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렌트의 공적 영역의 이해 ] 훼손된 공적영역의 회복은 임기단축 개헌을 통해 이루어져야 <정치 사상사>

  • 등록 2025.04.25 22: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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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그리고 공공성의 훼손

아렌트(H. Arendt)는 인간의 활동영역을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으로 구분합니다. 

사적 영역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의 손으로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지며, 경제적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공적영역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서로 다른 인간들이 공동의 문제에 대해 함께 소통하며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고대사회에서 엄격히 구분되었던 사적이익이 공적영역으로 침투하면서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공적공간이 위축되는 ‘공공성의 훼손’이 시작된 겁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개인들은 더 이상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그들의 활동은 오직 사적인 경제적 이익의 확대라는 하나의 가치에 의해 지배됩니다. 개인들은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전락하는 겁니다. 


◆ 공적 영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공적 영역'을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며 함께 행동하는 공간으로 정의합니다. 

공공영역의 모델로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곳은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말하고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즉  이 영역은 시민들이 '말과 행위'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소통 과정을 통해, 공적영역은 단순한 사적 이익 추구를 넘어 공동체의 번영과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공간이 됩니다.   

결국 한나 아렌트에게 공공영역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가 아닌, 서로의 의견을 말과 설득을 통해 자유롭게 교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 공개성과 공통성

한나 아렌트에게 ‘공적(公共) 영역’은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다수의 시민이 서로를 드러내고(appearance) 공동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간입니다.

즉, 아렌트에 의하면 공공영역은 공개성과 공통성(공동의 세계)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①공개성 (publicity)

공개성은 타인 앞에 자신을 드러내어 그것이 실재화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즉 ‘개인이 말하고 행위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을 가진 타인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 드러남이 타인에게 인지·기억·평가됨으로써 정치적 실재로서 존재하게 되는 조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행위와 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공공영역에 '나타나며', 이 나타남은 타인의 감각에 의해 인지됩니다.

‘나타남’, ‘드러냄’은  공공영역에서 개인이 단순히 '무엇(what)'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who)'인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드러냄을 통해 각 개인은 고유한 정체성과 유일무이함이 타인에게 보여지고 인정받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공공영역에서의 공개성은 주관적인 경험을 넘어선 객관적인 현실 세계의 토대가 됩니다. 행위와 연설이 타인에게 목격되고 기억될 때,  그것은 공동의 기억 속에 남아 공적인 현실을 얻게 되는 겁니다. 


②공통성(sharedness) = 공동의 세계

‘공동의 세계’는 개인의 주관적 관점과 구별되어, 모두가 공유하는 동일한 현실을 말합니다. 

이는 건물, 예술 작품, 법률, 제도, 역사, 문화적 유산, 문학작품 등 개인의 주관적 경험, 감정, 사적 관심사를 초월하여 각각의 개인들을 연결해 주는 객관적 실재입니다. 

예컨대 한 나라의 헌법은 각 개인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모두에게 동일한 객관적 실재로 존재합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민주주의 제도는 세대를 초월해 인간을 연결하며, 공동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공동의 세계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들이 행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선 공동의 세계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의 현실을 공유하며 정치적 논의와 행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공동의 세계는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드러내고, 그 관점들을 바탕으로 말하고 설득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도시의 광장(아고라)은 사람들이 모여 논쟁하고, 축제를 벌이고, 역사를 공유하는 공공적 의미를 가지며, 이는 공동의 세계의 일부입니다.

또한 공동의 세계는 ‘드러남의 공간’이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즉 개인은 공동의 세계에서 고유한 관점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각각의 관점들에 대해 토론해 갑니다.  이는 각자의 고유성이 획일화되는 전체주의 사회와 대비됩니다. 예컨대 토론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은 서로 다른 고유성을 가진 정당의 구성원들이 서로 말과 설득으로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협의해 가는 공간입니다. 

이처럼 공적영역의 공동의 세계는 개인이 타인과 소통하며 자신의 고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과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③공개성과 공통성의 차이점

공개성과 공통성의 차이는 테이블 사례를 통해 명확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이블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며 그들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집니다. 이 테이블이 '공개적'이라는 것은, 각자 다른 위치에 앉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그 테이블을 바라보지만 '같은 테이블'을 다양한 관점에서 지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개성으로 인해 테이블이라는 사물은 개인의 주관적인 지각을 넘어선 객관적 현실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한나 아렌트에게 있어 '공통성'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속해 있는 '공동 세계'의 존재와 관련되며,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위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됩니다. 반면 '공개성'은  공동의 세계에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드러냄이 객관적 현실성과 지속성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공적영역의 훼손, 공공성의 훼손

공적영역의 본질은 공동세계 안에서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 정체성이 객관적 현실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렌트는 정치적 자유를 행사할 ‘드러남의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인간은 다시 필연성(노동과 생존)의 논리로 회귀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즉 ‘노동’과 ‘작업’과 같은 사적 영역의 활동이 공적 영역을 잠식하면서, 그 본질이 훼손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키고 이를 공적인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 공개성과 공통성은 훼손됩니다.  

① 공개성의 훼손

앞서 언급한 대로, 공개성은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이 보여지고 들려지며 타인의 시선 아래 놓이는 상태’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이러한 정체성이 사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공동의 현실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이 사적 목적을 위해 독점될 경우 공개성은 훼손됩니다.  행위의 동기,절차,책임이 숨겨지면서, 권력의 사용이 더 이상 ‘모두 앞에서’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에 따라 정치적 ‘보임의 공간’, 즉 ‘공공 무대’는 폐쇄되고 은폐됩니다. 그 결과, 시민들은 ‘무엇이 왜 행해지는가’를 알 수 없게 되며, 공공적 사유와 판단의 기회를 상실합니다.

이렇게 공공적 숙고와 토론의 무대가 사라지는 것, 이것이 바로 공개성의 붕괴입니다.


②공통성 훼손

공통성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질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전제입니다.

그렇다면 권력 사유화는 어떻게 공통성을 파괴할까요? 

권력이 정파의 사적 이익을 위해 동원되면, 공통의 세계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으로 전환됩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대통령과 국회의 정책을 공정하게 평가할 기회 없이, 일방적 정치선전에 노출되고 공론장이 파괴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공동체의 정치적 연대감, 곧 공화주의적 시민성을 해체하여 공통성의 훼손인 공동체의 파괴를 야기합니다.  공동체의 분열과 민주주의의 붕괴가 초래되는 겁니다. 

이처럼 공공영역이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점령되면,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공개적 토론과 다양한 관점의 교환이 불가능해집니다. 예컨대 정당정치에서의 협치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측이 협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법위배의 중대성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정치를 망각하고 추상이성에 따른 판시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현실을 진단하고,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제도, 예컨대 임기단축 개헌을 가능하게 하는  판시가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탄식이 나옵니다.)

결국 사적 이익이 공적 영역에 침투하면 공통성은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서로의 의견을 말과 설득을 통해 자유롭게 교환하는 정치 행위가 파괴됨을 의미합니다. 


◆ 훼손된 공적영역의 회복

이처럼 입법 권력의 사유화는 공개성과 공통성이 훼손된 공적 영역을 만들어냅니다. 

우선 공개성이 훼손되면, 권력의 사용이 더 이상 ‘모두 앞에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행위의 동기· 절차· 책임이 숨겨집니다.  

좌파진영의 내란프레임이 이러한 대표적 예입니다. 좌파 진영은 자신들이 행한 권력 전용의 사적 동기를 은폐하기 위해 우파에게 내란프레임을 덧씌우는 수법을 동원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정치공동체의 협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또한 권력이 사유화되면, 공통의 세계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환됩니다. 공동체의 정치적 연대감이 해체되어 공동체는 분열로 치닫습니다. 공화주의 시민성이 붕괴되고, 토론과 책임이 상실된 공적영역의 회복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공적 영역 회복을 위한 해법으로는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의 조정, 의회 권한의 투명화, 숙의 민주주의 제도화 등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임기단축개헌을 통해,  총선시기와 대통령 선출시기를 일치시켜 분점정부로 인한 의회와 행정부간의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의 탄핵 사건 또한 분점 정부 하에서 대통령의 권력 행사와 의회의 권력 전용의 태도가 충돌하며 벌어진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생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강력한 대통령 중심 권력 추구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좌파 진영에게, 임기 단축 개헌 논의는 실없는 제안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권력에 굶주려 온 좌파 진영에게 공동체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공공영역의 회복은 고려할 가치가 없는 사안입니다.  

새롭게 등장할 세상이 그저 공포스러울 뿐입니다. 





조성규기자 ondo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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