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단체의 한 목회자는 늘 워커를 신고 군복 차림으로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런 복장을 고집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죄와 싸우고 있고, 사탄과 전쟁 중입니다.”
다소 과장된 복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한 신앙의 본질은 분명합니다. 중생한 신자의 삶은 더 이상 죄와 무관한 평온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중생한 신자는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욕망과 교만, 분노와 탐욕을 죽이려고 싸우고, 외부의 유혹에 맞서며, 넘어질 때마다 다시 회개하고 순종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바로 이것이 성화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입니다.
중생한 신자는 전쟁터의 구경꾼이 아닙니다. 실제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힘만으로 싸우는 독립된 병사도 아닙니다. 싸우는 사람은 신자 자신이지만, 그 싸움을 계속할 생명과 힘은 성령께서 공급하십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생 이후 신자의 자리가 드러납니다
◆중생 이후 — 능동적이되 독립적이지 않은 신자
중생 이후 신자의 자리는 다음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신자는 실제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의 생명과 힘은 성령에게서 옵니다.'
중생을 통과한 인간은 결코 수동적인 존재에 머물지 않습니다. 영적 죽음 상태에서 스스로를 살려내는 과정에는 인간이 어떤 원인도 제공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신자는 이제 치열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발적으로 말씀을 펴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며, 매일의 삶에서 죄와 싸우고 순종을 실천합니다.
다만, 그 능동성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독립적인 힘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먼저 생명을 주셨고, 그 이후에도 계속 힘을 공급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능동성입니다.
따라서 중생 이후의 삶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명제를 동시에 쥐어야 합니다. ‘신자는 실제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의 생명과 힘은 성령에게서 옵니다.’
◆중생과 성화는 다른 차원
중생(거듭남)과 성화는 명확히 다른 차원의 사역입니다. 중생이 죽은 자를 살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생명의 '시작'이라면, 성화는 그 새 생명이 실제 삶 전체에서 죄를 죽이고 거룩함으로 자라가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3장 1항은 성화의 출발점과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They, who are once effectually called, and regenerated, having a new heart, and a new spirit created in them, are further sanctified, really and personally, through the virtue of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by his Word and Spirit dwelling in them…”
“한 번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새 마음과 새 영을 창조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력으로, 그들 안에 거하시는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실제적이고 인격적으로 더욱 성화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더욱 성화된다"는 표현입니다. 이는 중생을 통해 존재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신자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변화를 삶의 구체적인 영역으로 계속해서 확장해 나감을 의미합니다.
신앙고백서 13장 1항은 이 성화의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the dominion of the whole body of sin is destroyed, and the several lusts thereof are more and more weakened and mortified; and they more and more quickened and strengthened in all saving graces, to the practice of true holiness…”
“죄의 몸 전체의 지배는 파괴되고, 그 여러 정욕들은 점점 약해지고 죽임을 당하며, 그들은 모든 구원하는 은혜 가운데 점점 더 살아나고 강해져 참된 거룩함을 실천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화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좀 더 거룩해진 느낌'을 품는 추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죄의 지배력이 실제로 무너지고, 내면의 정욕을 능동적으로 죽이며, 은혜 안에서 강해진 결과가 최종적으로 '참된 거룩함의 실천(the practice of true holiness)'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행동으로 입증되는 실제적인 과정입니다.
새 생명은 중생에서 시작되고, 그 생명의 변화는 성화를 통해 드러납니다.
◆성화는 전쟁
성화는 죄와의 싸움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 내면에 남은 죄의 본성과 벌이는 치열한 '전쟁'입니다. 중생(거듭남)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해서 부패한 본성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3장 2항은 이러한 영적 현실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This sanctification is throughout, in the whole man; yet imperfect in this life, there abiding still some remnants of corruption in every part; whence ariseth a continual and irreconcilable war, the flesh lusting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이 성화는 인간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지만, 이생에서는 아직 불완전하다"고 전제하며, "모든 부분에 부패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육신이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육신을 거스르는 지속적이고 화해할 수 없는 싸움이 일어난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육신'은 물리적인 신체가 아니라, 신자 안에 잔존하여 성령의 뜻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죄의 성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영적인 전쟁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극히 구체적으로 벌어집니다. 교만을 합리화하고 싶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분노를 터뜨리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며, 탐욕 때문에 정의를 저버리고 싶은 유혹에 맞서는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유혹을 피하기 위해 애쓰고, 때로 넘어지더라도 즉시 회개하며 다시 순종의 자리로 일어서는 모든 과정이 이 전쟁에 포함됩니다.
이처럼 성화는 고요하고 자연스럽게 인격이 수양되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죄가 사라져 싸울 필요가 없어진 상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죄에 맞서 싸우며, 점차 거룩함을 실천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 싸움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죄와의 싸움에서 신자는 실제로 싸웁니다. 그러나 그 싸움을 계속할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3장 3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In which war, although the remaining corruption, for a time, may much prevail; yet, through the continual supply of strength from the sanctifying Spirit of Christ, the regenerate part doth overcome; and so, the saints grow in grace, perfecting holiness in the fear of God.”
“이 싸움에서 남아 있는 부패가 한동안 크게 우세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성화시키시는 성령께서 계속 힘을 공급하심으로써 중생한 부분이 이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은혜 안에서 자라가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어 갑니다.”
이 한 문장에는 함께 붙들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힘의 근원은 성령입니다.
“through the continual supply of strength from the sanctifying Spirit of Christ”
“그리스도의 성화시키시는 성령께서 계속 공급하시는 힘을 통하여”
죄와 맞서는 힘은 인간 안에 미리 쌓아 둔 독립적인 영적 자산이 아닙니다. 신자는 성령께서 계속 공급하시는 힘에 의지해 싸웁니다. 그래서 성화는 한 번 힘을 받은 뒤 홀로 해내는 일이 아닙니다.
둘째, 실제로 싸우는 이는 중생한 사람입니다.
“the regenerate part doth overcome”
“중생한 부분이 이깁니다.”
성령께서 신자를 밀어내고 대신 순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힘을 공급하시기에 신자는 죄에 맞서고, 그 싸움에서 실제로 이깁니다.
그러므로 성화에서 신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 존재도, 자기 힘으로 거룩함을 만들어 내는 독립적 존재도 아닙니다. 성령께 철저히 의지하면서 자기 의지로 죄에 맞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의존하기에 싸울 수 있고, 싸우기에 그 의존이 삶에서 드러납니다.
◆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신자가 죄와 싸울 수 있도록 새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대요리문답 75문에 잘 나타나 았습니다.
“Sanctification is a work of God’s grace, whereby they whom God hath,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chosen to be holy, are in time, through the powerful operation of his Spirit applying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unto them, renewed in their whole man after the image of God; having the seeds of repentance unto life, and all other saving graces, put into their hearts, and those graces so stirred up, increased, and strengthened, as that they more and more die unto sin, and rise unto newness of life.”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거룩하게 되도록 택하신 사람들이 때가 되어,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적용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전인격적으로 새로워집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와 모든 구원하는 은혜의 씨가 심어지고, 그 은혜들이 일으켜지고 증가하며 강해짐으로써 그들은 점점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갑니다.”
성화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a work of God’s grace)"이며, "성령의 강력한 역사(through the powerful operation of his Spirit)"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신자의 내면에 회개와 구원하는 은혜의 씨앗을 심고 이를 자라게 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을 가만히 있게 만들지 않습니다. 신자로 하여금 점점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rise unto newness of life)"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는 죽어 있던 인간을 영적으로 살려내어 실제 삶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살아난 신자의 실제적 책임: 외적 방편의 사용
이렇게 성령의 은혜로 역동성을 회복한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방편을 활용하도록 요구받습니다.
대요리문답 153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he requireth of us repentance toward God, and faith toward our Lord Jesus Christ, and the diligent use of the outward means whereby Christ communicates to us the benefits of his mediation.”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중보의 유익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외적 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여기서 “the diligent use of the outward means”는 외적 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의지한다는 이유로 신자가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생략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방편이 무엇인지 대요리문답 154문이 답합니다.
“The outward and ordinary means whereby Christ communicates to his church the benefits of his mediation, are all his ordinances; especially the word, sacraments, and prayer; all which are made effectual to the elect for their salvation.”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 중보의 유익을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방편은 그분이 제정하신 모든 규례이며, 특별히 말씀, 성례, 기도입니다. 이 모든 것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됩니다.”
이것은 성화의 현실성을 잘 보여줍니다. 성령이 신자를 대신하여 성경을 읽어주거나 기도를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것, 성례에 참여하는 것, 치열하게 기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살아난 신자가 자신의 의지를 다해 '실제로'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결국 참된 성화란, 성령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힘을 공급받은 신자가 능동적으로 은혜의 방편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입니다.
◆방편 자체가 효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방편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방편이 효력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대요리문답 155문이 그 균형을 한 문장에 담습니다. 읽는 것은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 읽음을 구원의 수단이 되게 하시는 이는 성령입니다.
“The Spirit of God maketh the reading, but especially the preaching of the word, an effectual means of enlightening, convincing, and humbling sinners; of driving them out of themselves, and drawing them unto Christ; of conforming them to his image, and subduing them to his will; of strengthening them against temptations and corruptions; of building them up in grace, and establishing their hearts in holiness and comfort through faith unto salvation.”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을 읽는 것, 특히 말씀의 설교를 효력 있는 방편이 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죄인을 깨우치고 죄를 깨닫게 하며 낮추시고,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그리스도께 이끌리게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게 하시며, 유혹과 부패에 맞서 강해지고 은혜 안에서 자라며, 믿음을 통해 거룩함과 위로 가운데 마음이 굳게 세워지게 하십니다.”
문장의 주어는 “The Spirit of God”, 곧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죄인을 깨우치고, 자신에게서 벗어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게 하시며, 유혹에 맞서고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말씀은 결코 빈 통로가 아닙니다. 다만 통로가 스스로 물을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신자가 통로 앞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성경을 펴고, 설교를 듣고, 기도합니다. 성령께 의지한다는 이유로 말씀을 외면하면서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통상적인 길을 따르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 점에서 신자의 행동과 성령의 역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읽는 일은 신자가 합니다. 읽은 말씀을 통해 마음을 깨우치고 그리스도께 이끄시는 일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신자가 방편을 사용하는 것은 책임이지, 그 효력을 만들어 내는 공로가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4장 1항도 믿음에 관해 같은 순서를 말합니다. 믿음은 마음 안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역사이며, 통상적으로 말씀의 사역을 통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증가하고 강해집니다.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고, 정하신 방편을 사용하여 그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해졌을 때 신자가 할 일은 다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행동으로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통상적인 길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방편은 신자가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효력의 근원은 방편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열심도 아닙니다. 사람은 읽고 듣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효력 있게 하셔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이끄시고 은혜 안에서 세우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신자가 방편을 사용하고 죄와 싸우는 일이 실제라면, 성화는 하나님과 인간이 각자의 몫을 나누어 이루는 일일까요? 그 답을 알려면 누가 행동하는가뿐 아니라 그 행동의 힘이 어디서 오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신인협력이 아닌 이유
이처럼 인간이 능동적으로 성화를 향해 행동할 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신자가 방편을 사용하고 죄와 싸우는 일이 실제라면, 성화는 하나님과 인간이 각자의 몫을 나누어 이루는 일일까요?
인간이 능동적으로 거룩을 향해 행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과 인간이 구원의 지분을 나누는 '신인협력(Synergism)'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화의 주도권과 영적 생명의 근원은 철저히 성령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이 행동하는가"가 아니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이 인간 내부에도 따로 존재하는가"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성화는 출발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a work of God’s grace)'이며, 이를 일으키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the powerful operation of his Spirit)'입니다. 나아가 치열한 영적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 역시 '그리스도의 성화시키시는 성령께서 계속 공급하시는 힘(the continual supply of strength from the sanctifying Spirit of Christ)'에서 비롯됩니다. 영적 생명의 시작도, 은혜를 촉발하는 힘도, 죄와 싸우는 지구력도 모두 성령으로부터만 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능동적인 순종이 가짜이거나 무의미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절반을 제공하고 인간이 나머지 절반을 채워 완성하는 식의 공동 제작은 아니지만, 성령의 힘을 공급받은 인간은 분명 실제로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죄를 죽이고 유혹을 피합니다.
이 영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배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먼저 생명과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시면, 중생한 인간의 의지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은혜의 방편(말씀·성례·기도)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다시 그 방편에 효력을 불어넣으시고, 그 힘으로 신자는 일상에서 실제 죄와 싸우며 거룩함으로 나아갑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능동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가 죽었던 인간을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참된 거룩함은 일상의 실천으로 증명된다
이러한 성화의 최종 목적지는 종교 활동의 양적 팽창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거룩함의 실천(the practice of true holiness)'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3장 1항은 이 점을 명확히 합니다.
“and they more and more quickened and strengthened in all saving graces, to the practice of true holiness”
“그들은 모든 구원하는 은혜 가운데 점점 더 살아나고 강해져, 참된 거룩함을 실천하게 됩니다.”
핵심은 “to the practice of true holiness”입니다. 성화는 내면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서 거룩함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따라서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오래 하며, 성례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성화의 완성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변화를 위한 은혜의 통로일 뿐입니다. 그 방편들을 통해 성령께서 한 사람의 내면을 뒤집어 놓으시면, 그 결과는 반드시 치열한 현실의 삶에서 입증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실천에는 타협하고 싶은 탐욕을 버리며, 교만한 자아를 꺾는 것등이 있습니다. 거룩에는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고, 약자의 취약함을 이용하지 않으며,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마땅한 책임을 다하는 묵묵한 순종이 있습니다.
결국 참된 성화란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 스케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을 통해 공급받은 성령의 힘이 우리의 실제 선택과 일상의 궤적을 얼마나 바꾸어 내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 결론 — 수동적이지 않지만 독립적이지도 않아
가지는 실제로 햇빛을 향해 뻗습니다. 그 움직임은 가지 자신의 움직임입니다. 그러나 가지를 살아 있게 하고 뻗을 힘을 계속 공급하는 생명은 줄기에서 옵니다. 성화도 같습니다.
신자가 실제로 움직입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례에 참여하고, 죄와 싸우고, 순종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며, 그 움직임을 지속할 힘 역시 성령이 계속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가 말하는 중생 이후 인간의 자리는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성화에서 인간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립적이지도 않습니다.
다시말해, 성령이 생명을 주시고 계속 힘을 공급하십니다. 살아난 인간은 그 은혜 안에서 실제로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죄와 싸우며 순종합니다.
시작도 은혜이고 지속되는 힘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인간의 행동을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자로 하여금 죄에 맞서고, 거룩함을 실천하게 합니다.
이것이 웨스트민스터가 말하는 중생 이후, 성화의 구조입니다.

