락스는 의자들로 시선을 돌려 하나씩 앉아 봅니다.
아빠 곰의 큰 의자는 너무 높고 단단하여 앉는 순간 몸이 잔뜩 긴장됩니다. 골디락스는 이 불편함을 통해, 권위주의적이거나 강경한 구조는 때로 안정감을 줄지언정 모든 사람에게 맞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음은 엄마 곰의 중간 의자입니다. 넓고 푹신해 몸이 깊이 파묻히지만, 정작 허리를 받쳐주지 못해 중심을 잡기 어렵습니다. 안정 만을 앞세운 과도한 유연함은 원칙과 지지력을 약화시켜 공동체를 흔들리게 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아기 곰의 작은 의자에 앉자 골디락스는 다시 환호합니다. “이게 딱 맞아요.”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의자는 이내 삐걱거리더니 다리가 부러지고 맙니다. 참신함으로 눈길을 끌 순 있어도, 튼튼한 철학이나 조직적 기반 없이 ‘느낌’만으로 존재한다면 결국 무너지고 만다는 교훈을 줍니다.
여기서 골디락스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움을 얻습니다. 나에게 맞는 선택이라 해서 그것이 곧 ‘지속 가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딱 좋음’은 감각의 순간일 수 있지만, 그 만족을 오래 유지하려면 견고한 구조와 규칙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의자가 부러지지 않으려면 튼튼한 재료와 정확한 설계가 필요하듯, 공동체 역시 장기적인 안정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감각은 발견하는 것이지만, 지속은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설계는 단순히 분위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철학이 깃든 '틀'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느 한 세력이나 노선이 전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가치가 각자의 그릇을 유지한 채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건강한 경쟁구조’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창 밖 숲의 바람이 조화로운 이유
이제 골디락스는 침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빠 곰의 커다란 침대는 너무 높고 딱딱해서 올라가기조차 힘에 부칩니다. 그녀는 그 침대를 보며, 지나치게 크고 강한 것들은 때로 누군가를 소외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엄마 곰의 중간 침대는 안락하지만, 너무 낮아 불편합니다. 적당한 균형을 추구하다가도 때로는 부족함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마침내 아기 곰의 작은 침대에 눕자, 포근함이 온몸을 감쌉니다.
골디락스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만약 선택지가 이 침대 하나 뿐이었다면 무엇이 더 나은지 판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양한 것들이 함께 있었기에 비로소 자신에게 '딱 좋은 상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들은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하나의 방식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상태 자체가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뿌리가 됩니다.
이는 수많은 생명이 어우러진 숲과 같습니다. 만약 숲에 한 종류의 나무만 가득하다면 모든 동물을 품어줄 수 없습니다. 큰 나무는 새들에게, 작은 나무는 토끼들에게, 중간 나무는 사슴들에게 각각 맞는 쉼터를 제공합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다양한 선택지는 차별의 도구가 아니라 모두를 안아주는 포용의 수단입니다.
창밖 숲의 바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람은 나무들 사이를 자유롭게 지나가지만, 그 소리가 이토록 조화로운 이유는 나무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 진정한 골디락스 정치란
그날 이후 숲에는 새로운 가르침이 퍼져 나갔습니다. 무조건 하나로 묶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억지로 한 지붕 아래 묶어두는 봉합은 더 이상 최선으로 추앙받지 않습니다. 선택지가 다양해야 더 나은 것을 비교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어야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선택지가 결정되며, 그럴 때 비로소 공동체는 정당성을 얻습니다.
따라서 경쟁은 서로를 밀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동력이 됩니다. 다만 그 경쟁이 아름답게 유지되려면, 마지막에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연대의 약속'이 반드시 함께해야 합니다.
이제 숲의 거주자들은 압니다. 진정한 골디락스 정치란 ‘똑같은 것을 먹는 평화’가 아니라, ‘누구든 자신에게 딱 맞는 그릇을 찾을 수 있는 풍요’속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