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 좋은 개살구'의 정의와 사회적 함의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빛깔이 좋고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맛이 없고 실속이 없는 개살구의 성질을 빗댄 표현입니다. 이는 외형은 그럴듯하지만 속 내용과 실질 가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도 화려한 겉모습과 빈곤한 실질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이른바 ‘빛 좋은 개살구’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속 빈 강정’, ‘소문난 잔치’, 혹은 붉은 빛은 좋지만 맛은 짜서 먹기 어렵다는 ‘홍불감장(紅不甘醬)’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겉의 소문·포장·외형이 실질을 대체하는 순간 개인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회적 가치 기준 또한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겉의 소문·포장·외형이 실질을 대체하는 순간 개인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회적 가치 기준 또한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 대표적 사례: 하우스 푸어와 스펙 과잉의 역설

이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하우스 푸어(Asset Rich, Cash Poor)’입니다.
'번듯한 내 집'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체면·과시 욕구가 결합하면서,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대출로 상급지의 고가 주택을 매입하는 선택이 나타납니다. 겉으로는 자산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달 막대한 원리금 상환 탓에 생활비가 부족해 식비를 줄이거나 난방을 아끼는 등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역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또 다른 전형적인 예는 채용 시장에서 나타나는 ‘스펙만 화려한 인재(Resume vs. Competency)’ 현상입니다.
고학력과 높은 어학 점수, 화려한 자격증 등 이력서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고스펙’ 지원자가 선호되지만, 그는 막상 실무에 투입되면 복잡한 현실 문제 해결이나 협업, 위기 대응에 취약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과 채용 시스템이 ‘실력’보다 ‘보여주기용 간판’ 축적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 역선택의 악순환과 사회적 비효율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빛 좋은 개살구’ 현상이 가져오는 본질적인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문제의 본질은, 개살구가 늘어날수록 사회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우량한 대상이 배제되는 경제학의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내실보다 포장이 우선시되는 주객전도: 묵묵히 내실을 쌓는 사람은 '요령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포장과 언변, 조직 정치로 '보이는 성과'를 만든 사람이 기회를 선점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실질적인 성과보다는 형식적인 증명에 자원이 낭비되는 구조가 고착화됩니다. 모두가 '실제 일'보다 '일하는 척'을 증명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면서,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보여주기식 야근 같은 관행이 강화됩니다.
•검증 비용의 증가: 포장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비용은 더 커지고, 사회는 검증을 포기하거나 '속는 셈 치고' 겉모습에 기대는 습관을 고착화할 위험이 커집니다.
◆ 왜 '개살구'가 판치는가: 평가자의 태만과 보상 체계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빛 좋은 개살구’가 판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개살구가 맛있어서도, 겉모습을 화려하게 만드는 사람의 허위의식만이 원인도 아닙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겉이 더 빨리 보상받는 구조’와 ‘포장을 뜯어 속을 보려 하지 않는 평가자의 태도’에 있습니다.
결국 이는 포장자(공급) – 시스템(보상) – 평가자(수요)가 맞물려 만들어낸 합작품입니다.
특히 평가자의 ‘지적 태만’은 이 구조를 공고히 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인재의 잠재력이나 정책의 실효성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은 시간도 들고 수고도 큽니다. 반면 학벌 같은 간판이나 단기 정책의 ‘체감 효과’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신호는 판단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줍니다.
이처럼 눈앞의 간판과 즉각적 성과가 주는 신호는 달콤하고 직관적이어서, 평가자는 어느새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가 되기 쉽습니다. 그 순간 개살구 구조는 더 단단해집니다.
◆ 포장지를 뜯어보고 검증할 시간
정치 영역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진보와 약자 보호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평가자인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퇴행적 정당이 있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온전히 더불어민주당에게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화려한 포장에 안주한 공급자뿐만 아니라, 이를 묵인한 '인지적 구두쇠'인 우리 평가자들의 책임 또한 무겁기 때문입니다.
이제 질문은 우리 자신을 향합니다.
"우리는 과연 단기 성과에 매달려 화려한 '껍데기'에 현혹된 결과, 본질을 놓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안의 '알맹이'를 냉철하게 검증하고 있는가?“
이제는 인지적 나태함을 벗어던지고, 포장지 속의 실체를 직시해야 할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